나는 나만 봐 라는 ○○스님 가르침 이해가 된다.
외부경계는 모두 가짜다.
나라여긴 오온도 가짜다.
근데 진짜(실체)라여기니 화난다.
그러니 관찰해서 알아야한다.
공하단걸.
무상 무아 순으로.
관찰가능한건 내 마음 뿐.
고로 신수심법 사념처가 자귀의였다.
그리고 일체유심조니
내가할건 내 마음 판단없이 바라봐서
정각얻는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또 위빠사나 수념처하면 업장소멸도되고.
/
별개로 가장빠른 업장소멸법이 인욕이고
/
이외로 금강경읽는게 좋고.
그럼 이 세방법 다하면되는것이지.
나는 나만 봐. 이게맞았다.
더더구나 언어 형상으로 구성된 생각으로 두가지 선택지 놓고 재고 고민하고 구하는건 오답이고 정답은
단지 위빠사나 수념처 직지인심이었지.
그래. 내안으로 돌리자.
난 수행자다. 범부중생이 아니라.
범부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모르고
수행자는 아니
형상도
언어도
뛰어넘어
하나와
하나도 없음을 보고
다 거짓임 알고
수행자는
나만 본다.
자귀의한다.
사념처한다.
관찰가능한 대상이 그뿐이니.
그 이외의 마음이니 뭐니 과거미래의 마음이니 등등은 일체가 관념일뿐. 상상속 산물일뿐.
그래. 자귀의하자.
가자. 자신아.
나는 나만 봐. = 자귀의 = 위빠사나 수념처,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길.
+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신구의 삼업이며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도 일차적으로는 인연따라 일어난다. 다만 그 마음을 판단없이 바라보고,
수행을 통해 그리고 내가 짓는 신구의 삼업을 통해서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
그것은 타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신구의 삼업이 아닌 것들이다.
그것들은 내가 아닌 인연의 영역에 달린 일들이다. 그것들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내가 어쩌겠는가. 그냥 관여하지 말고 내버려두는 수 밖에.........
인과 연의 조성됨으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가 있다.
내 신구의 삼업은 나에게 달린 일이다. 내 신구의 삼업이 인이 되어서 내 마음을 바꿀 수 있으니
내 마음은 나에게 달린 영역이다.
그러나 타인의 마음은 타인의 신구의 삼업이 인이되며, 중주무진법계연기의 나머지 일체의 조건들이 모두 연이된다.
그 헤아릴 수 없는 연 중 작은 티끌 하나가 바로 나이다. 그럼으로 타인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타인은 인연에 달린 영역이고 중중무진법계연기의 영역이다. 여하튼 나의 영역이 아니다. 고로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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