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불사음 6

[불가록] 사음(邪淫)의 12해악

[불가록] 사음(邪淫)의 12해악 모기종(冒起宗)이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에 주석을 달면서,“다른 사람의 예쁜 여자를 보고 사통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다.”는 구절에서 이렇게 적었다. 다른 사람의 아내나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간사한 사심을 일으킴을 말한다.이러한 염두가 한번 일어나면, 비록 실제 그런 일까지는 없더라도,이미 귀신의 징벌을 피하기 어렵다.무릇 모든 죄악 가운데 사음이 으뜸이다.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이해득실을 잘 모르고서, 이러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이제 사음의 각종 해악을 말하노니, 어리석은 미혹을 일깨우기 바란다. 1. 천륜(天倫)을 해친다. 남녀가 각자 배우자를 갖는 것은, 바로 하늘이 정한 윤리이다.따라서 남의 배우자를 범하면, 설사 그 부부간에 정의가 이미 깨어진 상..

계율/불사음 2024.12.21

연기법을 보기 어려운 이유

12연기 가르침이나 사성제와 같은 중심 가르침에 의하면 욕애(欲愛, Kāma-taṇha)는 인생을 이끌어가는 동력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인생을 지배하는 힘이다. 경전에서 중생은 누구나 ‘갈애(渴愛)의 화살(taṇha-salla)’을 맞은 상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욕망이 지배하는 욕계(欲界)의 욕유(欲有)이고 욕생(欲生)의 존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본능적이고 맹목적인 욕망으로 쳇바퀴를 돌다가 일생을 마감한다. 욕애의 수준에 따라 현실인식에서 조작 또는 왜곡이 좌우된다. 애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애욕이 식거나 약해지면 그동안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애욕이 강할수록 현실 왜곡도 깊고 크다. 그리고 왜곡이 깊고 클수록 고통 또한 깊고 크..

계율/불사음 2024.11.05

“욕망[渴愛]이 세상을 이끌고 욕망에 의해 끌려다니며 욕망이라는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어미 쥐도 성적 쾌감과 관련한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배고픈 상태에서 먹이도 내팽개치고, 새끼 젖 주는 것도 내팽개치고, 심지어는 전기적(감전) 상태를 통과하는 것까지 감수하고서 쾌감에 집착한다. 이처럼 때로는 동물을 통해 인간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현생에서도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한데 애욕은 세세생생 익힌 업이고 그 힘으로 다시 삶을 받고 계속 생존을 지속하고 있는데, 성애에 목숨을 건다. 영화 제목 그대로 그것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아”이다. 때문에 초기경전에 붓다는 “무엇이 세상을 이끌고 무엇에 의해 끌려다니며, 어떠한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에 “욕망[渴愛]이 세상을 이끌고 욕망에 의해 끌려다니며 욕망이라는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계율/불사음 2024.11.05

완전한 자유와 해방 vs 끝없는 미련과 허기로 반성 없이 쳇바퀴 돌 듯 반복하느냐 (수행의 관건)

나쿨라 부부 이야기이다.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에서 나쿨라피타(Nakulapita)는 불사(不死, amata)의 열반을 성취한 ‘재가(gahapati) 아라한’ 21인의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이렇게 뛰어난 재가자의 명단에 남편이 거론되고 그의 아내 또한 대단히 높은 수행 경지에 이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감동적인 말을 한다. 즉 한번은 남편이 죽을 것 같은 병상에서 부부는 16년 동안이나 부부관계를 갖지 않은 범행(梵行)을 실천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남편이 죽더라도 성적 욕망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일은 없을 것이고, 그리고 애들을 잘 키우고 더욱 불교 수행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남편을 위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앞의 인용 경전에서 범부의 삶은 애..

계율/불사음 2024.11.05

두 가지 법이 있는데, 그것에 만족이란 없다.

난타야, 너는 꼭 알아야 하느니라. 두 가지 법이 있는데, 그것에 만족이란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법을 익히면 끝내 만족할 줄 모를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 법인가? 이른바 음욕(淫欲)과 술을 마시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만족할 줄 모르는 두 가지 법이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이 두 가지 법을 익히면 끝끝내 만족할 줄을 모르느니라. 따라서 그 행의 결과로 말미암아 또한 함이 없는 곳[無爲處 : 涅槃]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https://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8 불교는 성적 욕망을 어떻게 말하는가 - 불교평론“붓다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적 욕망의 완전한 극복을 통해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 1. 들어가는 말 이제 우리 사회..

계율/불사음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