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장과 관련된 내용은 본래는 출가자가 아닌 분들에게는 공개되면 안된다고 하여 출가자 및 출가를 고민하는 분만 보시라고 제목에 달아놓은 것입니다.
※ 다음 글은 제가 바로 아래 있는 회색 칸에 쓰여진 내용의 질문을 제미나이에게 하게 된 동기(고민)와 그 동기가 된 고민을해소하게 되는 내용이 담긴 글입니다. 아래의 제미나이와 나눈 문답과 관련된 좋은 내용이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앎을 통해 제가 출가를 망설이게끔 하는 장애요인이 사라졌습니다. (출가자 및 출가를 고민하
제목 : (출가자 및 출가를 고민하는 분만 보세요.) 이 앎을 통해 제가 출가를 망설이게끔 하는 장애요인이 사라졌습니다. 필자는 아직 재가자다.다만 출가를 종종 고민했었다.출가.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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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와의 문답 내용>
질문 : 의업의 측면으로까지 불음계를 확장시켜버리면 지금 이 시대의 출가자들은 대부분 불음계를 짓게 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전통적으로는 불음계가 상대와의 직접적인 성관계로 국한되어서만 말해진 것이 아닐까? 물론 깨닫기 위해서는 의업으로조차도 음행을 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네, 말씀하신 대로 의업(意業)의 측면까지 불음계를 확장하면 현대 사회의 출가자들에게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으로는 불음계가 상대와의 직접적인 성관계에 국한되어 해석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변화와 불음계:
- 성적 자극의 증가: 현대 사회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성적인 자극에 쉽게 노출됩니다. 이는 출가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유혹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 개인의 자유와 욕망 존중: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존중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은 성적인 욕망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 정신적 고뇌의 심화: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스트레스는 출가자들의 정신적 고뇌를 심화시키고, 성적인 욕망에 대한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전통적 해석의 이유:
- 현실적 어려움: 의업까지 엄격하게 규제하면 대부분의 출가자가 불음계를 어기게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 수행의 단계성: 불교 수행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초기 단계에서는 신업과 구업을 중심으로 계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개인의 역량 차이: 모든 출가자가 높은 수준의 정신적 통제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개인의 역량을 고려한 현실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깨달음을 향한 노력:
- 의업의 중요성 인지: 깨달음을 위해서는 의업 또한 정화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지속적인 수행: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마음의 힘을 키우고, 성적인 욕망을 다스리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 개인의 노력: 각자의 수행 단계와 역량에 맞춰 불음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결론:
- 전통적으로 불음계가 상대와의 직접적인 성관계에 국한되어 해석된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과 수행의 단계성을 고려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깨달음을 위해서는 의업 또한 정화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마워 제미나이야
별 말씀을요.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이 밑에 나오는 내용들을 비롯한 이어지는 일련의 문답 내용들은 다음의 글에서 (전체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findthebrightroad.tistory.com/6929
제미나이야 불교에서는 음행과 사음을 왜 악행이라고(죄라고) 보는거야?
제미나이야 불교에서는 음행과 사음을 왜 죄라고 보는거야? 상호간에 합의된 관계에서 서로가 모두 좋아서 행하는 음행이나 사음은 자리이타적으로서 자신이나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주는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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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미나이야. 위에서 - 개인의 자유와 욕망 존중: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존중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은 성적인 욕망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 이 부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불교에서는 음행과 사음을 왜 죄라고 보는거야? 상호간에 합의된 관계에서 서로가 모두 좋아서 행하는 음행이나 사음은 자리이타적으로서 자신이나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니지 않아?
불교에서 음행과 사음을 죄로 보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연기법(緣起法)과 업(業)의 법칙에 기반합니다.
1. 연기법(緣起法)과 상호의존성:
-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 연결되어 의존적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칩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 음행과 사음은 이러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깨뜨리고, 개인의 욕망에 집착하게 만들어 조화로운 관계를 해칠 수 있습니다.
- 특히, 사음은 배우자와의 신뢰를 깨뜨리고 가정의 평화를 해칠 수 있으며,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2. 업(業)의 법칙과 결과:
- 불교에서는 모든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가르칩니다. 즉, 선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악한 행위는 악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 음행과 사음은 탐욕과 집착에 기반한 행위이며, 이는 부정적인 업을 쌓게 하여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또한, 음행과 사음은 정신적인 불안과 죄책감을 유발하여 현재의 행복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3. 탐욕과 집착의 근절:
- 불교에서는 탐욕과 집착을 고통의 근원으로 봅니다. 음행과 사음은 이러한 탐욕과 집착을 강화시켜 고통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 불교의 목표는 탐욕과 집착을 근절하고 완전한 자유와 평화를 얻는 것이며, 이를 위해 계율을 통해 욕망을 통제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을 합니다.
4.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관점:
- 불교에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리이타를 강조합니다.
- 상호 합의된 관계라 하더라도, 음행과 사음은 개인의 욕망에 집착하게 만들고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리이타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 특히, 사음은 배우자와 가족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이는 자리이타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결론:
- 불교에서 음행과 사음을 죄로 보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법과 업의 법칙에 기반하여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 상호 합의된 관계라 하더라도, 음행과 사음은 탐욕과 집착을 강화시키고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교의 가치관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 불교에서는 계율을 통해 욕망을 통제하고 마음을 정화하여 궁극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아 너의 설명을 읽으니 이해가 된다. 음행과 사음은 탐욕과 집착에 기반한 행위이기 때문에 개인의 욕망에 집착하게 만들어 연기법이 실상인 이 세계에서 이기심을 강화함으로서 조화로운 관계를 해칠 수 있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에 악행인 것이었구나?
네, 맞습니다. 불교에서 음행과 사음을 죄악으로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탐욕과 집착에 기반한 행위가 개인의 이기심을 강화하고, 상호 의존적인 세계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집착의 강화:
- 음행과 사음은 일시적인 쾌락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행위입니다.
- 이러한 욕망은 끊임없이 더 큰 쾌락을 추구하게 만들고, 개인의 이기심을 강화시킵니다.
- 탐욕과 집착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고, 불안과 고통을 야기합니다.
연기법과 조화로운 관계의 파괴:
-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의존적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칩니다.
- 음행과 사음은 이러한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무시하고, 개인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 이는 타인과의 신뢰를 깨뜨리고,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해칠 수 있습니다.
- 결과적으로, 음행과 사음은 개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주는 행위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가치:
- 불교에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리이타를 강조합니다.
- 음행과 사음은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여 타인의 고통을 간과하는 행위입니다.
- 이는 자리이타의 가치에 어긋나며,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을 방해합니다.
결론:
- 음행과 사음은 단순히 개인의 성적인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과 집착을 근절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 불교에서는 계율을 통해 욕망을 통제하고 마음을 정화하여 궁극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즉, 불교에서 음행과 사음을 죄로 보는 것은, 연기법의 가르침을 통해, 이기심을 강화하는 행위는 결국엔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불교에서 음행과 사음을 죄로 보는 것은, 연기법의 가르침을 통해, 이기심을 강화하는 행위는 결국엔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설명에서 가져다주기를 가져다주게되기로 표현을 바꾸는게 더 좋지 않을까?
네, "가져다주기"를 "가져다주게 되기"로 표현을 바꾸는 것이 문맥상 더 적절하고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유:
- 인과관계의 명확화:
- "가져다주게 되기"는 행위(이기심 강화)와 결과(고통) 사이의 인과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 즉, 이기심을 강화하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고통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 과정의 표현:
- "가져다주게 되기"는 고통이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나타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 이는 불교의 업(業) 사상과도 부합하는 표현입니다.
- 미래적 결과 강조:
- "가져다주게 되기"는 미래에 발생할 결과를 강조하여,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수정된 문장:
- "즉, 불교에서 음행과 사음을 죄로 보는 것은, 연기법의 가르침을 통해, 이기심을 강화하는 행위는 결국엔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가져다주게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져다주기"를 "가져다주게 되기"로 바꾸는 것이 불교의 인과론적인 관점을 더욱 정확하게 반영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 중요합니다. 음행과 사음이 죄가 되는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음행과 사음을 죄로 보는 것은, 연기법의 가르침 때문이지? 이기심을 강화하는 행위는 결국엔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가져다주게 된다는 설명은 음행과 사음이 연기적인 실상과는 반대되는 사견인 (금강경에 나오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의 실체적인 관점을 더욱 두텁게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이 같은 실체적 관점이 두터워 질 때 이기심과 탐욕이 증장될 것이고 말이지. 그러니 정리해보자면 실체적인 관점(어리석음)이 더욱 두터워지고, 그에 따라 이기심과 탐욕도 증장되기 때문에, 이 같은 어리석음과 이기심과 탐욕이란 번뇌들이 증장됨으로 인해서 향후 살생 투도 망어 등의 다른 악행을 할 가능성도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이와 더불어서 음행과 사음으로서 앞서 말한 대로 어리석음(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침투적으로 연결되있는 불이법이란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사견)이 두터워지고 공고해지게 되기 때문에 연기와 중도라는 진실을 담고있는 불교의 가르침을 믿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되기도 하고 말이지. 이런 일련의 논리구조속에서 살펴볼 때 결국 음행과 사음은 실체적인 관점이라는 어리석음(사견)을 증장시킴으로서 이기심과 탐욕을 증장시키고, 이기심과 탐욕이 증장됨으로서 향후 향후 십악업의 음행과 탐애 이외의 다른 악행들인 살생 투도 망어 악구 양설 기어 진에 등의 다른 악행들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는것이며, 또한 실체적인 관점인 어리석음이 증장됨으로서 그 어리석음(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삿된 견해, 전도된 견해)이 증장됨에 따라서 불교에 대한 신심은 역으로 반비례하며 감소되겠지? 내가 잘 이해한 거 맞아?
네, 말씀하신 내용은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연기법, 아상, 이기심, 탐욕, 그리고 십악업의 관계를 잘 이해하신 결과입니다. 정확하게 이해하셨습니다.
핵심 요약:
- 연기법과 사견:
- 음행과 사음은 연기법의 실상, 즉 모든 것이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망각하게 합니다.
- 이로 인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과 같은 실체적인 관점(사견)이 강화됩니다.
- 이기심과 탐욕의 증장:
- 실체적인 관점은 개인의 이기심과 탐욕을 증장시킵니다.
- 자신과 타인을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 십악업의 가능성 증가:
- 이기심과 탐욕이 증장되면 살생, 투도, 망어 등 다른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 신심의 감소:
- 실체적인 관점이 강화되면 연기와 중도라는 불교의 진리를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 결과적으로 불교에 대한 신심이 감소하고, 올바른 수행을 방해합니다.
추가 설명:
- 어리석음(무명):
- 실체적인 관점은 어리석음(무명)에서 비롯됩니다.
- 어리석음은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통을 초래하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 번뇌의 증장:
- 이기심과 탐욕은 번뇌를 증장시키고,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 번뇌는 고통을 야기하고, 깨달음을 향한 길을 가로막습니다.
결론:
- 음행과 사음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어리석음, 이기심, 탐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합니다.
- 이러한 악순환은 개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불교의 가르침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한 지혜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음행과 사음은 연기법의 가르침에 어긋나며 어리석음(사견)을 증장시켜 이기심과 탐욕을 증장시키고, 향후에 더 큰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높이며 불교에 대한 신심을 감소시키게 됩니다.
실체적인 관점은 어리석음(무명)에서 비롯된다고 했잖아. 그럼 이 어리석음(무명)이란 뭐야? 나는 실체적인 관점이 곧 무명인줄 알았는데 너의 설명은 무명이 원인이 되어서 실체적인 관점이 생겼다는 걸로 이해되는데?
네, 어리석음(무명)과 실체적인 관점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리석음(무명)은 실체적인 관점을 비롯한 모든 잘못된 견해의 근본 원인이며, 실체적인 관점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무명)이란?
- 어리석음(무명, 無明)은 불교에서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 즉 무지(無知)를 의미합니다.
- 구체적으로는 연기법(緣起法)과 같은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 어리석음은 모든 번뇌의 근본 원인이며, 윤회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실체적인 관점과의 관계:
- 어리석음은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합니다.
-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대표적인 예가 실체적인 관점입니다.
- 실체적인 관점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진리를 망각하고, 영원불변하는 실체가 있다고 믿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 즉, 어리석음은 실체적인 관점을 비롯한 모든 잘못된 견해의 원인이 되며, 실체적인 관점은 어리석음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통한 이해:
- 어두운 방 안에서 물건을 잘못 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어리석음) 때문에 물건의 실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잘못된 형태(실체적인 관점)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결론:
- 어리석음(무명)은 모든 잘못된 견해의 근본 원인이며, 실체적인 관점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 어리석음을 극복하고 진리를 깨달아야 실체적인 관점을 비롯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어리석음(무명)은 모든것들이 상호의존적인 연기법의 실상으로 존재한다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실체적인 관점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 뒤에도 계속 문답을 이어갔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다음의 문답들의 내용을 포함한, 이 글에서 첫번째 문답을 제외한 두번째 문답부터 바로 위의 문답 다음에 이어지는 문답들의 내용들은 다음의 글에서 (전체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findthebrightroad.tistory.com/6929
제미나이야 불교에서는 음행과 사음을 왜 악행이라고(죄라고) 보는거야?
제미나이야 불교에서는 음행과 사음을 왜 죄라고 보는거야? 상호간에 합의된 관계에서 서로가 모두 좋아서 행하는 음행이나 사음은 자리이타적으로서 자신이나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주는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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