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에 얽매이지 말자.
얽매이면 시간낭비를 하게 된다.
원한은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맹이에 새기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는 참 지혜로운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라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다른 생명들에게도 이로운 것이 지혜일 것이다.
원한을 물에 새기고 흐르는 바람에 새기면
새기는 즉시 사라지고 만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FOR GET ABOUT IT.
그렇게 원한을 잊고 화나는 일을 잊어버리면
그럼 내 마음은 편안할 것이다.
원한을 끊임없이 새기지 않으니 화가 나지 않아서 내 마음이 편안할 것이고
원한은 원한으로 소멸하지 않고, 원한은 용서와 사랑과 자비로만 사라짐으로. (보다 명확하게는 지혜와 자비로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표면적인 행위를 놓고 보자면 원한은 참음으로서 사라질 것임으로.
그렇게 원한을 흐르는 물에 새기고 흐르는 바람에 새긴다면
복수하지 않게되니,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며 오비이락의 상황을 만들고 윤회속에서 끝없는 보복의 연쇄를 부르는데 그 연쇄가 원한을 화나는 일을 물에 새긴 그 시점에서 딱 끊어져버리니까
그렇게 원한을 버린, 화나는 일을 버린. 그리고 더이상 원수에게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용서하고 그 원수란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고 그렇게 어리석고 악한 신구의 삼업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조건임을 이해한 그 사람도 그 시점부터는 마음이 편안하지만,
그와 더불어서 그 지혜로운 사람의 가족들도 친척들도 조상님들도, 그리고 그 사람이 사는 마을주민들고 지역도 국가도 세상도 그리고 우주 법계도 모두 편안할 것이다.
이를 자리이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혜인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필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늘 매순간 순간 새롭게 다시금 시작하라는 것이다. 1월 1일날마다만 새롭게 시작하지 말고.
조금 꼬인다싶으면 잠시 멈춤 하고.
숨 고르고 명상하고.
"다시 시작하자."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거나 말한뒤
자신의 목적을 새기고 자신의 목표를 새기고 그 목표에 맞는 길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그 시점부터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활동들을 해 나가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최근 도입한 방법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들은 쾌락을 찾는다. 그리고 그 쾌락에 빠져버리니 시간낭비를 하게 되고, 그리고 나서 어느덧 날이 저물어버리면 그렇게 자신을 시간낭비하게 만든 대상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스트레스 받게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 상대를 증오하고 원망하고 미워한다. 그렇게 또 다시 시간을 낭비한다. 그리고 밥먹고 어영부영 하다가 하루란 시간이 모두 가버린다.
사실 이는 필자의 경험이다.
해서 이런 경험을 한 뒤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의 하루를 돌아보았다. 불교적으로는 인연관을 한 것이다.
어떠한 원인때문에 이런 상황(결과)이 도출되었는가.
이렇게 인과를 따져보았다. 불교는 인연법이고 인과법이고 연기법이다.(모두 같은 말이다.)
그리고 불교는 마음법이기도 하다. (불교는 인연법이오 마음법이다. 필자가 다니는 절의 한 스님께서 해주신 법문이다.)
그랬더니 화나는 일에 집착하고 얽매여서 이렇게 하루종일 시간을 허비하고 낭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해서 이렇게 된 인연을 파악한 뒤 앞으로는 위에 서술한 방법을 도출해 내게 되었다.
그 스트레스받는 생각에 계속 끄달려가는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망각하고 싶어 유튜브로 자극적인 영상을 보거나 먹을것을 축생처럼 마구 먹는 그런 쾌락 도피반응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숨 가다듬고. 명상하고. 다시시작하는 이 방법을 도출해 낸 것이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이 가르침이 떠오른다.
법륜스님께서는 즉문즉설에서 말씀하신다.
화나건 슬프건 밉건 괴롭건간에 그건 외부 대상 경계때문이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라고. 하여 수행자는 외부 대상을 바꾸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물론 바꿀 수 있다면 바꾸기도 하지만, 달이 보기 싫다고 달을 없앨 수는 없고 해가 보기 싫다고 해를 없앨 수는 없고 비오는 날이 싫다고 먹구름을 없애버릴 수는 없는 노릇임으로. 이같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도 있기 마련임으로.) 자기 자신의 관점을,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사람임을 법륜스님께서는 가르쳐주신다.
필자가 도출해 낸 다시 시작하는 방법은 이 가르침과도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가르침은 애초에 그 어떠한 경계가 닥칠지언정 그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자기 자신이 주인되어 사라가는 더 고차원의 가르침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필자 역시 늘 항상 날마다 좋은날을 보내고 싶다. 늘 항상 언제 어디서나 주인으로 살기를 필자 역시 원하고 있다.
수처작주입처개진.
그래서 필자 역시 수행을 한다. 수행을 하고 이렇게 글도 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도출한 <다시 시작>하는 방법과 같은 내용의 법륜스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인 <어제까지는 연습. 오늘부터 시작. 오늘이 지난 내일이되면 어제까진 연습. 오늘부턴 다시 시작.> 이 나오는 영상을 바로 밑에 덧붙이며 이 글을 마친다.
밑의 영상 참 재밌고 좋은 영상이다. 봐보시길 권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1ZxkLqD39Yc
제가 언제나 늘 경계에 끄달리고 휘둘리고 일회일비하지 않고, 제가 언제나 어디서나 늘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발원합니다.
나무 불법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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