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18

수행론 - 수행을 해야지만 성불할 수 있다.

깨닫기 위해서 듣기만 하는 자는 1. 사유한 뒤 2. 실천 수행하는 두 가지 과정을 더 거쳐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수행하는 자는 곧장 깨달을 수 있다. 수행하는 자는 듣기만 하는 자보다 두 단계가 더 앞서있는 것이다. - 월도스님 법문 중 -+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난다존자보다 먼저 성불하신 이유도, 데바닷타보다 먼저 성불한 이유도, 부처님께서 미륵보살님보다 먼저 성불하신 이유도 모두 부처님의 실천 수행 정진력에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성불 이전 과거생에 아난다존자와는 같은 스승을 모시는 도반사이였고 또 다른 과거생에는 미륵보살님과 도반사이였으며, 또 다른 생에는 데바닷타를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부처님께서는 수행하지 않는다면 남의 소만 세는 목동일 뿐 자신의 소가 없는 경우..

이타와 각타는 모두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유정들 가운데 최고 수승한 보배인보살은 어떻게 희유(希有)한 생을 얻는가?갖가지 뜻으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신의 이익을 홀로 얻으려 하지 않는다.환희(歡喜)는 세간의 종자(種子)이며정진(精進)은 세간의 약(藥)이다.마음의 보배와 복이여,그 공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어떻게 모든 유정이일체의 안락을 얻고보리심을 발하여여래를 공양하게 할 것인가?애요(愛樂)와 쾌락에 빠지는 것을원통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다.멀리 여의는 것과 수행(隨行)하는 것은모두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마음이 쾌락을 구하여고뇌의 종자가 끝이 없다면모든 쾌락에 빠져번뇌의 고통을 영원히 끊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보리행경 중 -자신이 수행을 하는 것이 모든 유정이일체의 안락을 얻고보리심을 발하여여래를 공양하게 하는 길임을 알았습니..

[매우중요] 게으름과 나태함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https://www.youtube.com/watch?v=aMk1GYvEqUM제308회 게으름과 나태함 대결정심을 배웠습니다.그리고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딱 실행해버리고 행동해버리는 지혜를 배웠습니다.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업식이 발동했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생각이 곧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업식임을 알았습니다.그 생각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업식인데 그걸 경전에서는 마라로 의인화해놓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수행은 누가 뭐라하던 가기로 한 길을 딱 가버리고 하기로 한 것을 딱 해버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그리고 그 길을 감에 있어 어떤 과보가 따르든 기꺼이 받는 마음가짐이 수행자의 마음가짐임을 알았습니다.이 같은 마음가짐이 대결정심이라고 이해했습니다.이 같은 대결정심이 없다면 수행을 하는 것이 아..

수행은 무의식을 바꿔주는 것

집에 오면 게을러지는 이유. 생활습관이 집에서는 잘 안바뀌는 이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게으름에서 잘 못벗어나고 습관 바꾸기가 힘든 이유는 이것들이 다 무의식의 발현 때문이라서 그런거야.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이예기야.그래서 사람이 군대서는 적응한 이후 부지런하게 잘 생활하다가 전역하니 다시 낮밤이 바뀌고 전역전으로 생활패턴이 다니 돌아가는 것도 같은 이치야.현장체험학습 가는 날에는 부모님보고 깨워달라고 말해도 깨워주러가보면 벌써 일어나있는 반면 시험기간에 조금있다 깨워달라해서 부모님이 깨워주면 일어날게 라고 잠결에 말만하고 다시 잠들거나 짜증부리고 안일어나는 것도 다 잠든 시점에는 의식이 꺼지고 무의식이 작동하기 때문이야.의식은 결정하고 결단하지만무의식은 그보다 깊은곳에서 좋다는 느낌 감정 ..

블로그에 글을 아무리 많이 쓰고 메모를 아무리 많이 하고 일기를 아무리 많이 써봐도 그 내용을 실천하고 체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전에 한 법사 스님과 있었던 이야기다.매주 법문을 듣고는 그 들은 법문 내용을 내것화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필자는 법문을 노트에다가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다.이 같은 모습을 본 스님께서는 그걸 다시 보느냐고 물으셨다.필자는 잘 안보게 된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니 법사 스님께서는 "그럼 아무런 소용 없잖아?"라고 말씀하셨다.이 가르침이 떠오른다.방금 전 이 같은 생각이 들었다.블로그에 글을 아무리 많이 쓰고 메모를 아무리 많이 하고 일기를 아무리 많이 써봐도 그 내용을 실천하고 체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결국 이익은 수행을 해야지 성취할 수 있다.아무리 법문을 많이 듣고 팔만대장경을 모두 읽는다 한들,그 읽은 내용 중 한 구절이라고 기억해서 사유하고 제대로..

정토회의 수행관을 한국불교계가 모두 모델로서 배우고 적용해야 한다.

요즘 유튜브에 법문이 많이 올라온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법문만 많이 올라온다고 될 것이 아니다. 수행공동체가 활성화되어야 된다. 깨닫기 위해서 듣기만 하는 자는 1. 사유한 뒤 2. 실천 수행하는 두 가지 과정을 더 거쳐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수행하는 자는 곧장 깨달을 수 있다. 수행하는 자는 듣기만 하는 자보다 두 단계가 더 앞서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아난다존자보다 먼저 성불하신 이유도, 먼 과거생 스승이었던 제바닷다보다 먼저 성불하신 이유도, 부처님께서 미륵보살님보다 먼저 성불하신 이유도 모두 부처님의 실천 수행 정진력에 있다.부처님께서는 수행하지 않는다면 남의 소만 세는 목동일 뿐 자신의 소가 없는 경우와 같고 직접 스스로 수행을 해야 자기 소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고 가르쳐주시지 않으..

기도는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일찍 즉시 해버리는게 걸림이 가장 적다는 교훈을 얻었다.

미뤘다가 하려하면 어떤 걸림이 발생할지 중중무진법계연기의 경우의 수는 예측불가인지라,그리고 경험해보니 실제로 미루면 미룰수록 게으름 탐심 진심 치심 등 업장만이 쌓이기에 기도를 나중에 할수록 더욱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오늘 경험했다. 그리고 무상의 이치는 기도에도 적용되니가급적 기상직후 기도를 하는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왜냐면 첫번채문단에서 적은 바와 같이 중중무진법계연기의 경우의 경우의 수는 예측불가이기 때문에.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한치앞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하다.또한 수행의 척도에는 머무름이 없으며 오직 전진과 후진의 두가지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업장 때문이다. 중생은 무명번뇌 분별심에서 기인한 신구의로 삼업을 지으니 아무런 정진을 하지 않는 시간동안은 정체가 아닌..

[불교] 우학스님 생활법문 (잠시라도 정과 애욕의 굴레를 벗어나라)

https://youtu.be/oNXduMjfEuw?si=LYgsZi1wBULZBsc8[불교] 우학스님 생활법문 (잠시라도 정과 애욕의 굴레를 벗어나라)생각을 쉬고 구하는 마음을 끊어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석가모니 부처님 -이 법문을 듣고 위에 적어놓은 부처님 가르침을 배웠고, 가족과 친인척들에 대한 정과 애욕의 굴레를 벗어나 수행정진함으로서 참행복과 참된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감사합니다.나무 불법승나무 관세음보살

적게 배움 경 (A4:6) / "계와 배움" 무엇이 넷인가? #계와배움

https://youtu.be/AKZ2MWvq_TM?si=E09VjpcEiMesYiNY적게 배움 경 (A4:6) / "계와 배움" 무엇이 넷인가? #계와배움 다양한 형식의 경전을 적게 배우든 많이 배우든 그 뜻을 깊이 아는것이 필요하며, 법에 이르는 수행을 계와 더불어 닦아야 배움으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많이 배워도 그 뜻을 제대로 모른다면 법에 이르는 수행을 계와 더불어 닦지 않기 때문에 이 경우 배움으로 성취하지 못한다.)

불교/초기불교 202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