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 기본 칼럼 411

본래 정해진 바가 없음을 알면

세상 만물에는 이렇다 하고 정해진 실체가 없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관점만이 진실인줄 알지만 본래 정해진 바가 없음을 알면 저 돌맹이들속에서 스님을 볼 수도 있고 부처님을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때때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삶을 살겠지만모든 경계에서 부처님을 보는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살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실체없는건 쥐려하지 마라. 내일 아닌 부처님 일이니.

제목 : 실체없는 건 쥐려하지 마라. 내일 아닌 부처님 일이니.금강경엔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이란 내용이 나온다.과거 현재 미래의 마음은 실체가 없어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근데 이는 사실 일체유위법에도 해당되는 예기다. 고로 오온(심신)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실체가 없음을 알고 내가 어찌 하려하지 않고(나라 할 실체도 없으므로), 실체없는 현상들은 모두 부처님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쥐려하지 않고 염불 주력 하면서 다만 나는 부처님 생각만 하며 부처님께 내어놓고 내버려두고 맡기고 바치는 삶을 수행적으로 살면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백성욱 박사님 가르침(법문)을 공부한 뒤 든 통찰이다.나무 불법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실체없는 현상은 쥘..

내 기준 놓고 무생법인 무아법을 체득하자. 걸림생길 때마다 숙이자.

내 기준 놓고 옴마니반메훔을 부른다. 내 기준 놓고관세음보살님을 부른다. 내 기준 놓고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운다. 내 기준 놓고금강경 반야심경을 읽는다. 무아법을 체득하기 위해서이렇게 기도하면서 생각에 걸릴때마다 합장하고 반배까지 더하며기도를 했다.그러니 걸림이 없다. 걸림은 아상이 높을때 생기는듯하다.생각이든 뭘로든 걸림이 생길때는 합장하고 반배하고절하고그렇게 숙이면서 염불 주력 독경 수행을 해나가면좋은 것 같다. 이 방법(금강경 독경을 하면서 절을 하는 것)이 그냥 독경만 할 때보디 업장소멸이 더 빠르다고 라는 책에서 읽기도 했다. 염불 주력도 마찬가지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모두가 나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연결성에는 수많은 면면들을 찾을 수 있다.그 중 내가 최근 찾은 한가지 연결성을 공유해보고자 한다.우리집 화장실 환풍기는 구형이다.요즘 신형은 전기 댐퍼 형식으로 나와서 악취차단 효과가 더 뛰어난 것 같은데우리집 화장실 환풍기 댐퍼는 그냥 고무로 되어있다. 해서 아파트 다른 세대의 악취가 역류하기도 한다.이런 조건속에서 살아가는 와중 한가지 경험을 하였다.어제 양치를 하는데 윗층 입주민의 똥냄새가 내려왔다.이 냄새를 맡으면서 통찰이 들었다.아 나라 할 게 없구나.왜냐하면 그 이유는 이렇다.필자는 종종 부정관을 하는데부정관을 하다보면 내 생각에 크게 분류해보면 인간은 가죽, 살, 뼈, 장기로 구성되있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리며 그와 같은 조직들속에서 '나'를 찾아보려 하면 도저히 찾..

나는 모두를 하나로 보기 위해, 언어 분별 구분에서 떠나기위해 광명진언을 외운다.

물론 광명진언을 빼고 그자리에 수행을 넣어서 다른 수행인 염불 주력 독경 사념처등을 하기도 한다.나와 남을 나누고 구분짓고 아상을 세우고 내게 즐거움 주는 대상은 사랑하고 아닌 대상은 미워하고 하는 이 전반을 떠나기 위해서.더럽고 깨끗하고를 구분지어 결벽증적인 업식이 일어나 괴로워하게되는 이 일체의 어리석음(실체시와 분별과 집착)과 괴로움을 떠나기 위해서. 개념화 하자면 나는 집착에, 실체적으로 보는 생각이 사실이고 실재라고 여기는 고집에 대고 광명진언을 외우고, 염불 주력 독경 등의 수행을 한다. 그러다보면 그 업식, 업장, 집착, 고집이 옅어지고 사라지며 내 마음이 편안해짐을 경험하곤 한다.이런 마음으로 나는 광명진언도 외우고 오색운수진언도 외우고 염불 주력을 한다. (독경과 위빠사나의 경우 조금 더..

모두가 나이다. 그저 하나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나였다. 분별할건 없다. 고로 염불자는 염불을 주력자는 진언을 독경자는 경문을 외우면 된다. 연결이 결여된 부분은 단 한군데도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환상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뿐. 그 환상을 개미같이 작은 시야를 가진 인간의 육안으로 구분지어 이름붙이고 구분지어 실체적으로 보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을 뿐이다. 파도도 나되, 바다도 나다.중생은 파도를 나라고 여기고보살은 바다를 나라고 여긴다.내 생각에, 그런 것 같다.

없애려 하지 않고 함께하는게 답이었다.

이럴때 수념처 수행을 할 때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걸림이 더 적음을 경험하며일어나는 느낌 감정 생각은 없애려 하지 않고 함께하는 것이 답임을 알았다. 한발 더 나아가서 없애야 할 것은 없음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는 아닌데 그런 것 같다.왜냐하면 실체가 없으니 결국 물질현상이든 정신현상이든간에 모두가 다 마음의 일부분일 따름이다.그 마음이 곧 나인데 내가 왜 나를 없애는가?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다만 함께하며 체험해주고 느껴주고 바라보고 단지 판단없이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로운 길 같다.어짜피 일어나는 모든 색수상행식 물질과 정신현상은 연기하여 일어나는 것임으로실체가 없기에 죄다 환상이기도 하다.중생들은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사실이라 생각하는 것이고.보살은 이름이 실상과는 괴리된 것임을 알지만, ..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임을 기억하라.- 부처님 -

이 가르침 괴테란 사람도 했지만,부처님도 이 가르침 했으리라.왜냐하면 부처님은 원융을 말씀하시고 번뇌즉보리를 말씀하셨으니까.고난은 고난이란 단독자적인 실체로 찾아오지 않는다.부처님은 경에서 말씀하셨다.(열반경인가로 기억한다.)공덕천과 흑암천은 항상 함께 찾아온다고.이말인 즉슨.고와 락은 항상 함께 찾아온다는 것이다.그 반대 역시 성립한다. 고로 고난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그 고난속에서, 그 역경계속에서 비록 힘들지만,그 고난속에서 교훈을 얻고 큰 배움을 얻고 보다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바로 부처님이 되어가는 과정이 바로 그 역경계, 그 고난인 것이다. 부처님은 이 같이 분명히 이 같은 메세지를 팔만대장경으로서 우리에게 전하셨다. 고로 제목에 쓴 이 가르침은 부처님 가르침이기도 하다. 고난이 있을 ..

불교공부를 잘하고 법문을 잘 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

많이 사유하고 사유한 바를 글로 정리하는 것은 진리를 명확히 알고 느끼는 데 좋은 조건임을 느낀다. 글을 잘 쓰는데도 많이 쓰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세가지 삼다법이 그 방법 아니던가.불교공부를 잘하고 법문을 잘 하기 위해서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리이타 - 자신과 일체중생의 진정하고 참된 이익을 위해서) 역시도 마찬가지가 방법인 것 같다.결국 불교도 학문으로 분류할때는 인문학이니까.필자의 은사께서는 인문학의 정수가 불교라고 말씀하셨다.이 가르침 필자도 동감하는 바이다. 불교는 인문학의 정수다.또한 한국학의 정수다.불교는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요,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전통 사상이오 정신이오 얼이다. 한국인으로서 불교를 잘 지키고 보호하고 유지 보존하며불교를 ..

사마타수행 참 좋아요 ~ ㅎㅎ

불생법상법이라는 상을 일으키지 마라생각을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실체시란 어리석음을 기반으로 한 법이라는 상을 일으키지마라생각을 하되 생각의 지칭대상인 실체를 실재요 진실이라 고집(=집착)하지 마라해서 생각이(언어와 표상이) 단지 상상속의 산물이며 거짓이며 관념이고 허구일 뿐임을 알아서 이어가지마라.오만가지 삼라만상을 대상으로 한 온갖생각 하는게 중생인데그 팔만사천 망상 이어가길 멈추고관세음보살 내지 나무아미타불 내지 옴마니반메훔 내지 광명진언내지 명심문 등을 읽으며 염하기만 해라.단지 그뿐.이게 사마타 수행이려나 싶다.사마타수행 참 좋아요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