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광명진언을 빼고 그자리에 수행을 넣어서 다른 수행인 염불 주력 독경 사념처등을 하기도 한다.
나와 남을 나누고 구분짓고 아상을 세우고 내게 즐거움 주는 대상은 사랑하고 아닌 대상은 미워하고 하는 이 전반을 떠나기 위해서.
더럽고 깨끗하고를 구분지어 결벽증적인 업식이 일어나 괴로워하게되는 이 일체의 어리석음(실체시와 분별과 집착)과 괴로움을 떠나기 위해서.
개념화 하자면 나는 집착에, 실체적으로 보는 생각이 사실이고 실재라고 여기는 고집에 대고 광명진언을 외우고, 염불 주력 독경 등의 수행을 한다. 그러다보면 그 업식, 업장, 집착, 고집이 옅어지고 사라지며 내 마음이 편안해짐을 경험하곤 한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광명진언도 외우고 오색운수진언도 외우고 염불 주력을 한다. (독경과 위빠사나의 경우 조금 더 수행방법에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공을 체득하는것 역시 결국 불이법을 체득하는 것과 맡닿아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체가 실체가 없다면 그 실체없는 현상에는 구분선도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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