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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괴로워도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나아갈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5. 2. 2. 00:07

아무리 괴로워도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나아갈 것이다.

 

요즘 불교공부를 꾸준히 해서 경계가 닥쳐도 그 경계에 전처럼 크게 끄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스스로 심해탈이 되지 않아서, 경계에 부딪히면 많이 힘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경계를 만나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 생각에는 왜 괴로운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에 대고 계속해서 왜? 라고 물어보면서 자신의 괴로움 이면에 있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심리학적 방법이자 불교적 방법으로서 심해탈이 가능하게 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근본적인 자가치료(내지 심리상담)에 앞서서

일단 해야되는 것은 참는것이다.

 

경계란것은 크게 이정도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는 화를 일으키는 것.

둘째는 불안하고 두렵고 긴장되는 것. 셋째는 탐욕을 일으키는 것.

오늘 두번째와 세번째 경계를 만났다.

두번째 경계를 만나서 배가 꼬이고 마음도 괴롭지만 몸도 괴로웠다. 긴장되고 힘들고..

 

사람은 이럴때 투쟁 - 도피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다.

하지만, 경계는 사실 환상이고 그림자세계와 같다.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다.

그런 경계를 대하는 수행자의 지혜로운 자세란 결국 그런 실체없는 경계에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임을 이제 나는 안다.

 

생각이 길이다, 아잔브람 스님의 성난 물소 길들이기 등의 책들을 읽으며 터득한 지혜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고 내버려뒀으면 이재명의원은 알아서 법적인 리스크로 인해서 나가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여기에도 역시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지혜를 적용했다면 좋았으리라. 민주당을 헛깨비로 보고서는 말이다. 단지 대통령의 할 도리만 똑바로 다하며 거기에다가 기도하고 수행하고를 겸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헛깨비에 놀아나지 않고, 실체없는 현상들은 내버려두고서 윤석열대통령 자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고 세계평화를 위하는 일만 열심히 해나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행을 하듯. 정치를 수행삼아 그렇게 펼쳐나갔다면 참 좋았을 것이리라.)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오늘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받는 상황을 만났다.

이때 법문을 들으며 마음을 안정시켜보려했다.

하지만 몸이 긴장되고 불안이 치성하니 법문도 잘 이해도 안되었다.

불안하면 학습효과도 떨어진다.

 

해서 법문을 중지했다.

그리고 유튜브를 봤다. 내 컴퓨터가 아닌 컴퓨터로 들어간 유튜브. 로그인이 안되어있다보니, 내 유튜브에는 대부분이 불교영상만이 올라오는데 이 유튜브에는 음란한 영상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를 보고 순간 음심이 일어날때 부정관을 했다.

 

이후 자문자답했다.

 

이래도 되는거냐? 안되지. 근데 힘드네.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답은 하나지. 부정관 가자.

 

해서 부정관을 했다.

 

이후 집중력은 흩으러지고 뇌는 약간의 브레인포그증상이랄까. 멍한 증상이 있고 해서.

몸에 힘도 빠지고 해서.

 

그러나 도망치진 않았다.

 

그리고 유튜브 쇼츠로 나오는 불교 영상들, 인문학 영상들, 그리고 건강 관련 영상들을 시청하고 이 블로그에 올리고 이런 작업을 했다.

 

그렇게 컴퓨터를 하려고 자리에 앉은 뒤 한시간 반정도 지났다.

그러니 마음이 참 밝더라.

 

이후 밖에 나가서 조금 걷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괴로워도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나아갈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은 흔히들 투쟁 도피 반응을 일으킨다.

투쟁한다는 것은 성내고 싸운다는 것이고

도피한다는 것은 그 상황에서 도망쳐서 쾌락을 쫒음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수행자란

성내지도 않고 탐욕을 따라가지도 않고

일어나는 분노와 탐심을 잘 알아차리는 이일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런 탐심 진심을 비롯해

일체의 번뇌와 스트레스도 결국 정신작용이고, 결국 진여에서 일어난 파도이며 구름일 뿐이니.

그런 현상들이 오갈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수용해주고 거부하지 않는 길을 걷는 자일 것이다.

 

그렇게 수용하고 허용하며, 오가도록 내버려두고 관여하지 않는것이 지혜일 것이다.

어찌 내버려두고 관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거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법무아이고 제법무자성이고 제법이 공함을 생각하면 된다.

다시말해서 일체유위법이 모두 꿈같고 환상같고 물거품 그림자같음을 알면 된다.

자꾸 이를 새기면 된다. 그럼 내게 일어나는 어떤 생각이든 감정이든 간에 그런 현상을 거부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현상은 모두 나쁘다거나 좋다고 할만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현상에는 자성, 실체가 없기 때문에 사실 원수라 할 것도 적이라 할 것도 아군이라 할 것도 없다.

더불어 나라 할 실체도 없다. 제법무아인 것이다.

그러니 모든 현상을 허용할 수 있는것이다.

아 내가 거부하고 있구나 이를 알아차릴 수 만 있다면

그 거부하는 현상을 허용해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허용한 상태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것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조금 길을 벗어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무리 괴로워도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나아갈 것이다.'

 

오늘 이를 느꼈다.

 

사실 어제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아서 복통까지 일고 하는 상황이 있었다.

이 때 마찬가지로 나는 유튜브를 켰다. 그리고 어제는 폭력적인 자극적인 영상을 시청을 했다. 그 상황에서.

투쟁 도피 반응에서 도피반응을 선택한 것이다. 도망친 것이고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을 보면서 괴로움을 스트레스를 잊고자 한 것이다. 어제 그런 선택을 하니 시간낭비가 많이 되었다.

 

해서 어제 일기(인연관)를 써보면서 그런 상황이 발생된 인연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일지라도 이렇게 도피반응 쾌락을 추구하며 단지 그 일시적인 상황에서 눈돌리고 일시적인 괴로움을 망각하고자 하는 선택은 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해서 오늘 마찬가지의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받는 상황에서 자극적인 영상을 클릭하지 않았다.

잘 스스로를 다스렸고,

 

건강, 불교, 인문학 등의 쇼츠들을 보면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길을 걸었다.

정도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길을 말이다.

 

그렇게 그 길을 어느정도 걷고 11시 30분이 되었다.

그 시점이 되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걸으니 마음이 참 밝음을 느꼈다.

 

그리고 느낀 것이다. 

 

'아무리 괴로워도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나아갈 것이다.'

 

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것을 알게 된 것이 참 기뻐서 이렇게 글을 쓴다. 

 

화나도 성내지않고, 탐심이 일어나도 이를 따라가지 않고 잘 스스로를 절제하고 자제하고

부정관을 하고,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일지라도 아예 풀어지지 않고 그 순간 힘들지만 할 수 있는 공부와 수행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린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잘 제어해나가다보니

 

어느순간 마음이 참 밝음을 경험한 것이다.

 

그래. '아무리 괴로워도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나아갈 것이다.'

 

그러니 이 통찰대로,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정진하며 정도를 걸어나가야겠다.

앞으로도 오늘 처럼 아무리 괴로워도 정도를 잃지 않아야겠다.

그렇게 아무리 괴롭고 스트레스받고 힘들고 화나고 짜증나거나 번뇌가 일어날 때도

탐심이나 진심을 따라가지 않고 투쟁 도피 반응이란 업습을 따라가지 않고

부정관하고, 알아차리고, 잘 무아행을 실천하여서 오가는 감정과 생각을 거부하지 않고 잘 허용해주면서,

그 상태 그대로 계속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야겠다.

즉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오늘(시간상으론 어제)처럼 수행하고 정진하고 효도하고 법규를 지키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가고 모범적으로 바르게 살아가야겠다. 

 

불교공부하고 기도하고 수행하고, 

번뇌망상 생각 분별 희론을 비우고 버리는 수행을 하고.

복과 혜를 함께 닦아나가고.

효도하고. 육바라밀행을 닦고.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가자.

 

잘 하고 있다.

 

잘 나아가고 있다.

 

잘 할거다.

 

다만 이 모든것이 관세음보살님 가피요 삼보님 가피다.

왜냐하면 현상에 실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은혜에 감사하며

보다 더 분별망상 없애는 수행에 매진하고.

복과 지혜를 닦아나가야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