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위법의 범주에 속한 현상들은
모두가 연기하는 것이기에
나의 일이 아니고
더 엄밀하게는 그 연기하는 현상에는
자아라 이름붙일만한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는 없다.
실체는 없고 현상만이 있는것이다.
실체는 없고 작용만이 있는것이다.
그럼으로 현상이란 내 일이 아니고
중중무진법계연기의 일이고
인연의 영역인 것인데,
이를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니
안될까봐 불안하고, 또 안되면 괴로운 것이다.
그럼으로 애초에 딱 연기법을 알아서,
실체는 없고 현상만이 있음을 알아서
관여하지 않으면 된다. 내버려두면 된다.
상관하지 않으면 된다.
어짜피 관여해도 내 뜻대로 안되니깐.
인연의 영역이지 내 영역이 아니니깐.
이렇게 알아서 관여하지 않는 지혜를
불교에서는 비운다 버린다라고 표현한다.
(필자의 학식이 짧아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아마 여기 쓴 내용이 곧 반야심경에서 '조견오온개공'과 상통하는 내용이자, 금강경의 마지막 사구게인 일체의 연기하는 현상은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이니 응작여시관 하라는 내용과 상통하는 내용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내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연기하기 때문.
연기하는 모든 현상은 자성이 없기에 분리될 수 없는 하나.
이를 중중무진법계연기이자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이 같은 현상에 포함되는 것은 오온 십이처 십팔계.
즉 자아라고 여겼던 이 육신과 정신작용. 그리고 타인과 사회와 세상. 즉 유정과 무정 일체 모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연기하기에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는게 아니다.
그럼으로 이 모든 연기하는 현상은 나의 일이 아니라 연기의 일이다. 인연의 영역에 속한 일이다.
그러니 연기하는 현상에 실체는 없음을 알고서
나와 내것이라는 자아관념을 버리고서
실체적인 관념, 실체시, 분별, 전도몽상, 욕심, 아상, 희론, 개념과 이름과 고정된 모양에 대한 생각(=집착=실재시) 없이 (즉 어리석음 없이)
결과는 인연의 영역이니 인연에 맞기고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이타적인 보살도를 행해나가자.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도를,
지혜와 복을 닦아나가는 복혜쌍수의 보살도를 말이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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