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하심과 귀의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4. 11. 9. 13:39

나무 불 나무 법 나무 승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귀의할 때는 귀의하는 대상만이 존재한다.
귀의할 때는 '나'를 잊기 때문이다.

이 귀의하는 마음이 곧 하심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심이란 나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니깐.

하심이란 나보다 다른생명을 먼저 생각하여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니깐.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평등하게 보시하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대지와 같고 태양 봄바람 물과 같이 말이다.

고로 하심이란 친하고 안친하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멀고 가깝고의 구별과 관념을 떠나서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바라보며, 일체중생을

있다고 할 수 없는 허상이자 실체적인 관념인 '자아'보다 먼저 생각하고 우선해 생각하여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하심하는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리라는 마음을 내며 보시를 행하되,

반야바라밀을 닦아서 보시를 해도 삼륜이 청정하고 맑고 실체적인 상이 없이 연기적이고 중도적으로서,

인드라망을 알고 불이법을 알며 대아적으로서,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희론에 빠지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 (보살의 길이며) 바라밀일 것이리라.

하여 일체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겠다는 큰 마음을 내서 보시를 하고 하화중생을 하되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이가 없다고(연기하기 때문에 제도받은 중생이라 이름 붙일 실체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살의 길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결국 귀의하는 순간은 '나'를 잊고 불보살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귀의가 하심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 불법승
나무 금강반야바라밀경
나무 비로자나불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귀의한다는 말은 의지하며 살겠다는 뜻으로 필자는 알고있다. (보다 자세한 의미는 인터넷에 불교 귀의 등의 검색어를 입력해서 찾아보길 바란다. 필자가 이 글을 쓰다가 잠깐 찾아보고 조금 읽어본 '귀의'에 대한 글 링크를 첨부한다. - https://m.cafe.daum.net/buddha84/OE9f/13? )

필자의 경우 나무 불 나무 법 나무 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을 말하거나 염하며 반배내지 일배를 드릴 때 예배의 대상인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진리)과 승가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님만을 생각한다.

마음(주의)은 한번에 한가지 대상에만 가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해서 필자는 귀의할때는 이렇듯 불보살님만을, 삼보님만을 떠올리고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그런 귀의하는 행위란 결국 나라는 아상을 잊고있는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생각에서 귀의란 하심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