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잘할려는 것이 집착이고 실체적인 견해(실체시)였다 + 화합에 대한 사유와 통찰
잘할려는 것이 집착이고 실체적인 견해(실체시)였다.
이를 알고난 뒤
완벽하게 잘 끝낸 뒤에서야 일을 시작하려는 욕심 및 잘하는 것이란 실체가 있다는 집착(실체시)를 내려두고
지금까지 해놓은 것을 일단 제출하였다.
어짜피 지금까지 해놓은것도 무자성이고
잘하는게 있다는 실체시 집착을 기반으로 생긴 욕심으로 더 시간을 들여 해놓은 결과물 역시 무자성인지라 그냥 지금 해놓은 만큼의 결과물을 공유한 뒤 토론할 거리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것이 더 자리이타적인 길이었다.
해서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으니 그제서야 넘기힘든 산을 하나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은 남았다.
이 경험으로 배운 교훈대로
앞선 경험과 마찬가지로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고 나아가야겠다.
+ 이 모든 일은 내가 한게 아니다. 나라 할만한 실체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일은 중중무진하는 법계연기가 한 일이고, 즉 다시 말해 비로자나부처님이 한 일이고 불보살님이 하신 일이다. 연기하는 현상에는 실체가 없으니 내가 한 일은 아니다.
고로 그저 불법승 삼보님과 관세음보살님께 감사해야겠다.
그리고 자만할 것이 이치상 없음을 아니(제법무아) 겸손하고자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내가 행한게 아니다. 있지도 않은 내가 무엇을 행할 수 있겠는가. 나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관념일 뿐인데 말이다.
그러니 모든것이 은혜이고 가피일 따름이다.
그리고 시삼무차별이니 결국 일체중생은 지금 이대로도 마음이고 부처님이다. 그리고 일체중생은 결국 모두 성불할것이고, 모두 성불할것이기에 일체중생은 모두 언젠가 미래 어느 시점 어느 생에는 출가를 하고 승가의 일원도 될 것이기에. 그리고 승가의 화합을 깨는것은 오역죄에 속하니.
자만심 우월감 비교의식 질투심 시기심 경쟁심일랑 모두 버리고(모두 아상 에고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마음)
순수하게 모든 중생을 사부대중이자 부처님이자 마음으로 여기며 화합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으로서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이타심으로 행하는 행은 집착(실체시) 없이 행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쫌 많이 안다고 우월감가지고 자만심 교만심 가질게 아니라
승가의 화합을 깨는것이 가장 큰 죄임을 알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타파하기 위해서
상없이. 생각의 구성물인 이름과 형상이 지칭하는 대상인 실체는 실재하지 않는 관념일 뿐임을 알며
일채유위법을 인연생기하는 무실무허한, 실체는 없지만 현상 작용은 있는 중도적인 것으로 바라보면서,
해서 삼라만상을 실체는 없는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보면서
순수하게 모든 중생을 사부대중이자 부처님이자 마음으로 여기며 화합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또한 미래세 출가를 하고 성불을 할 불법승 삼보님으로 바라보면서 화합을 깨지 않기 위해서 나라는 관념을 내려놓고, 하심하고,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으로서 살면 좋을 것 같다.
집착(실체시) 없이 말이다.
(이는 계율을 지키는 제악막작의 측면에 부합하지만 단순히 죄와 악을 짓지 않고자 하는 것 뿐만인 것은 아니다. 악을 행하지 않고 이타행을 하는 것은 중선봉행의 측면에 들어간다. 더구나 그 이타행을 보리심으로서 행한다면 보리심은 최상의 선한 마음이기 때문에 더더욱이 중선봉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내려놓고 집착(실체시)없이 순수하게, 삼륜이 청정하게, 실체가 있다는 생각 없이 이타행하고 보시를 하는 것은 인드라망 일즉다다즉일 제법무아 제법무자성 일체개공을 체득하는 자정기의적 수행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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