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힘을 빼야 걸림이 생기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말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5. 4. 5. 09:11

몸에 힘을 빼야 떠오르고 힘을 주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어제 수영 알바를 하면서 배운 점이다.

 

일념삼천이니 몸에 힘을 빼야 떠오르고 힘을 주면 가라앉고 허우적거리게 되는 이치는

삶속 전반에 모두 적용된 이치이리라.

 

그러니 생활 속 모든 면면에서 힘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심각하지 않게 여겨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륜스님 법문 들으면 어제도(어제 즉문즉설 생방송이 있었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오후 7:30분에 시작합니다.) 법륜스님께서 다른 사람을 의지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처가 되어주는 주라는 법문을 해주셨는데 이 가르침을 따르는 것도 근기가 되는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가르침이 아닌가요? 라고 묻는 질문자에게 법륜스님은 그건 나는 그릇이 작으니 내겐 이 가르침이 맞지 않다는 예긴데, 그릇이 작으면 그릇을 키우면 되는거라고 간단히 말씀해주시는 걸로 답변을 마치셨다. 정말 간단명료하다. 그리고 또 상대가 나로 인해 잘되었는데 그 결과가 나는 낮은 성적을 받았지만 상대는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은 상황이라면, '그래도 나는 잘 안되도 너는 잘되서 좋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며 그래도 상대는 잘되었으니 보람되고 뿌듯하고 (나로 인해 잘되었으니) 기분 좋지 않느냐고 법륜스님이 가지시는 마음을 말씀해주셨다. 이런 마음 낼 수 있도록 나도 시도해봐야겠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든다. 이런 마음은 어떻게 낼 수 있을까? ㅎㅎ.. 의문을 냈으니 결국 답은 나올 것이다. <초발심시변정각>의 이치로서 말이다. (잠깐 주제와는 별개의 이야기로 말이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어쨌든 생활속에서 힘 뺴고 살아야겠다.

 

물속에서도 허우적거릴때는 몸에 힘 줄 때니까.

 

그리고 일상에서도 정신작용에서도 걸림이 생길때는 힘을 줄 때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힘을 주는 이유는 결국 이 몸과 정신작용을 실체시하고 나라고 생각하는 살가아견, 유신견 때문일 테니.

 

즉 다시말해서 연기법을 모르고 무실무허한 중도적인 현상을 현상으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 현상에 고정불변하고 독자적인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실체적인 견해인 실체시에서 기반한 집착 때문일 테니. (즉 정견이 아닌 사견을 가진 것 떄문일 테니.)

 

그래서 결국 다시금 이렇게 결론이 도출되네.

 

집착을 없애자. 

 

정말 이렇게 귀결되는구나.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코끼리 발자국 안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사성제 안에 들어간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그래. 금강경 반야심경 열심히 읽자.

집착 없애는 공부 및 사유 및 수행 열심히 앞으로도 지속해나가고 말이다.

 

 

+

 

힘을 뺴는 법은 언어와 형상으로 구성된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실체적인 관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현상의 본질에 두는 것 같다.

 

이 본질을 심지(心地) 라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심지관경이란 불경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어제부터 계속해서 든다. 그제부터였던가?

하여튼. 

 

현상의 본질. 무자성, 공. 즉 실체없음에 마음을 둬야겠다. (실체없음을 사유하고 관하는 것. 실체없다고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반야바라밀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