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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탄핵이 된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5. 4. 15. 22:12

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탄핵이 된 이유는 

 

머물러서이다.

 

실체시를 기반으로 집착을 해서이며,

그 집착을 기반으로 관여를 해서이다.

집착하여 관여하고 내버려두지 못해서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거짓을 진실이라 착각해서

그 거짓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머물렀기 때문에 내버려두지 못하고 관여한 것이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을 필두로 한 민주당이 모두 실체 없이 연기하는 현상임을 알았다면

계엄령이란 수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쁜 놈이라 할 실체가 없으니, 이름붙일 것이 없는 신기루, 안개, 포그스크린과 같은 그와 같은 헛깨비에 관여할 필요도 사실 없는 것이다.

 

내버려두면 제행무상이기에 알아서 사라졌으리라.

 

그러니 

 

세상 일이란게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 조건따라 변화하는 것임을 알고서,

세상 일이란 것이 자기 뜻이 아닌 중중무진법계연기의 형성된 조건따라 변화하고 이뤄지는 것임을 알고서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이타행을 하면서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을 매일매일 독송하고

노는 입에 염불하고 하면서

열심히 기도수행정진을 하고 국가 운영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이타란 무엇인지를 사유하고 공부하고 실행하여 국정을 자리이타적으로 펼치며 살아갔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안 언론에서 김건희 여사 이야기로 떠들석한 현상을 접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 같은 역경계는 구름처럼 안개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풀려갔을 것이고

결론적으로 현 날짜인 2025년 04월 15일 아직까지 대통령 신분으로 있었을 것이리라.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실체시를 하고 집착을 했기 때문에.

집착한 대상에 머물렀기 때문에.

관여를 했고, 내버려두지 못했고,

이로 인하여 탄핵된 것이리라.

 

필자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다.

불보살님이 윤석열대통령으로 나투어 필자에게 실체시하지 말아서 집착하지 말고, 집착하지 않아서(머무르지 않아서) 관여하지도 말고 내버려두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같은 법계의, 불보살님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필자는 큰 역경계를 실체시하지 않고, 실체시하지 않아서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서(=머무르지 않아서)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법다운 것임을 알 수 있었고, 이를 실행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끝에. 그리고 이와 더불어서 불보살님의 별도의 가피로 인하여. 결국 역경계를 잘 넘길 수 있었다.

 

그 역경계는 현재 거의 끝물이다.

 

그리고 그 역경계가 거의 풀려가니 하나 둘 식 악업장에 가리워져 피어나지 못했던 선업의 과보란 싹들이 하나 둘 피어남을 요즘들어 체감하고 있다.

 

윤석열대통령은 필자에게 있어서 부처님이다.

진심으로 하는 예기이다.

 

비록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이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선택을 함으로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이 선택을 하는 모습은 필자가 역경계를 극복할 수 있게끔 해준 가장 큰 가르침(조건)으로 작용했다.

 

시삼무차별이니,

 

마음이 윤석열대통령으로 들어난 것이자,

부처님이 윤석열 대통령으로 나타나신 것이리라.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비록 역경계에 끄달렸지만,

그 역경계에 끄달리는 모습이 필자가 역경계를 극복할 수 있게끔 해 준 것이다.

해서 필자는 부처님이 윤석열대통령으로 나투어 가르침을 펼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도 필자는 이 가르침을 어찌어찌 알아먹었고 말이다..

 

나무 불법승......_()_ )

 

이상 글을 마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불법승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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