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와 각타는 모두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유정들 가운데 최고 수승한 보배인보살은 어떻게 희유(希有)한 생을 얻는가?갖가지 뜻으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신의 이익을 홀로 얻으려 하지 않는다.환희(歡喜)는 세간의 종자(種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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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하다"는 한자로 守護(수호)로 표현합니다. "수호"는 "지키고 보호함"을 의미합니다.
한자 설명:
守 (수):
지킬 수. "지키다", "보호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護 (호):
도울 호. "보호하다", "지키다", "보호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체 심법(心法)의 재화를
비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것은 고를 여의어 안락을 얻고
세간을 초월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수행하는가?
수행은 오직 마음을 수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마음을 잘 성찰하여
항상 수호하려고 노력한다.
원숭이가 몸에 부스럼이 있으면
일심(一心)으로 이를 보호하는 것처럼
사람의 악심(惡心)도 이와 같으니
항상 마음을 수호해야 한다.
고통의 상처를 두려워하여
나는 일심으로 이를 항상 보호한다.
중합지옥(衆合地獄)을 파괴하면
마음의 상처는 곧 두려움 없으리.
항상 이와 같이 행하면
사람 가운데 악을 행하지 않는다.
사람 가운데 죄를 범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다.
나는 몸과 목숨을 다하여
이로운 행으로 공양하고자 한다.
온갖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선한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리라.
나는 마음을 수호하고자
합장하나니, 이제 오롯이 합장하여
마음이 끊이지 않는 생각 가운데
일체 방편으로 보호한다.
중병에 걸린 사람은
모든 행동이 편안하지 않은 것처럼
산란한 마음도 또한 그러하여
여러 일에 견디지 못한다.
마음이 산란하여 안정되지 않으면
듣고 사유하고 관찰하라.
그릇에서 물이 새면
물은 채워지지 않는다.
가르침을 많이 들은 이가
믿음이 깊고 방편으로 노력해도
허물이 있을 수 있나니,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적정하지 않아 죄를 얻게 된다.
마음이 결정되지 않은 까닭에
미혹(迷惑)의 적(賊)은
소유한 복과 선을 얻나니,
사람들은 마침내 악취에 떨어진다.
번뇌라는 여러 도적의 무리들에는
마라(魔羅:악마)가 붙어 방편을 얻나니
그로 말미암아 마라는 일어나
선한 생명을 파괴한다.
그러나 뜻의 감관을 잘 보호하면
악이 강제로 끌고 갈 수 없다.
그 죄의 고통을 생각하여
원래로 되돌아와 안주해야 한다.
착하도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착한 생각 내는 것을 획득하라.
가르침과 스승을 받들고
마땅히 일심으로 공양하라.
제불과 보살은
찰나에도 마음이 결정되어 있으니,
마땅히 두려워하고 기억하면,
자애(慈愛)로써 앞에 현전하리라.
번뇌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가서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능히 뜻의 감관을 지키고
그것을 보호하여 머무르면 흩어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 마음을 지켜
항상 이와 같이 머무르는 것은
비유하면 나무에 뿌리가 없어
나쁜 가지와 잎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눈으로 색상(色相)을 관하여
헛되고 거짓이며 실답지 않음을 알라.
여러 사물을 항상 체관(諦觀)하니,
그러므로 집착하지 않는다.
보는 것에 기인하여 관찰하고
그것을 관찰하여 의혹을 내지 않는다면
온 것을 관찰하여 본 뒤에
어찌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를 두려워하겠는가?
다니고자 하여도 길을 모르면
사방을 둘러보고 두려움을 낸다.
그러므로 결정코 방향을 알아야 한다.
마음을 관하여 행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지혜로운 자의 행위는
앞과 뒤를 사유하고
이것은 선이고 이것은 악이라고
사물을 잘 분별하여 실수하지 않는다.
이 몸에 머무르지 않고
이것을 여의어 다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이 몸에 머무르는가?
마땅히 다시 중간(中間)을 관해야 한다.
속마음을 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여서
여러 방편을 사용한다.
법으로 큰 기둥을 삼고
그것을 얽어 벗어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땅히 이와 같은 뜻으로
나의 곳곳을 관하라.
여러 의식도 모두 이와 같으니
잘 거두어 찰나에도 머물게 하라.
만약 업력을 두려워하거나
쾌락을 구하는 이들은
단(檀)바라밀과 계(戒)바라밀,
나아가 크게 버림[大捨] 등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보리의 인을 닦을 때는
다른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꾸준히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하나니,
마땅히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켜야 한다.
이와 같이 여러 선을 닦으면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나니,
모든 번뇌가
결정코 증장하지 않을 것이다.
갖가지 바른 말로 설하고
현재 잡다한 많은 일들을
관람하여 모두 요지(了知)하고
의심의 그물을 깨뜨려 열매를 얻어야 한다.
풀이 끊겨지는 것과 같이
부처님 계(戒)를 생각하여 능히 견디라.
찰나에 이 행을 행하면
수승한 과보를 얻을 것이다.
여러 바른 설법에서
실로 통달(通達)할 수 있다.
마땅히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고
항상 정진을 닦아야 한다.
비유하면 나무가 감정이 없고
말이 없으며 짓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도 역시 그러하니
결정코 이와 같게 하라.
마음이 경솔하고 자만심을 내는 자는
미혹되고 취한 사람이다.
자신의 예찬을 생각하고 구하는 이는
수행자라 할 수 없다.
만약 다른 이가 나에 대하여
비방하고 훼방을 하면
이는 성냄과 어리석음 등이니,
마음은 항상 나무처럼 묵묵히 머물러야 한다.
나무가 자신의 이익과 신분과 칭호를
분별하지 않는 것처럼
역시 권속이나 승사(承事) 등을
구하지 말라.
남에게는 이익되고 나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다만 일체를 위하여 행하고자 하면
이러한 까닭에 나의 마음은
항상 나무처럼 굳건히 머문다고 하리라.
일심(一心)으로 나무와 같이 머무르니
부모나 친구
또는 삼업(三業)에 대하여
미움과 애정의 두려움이 생하지 않는다.
번뇌를 관찰함에
허공과 같이 집착하지 말라.
마땅히 용맹하고 견고하게
항상 받아 지니라.
선(善)함이 없음은 부끄럽고 가히 두려워할 만한 일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라.
청정하게 삼매에 머물면
다른 이가 존중하리라.
비록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지위에 머무르더라도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지 말고
자신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화내지 말라.
자비로써 항상 이와 같이 하라.
나는 선나(禪那)를 받아 지니고
뜻을 항상 고요하게 한다.
일체의 유정을 위하여
항상 죄가 없는 곳에 머무른다.
잠시 동안임을 항상 기억하라.
오랜 시간 중에 가장 좋은 기회이니
이와 같이 마음을 받아 지녀
수미산(須彌山)같이 움직이지 말라.
독수리가 고기를 탐하기 싫어하지 않듯
사람이 선을 구하는 것 또한 그러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몸과 뜻을 보호하여
모든 때에 스스로 근면하겠는가?
그대들은 어떤 행을
각각 열심히 전념할 것인가?
미혹하고 어리석어 제어하지 않고
나무로 만든 몸과 같은 것[木身]을 그릇되게 탐한다.
이 몸은 부정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어찌 애욕에만 연연해하는가?
뼈는 살과 매어져 붙어 있고
외피로 장식되어 있다.
스스로 깨달아 탐하지 않고
지혜의 칼로 해탈한다.
여러 몸의 부분을 잘라서
가령 그 가운데서 정수(精髓)를 본다면,
자세하게 관찰하고 사유한다 해도
어찌 사람이 있음을 보겠는가?
일심으로 이와 같이 관하고
깊이 살펴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어찌 그대는 부정한 몸을
탐애하고 수호하려 하는가?
태에 들어서는 부정한 것을 먹고
태에서 나와서는 피로 만들어진 젖을 마신다.
이와 같이 먹고 마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 몸을 만들었겠는가?
승냥이와 독수리 등은 먹이를 탐하여
선과 악을 구분할 줄 모른다.
요컨대 똑같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업의 누(累)를 수용하여 성취한다.
다만 이와 같이 몸을 보호하여도
죽음에 이르면 자비와 인내가 없다.
승냥이와 독수리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그대는 항상 이것을 명심할 것이다.
몸이 죽으면 의식은 머물지 않는데
옷과 음식이 어찌 머물 수 있겠는가?
몸이 다하면 의식은 반드시 떠나는데
수용하여 무엇을 탐할 것인가?
그러므로 지금의 뜻을 잘 지어
이와 같은 것을 탐하지 말라.
이를 멀리 여의지 않는다면,
여러 불선(不善)만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이 몸에 팔다리가 생겨
완성되는 것과 같이
몸을 받고 지혜가 증장되지 않으면
윤회에 돌아와 스스로 어려움을 겪는다.
세상에서 친한 이든 친하지 않은 이든
기쁜 얼굴로 먼저 위로하여 달래라.
이와 같이 항상 자신을 제어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버리지 말아야 한다.
웃고 높은 소리로 떠들지 말고
장난삼아 좌구(坐具)를 던지지 말라.
손을 가볍게 하여 다른 이의 문을 두드리고
항상 스스로의 집착을 살피라.
도적이나 고양이와 독수리가
사물을 구할 때 소리 없이 행하듯이
수행하는 마음도 또한 이와 같아
마땅히 거칠고 사나운 것을 여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바는
옳은 이익이 아니니 말하지 말라.
항사 여러 제자를 얻어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존중하고 아끼라.
일체의 설하는 것,
그것을 들으면 선(善)을 칭찬하게 하고
그들이 복된 일을 짓는 것을 보면
칭찬하여 기뻐하게 하라.
진심으로 사사로이 그의 덕을 말하면
그가 듣고는 반드시 즐거워하리라.
찬탄하여 말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의 덕행을 먼저 보라.
여러 환희로운 일을 닦아도
그 성실한 마음을 얻는 것이 어렵다.
이타의 덕을 부지런히 닦으면
마땅히 쾌락의 과볼르 받을 것이다.
애증의 고통은 모름지기 버려야 한다.
더 큰 고통을 생하기 때문이다.
이 고통에 내가 머무르지 않는다면
다음에 큰 쾌락을 얻을 것이다.
좋은 말은 소리가 유연하며
자비가 근본이 되어 들으면 기쁨을 낸다.
그들이 적절한 뜻으로 일을 드러내면
마땅히 진실한 말을 믿어야 한다.
항상 유정을 자비로 생각하기를
자신의 눈(眼)을 아끼는 것과 같이 하라.
유정을 위하여 진실에 머물면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그러한 진실의 성취를 얻어
이것으로 친구를 이롭게 하고,
찰나에 공덕을 닦아
고통을 여의어 큰 안락을 얻는다.
공덕을 부지런히 닦고
항상 지어서 스스로 얻는다.
드러내지 않고 숨기지도 않으면서
누가 여러 일들을 말하는가?
보시바라밀 등은
수승하고 오묘한 최상의 것이다.
달리 행하는 것[別行]은 최상이 아니니,
이로움이 적은 것은 멀리하고 여의어라.
부처님께서 이같이 타인의 이익을
항상 중요하게 여기시니,
여래의 가르침 가운데
저 자비로움을 보아라.
삼계(三界)의 스승이 입멸(入滅)하신 후
출가신을 분별함에
옳고 옳지 않음을 분별해야 하고
삼의(三衣) 등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장차 오묘한 법신(法身)을 구하여
중생이 고뇌하지 않도록 하라.
중생에 대해 이와 같이
뜻에 따라 원만함을 획득해야 한다.
쓸데없이 생명을 버려서는 안 된다.
버리는 것은 요컨대 평등해야 하나니
연민의 마음은 마땅히 청정해야 하고
그 과보는 스스로 원만해야 한다.
깨끗한 마음으로 법을 중요시 하고
그릇이나 몽둥이 등을 집지 않고
머리를 우산으로 가리지 않았으며
교만함이 없는
남자와 여인을 위하여
깊고 광대하게 법을 설해야 하나니
사람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광대하지 않은 법은
법행(法行)이 아니다.
이들을 멀리 여의어 경배하지 말고
대승(大乘)을 즐거이 설하라.
치목(齒木) 및 콧물과 침을
깨끗한 땅에 버리지 말고
맑은 물과 깨끗한 곳에
대소변을 보지 말라.
음식을 먹으면서 입 안에 가득 넣지 말고
먹으면서 소리를 내지 말라.
음식을 먹을 때 말하지 말고
또한 입을 크게 벌리지 말라.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앉지 말고
걸을 때에도 또한 어깨를 흔들지 않는다.
여자와 함께 동승하지 않고
또한 같이 앉거나 눕지 않는다.
모든 율(律)에 맞지 않는 일은
사람들이 보면 기뻐하지 않나니
모든 사람이 본 뒤에는
멀리하고 공경하지 않는다.
사람이 길을 물어도
한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고
두 손으로 그것을 가리켜
그 길이 이르는 곳을 알려주라.
모든 곳에 행보할 때
팔로 장난하지 말고 소리를 내지 말며
또한 헛되이 손가락을 튀기지 말라.
위의를 이와 같이 지켜야 한다.
스승이 비록 이미 돌아가셨더라도
사의(四儀)를 마땅히 배워야 한다.
계행을 받들어 가벼이 여기지 않으면
틀림없이 성스러운 과보를 얻을 것이다.
보살의 행은 헤아릴 수 없으며
설하는 바는 그 끝이 없다.
마땅히 청정심으로
굳게 받들어 행하여라.
하루를 밤낮으로 시간을 나누어
각 세 번씩
도를 행하고 널리 참회하여
부처님의 보리심에 머물러야 한다.
보리심에 스스로 머물고
또한 다른 이로 하여금 획득하게 하라.
불자(佛子)는 학처(學處)에 머물러
일심(一心)으로 이를 호지해야 한다.
부처님의 계체(戒體)는 청정하여
티끌 하나도 보이지 않나니
항상 이와 같은 행을 한다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무시(無始)로 유정을 위하여
행하고, 행하되 분별하지 말라.
이와 같이 유정을 위하여
교화하여 일체를 깨닫게 하라.
마땅히 선지식을 알고
목숨과 같이 버리지 말라.
보살계는 최상이며
대승법도 또한 그러하다.
해탈은 스승에 의지하여 배우니
능히 길사(吉祥)을 생하도다.
모든 부처님들은 지혜의 경전을 설하시니
그것을 읽어 계법(戒法)을 보라.
만약 사람이 마음으로 계(戒)를 보호한다면
행하는 것이 이미 모두 보인다.
몸이나 마음의 상태를
마땅히 미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입으로 염송하고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깨우침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는 마치 중병을 앓는 사람이
헛되이 약의 힘을 말하는 것과 같다.
『허공장경(虛空藏經)』 가운데
모라바저(謨羅波底)를 설하였으니,
계정(戒定) 모은 것을 보라.
자세한 것은 경에 설해져 있다.
성자인 용수(龍樹)보살이
일심(一心)으로 모은 것을
어디에 머물든지
부지런히 항상 펴고 공양하라.
- 보리행경 중 -
네번째 문단 내용이 조금 난해하지만
이를 제하면 수행에 대하여 나오는 아주 좋은 내용인지라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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