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정해진 의미란 없는데
내가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니 혼자서 심각해지더라.
의미부여가 많은 것이 집착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집착이란 실체시다. 그리고 무명에서 비롯된 게 실체시다. 그러니 실체시는 곧 집착임과 동시에 사견이다.
그럼으로 이깟 사견은 무시해 버리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렇게 보고 좀 가볍게 살면 좋을 것 같다.
어차피 인생엔 정해진 게 없다.
다만 인과법은 있다.
인과법이 있더라도 자성은 없다.
고락은 있다.
좋은 꿈과 나쁜 꿈은 있다.(즉 현상은 있다.)
그러나 집착할 건 없다.(즉 현상은 있되 붙잡을 만한 실체는 없다.)
그러니 욕 좀 먹음 어떤가?
어짜피 좋고 나쁘다 할 것 자체가 없는데.
일체유위법이 모두 꿈이고 환상인데.
앞으론 가볍게 살고 싶구나.
더구나 누가 욕하든 말든 그것은 그 사람의 사정이다.
중중무진법계연기의 일이다.
내가 어찌 세상만사를 다 바꿀 수 있겠는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과 내 삼업(三業)뿐.
내가 바른 하얀 씨앗을 심는다면 수확물 역시 하얄것이고(선인락과 악인고과)
내가 청정한 행을 한다면 그것은 행한 바가 없으니 실체가 없는 현상만이 있어 이름붙일 것이 없으니 생각할 거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정리하자면 내가 바르자면 걱정할 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가볍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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