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URaSeMaz6Jg?si=EpAx1h8BTHorGhci
깨달음의 차원과 중생의 차원은 다르다.
무아가 실상이 맞다.
하지만 무아를 머리로 이해만 하는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팔정도 수행을 통해서 계정혜 삼학도를 닦는 과정에서 무아를 체득하는것이 깨달음이다.
그럼으로 나라 할 고정불변한 실체도, 내 것이라 할 실체도 없음은 부처님과 같이 깨달은 자가 보는 차원의 예기다.
중생들에겐 나라 할 것이 있다. 괴로움도 있다. 내 것도 있다. 내가 지은 업도 있다. 윤회는 중생에게 있어서는 연속성을 띄는 것이다.
그럼으로 제법무아이며 제법공상이고 제법무자성이며 금강경에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이란 가르침이 있지만 이는 깨달은 자의 시선을 설한 내용이고,
중생들을 위해서 부처님은 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를 설하신 것이다.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해라.(전륜성왕경에서 나오는 부처님 가르침에 의하면 신수심법 사념처를 닦는것이 자귀의 법귀의이다.)
여하튼 깨달음의 차원과 중생의 차원은 다르다. 그럼으로 이를 구분지어서 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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