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먼저고 상황이 다음이다.
상황은 말해준다.
그 상황을 통해 일어나는 내 마음을 보라고.
일체의 상황경계는 그럼으로 가르침이다.
일체의 상황경계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것이다.
중생들은 그 손가락을 본다.
하지만 공부(=수행)하는 사람들은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본다.
이 이치를 대행큰스님께서는 이와 같이 설명해주셨다.
공부하는 사람은 안으로 돌립니다.
- 대행큰스님 -
해탈 열반의 정수이자 핵심이자 꽃이자 다이아몬드는 알아차림이다.
매 순간 알아차림이 유지되는 것이 그 핵심이오 정수요 꽃이오 금강석인 것이다.
더불어 대승적으로는 반야바라밀이 더해져야 한다.
하여 본래부터 있던 문자나 언어를 붙일만한 실체가 없음을 알아서
수행자는 본래 옳고 그른 것은 없음을 알고
다만 다를 뿐임을 알아야 하며
수행자는 본래 내것 네것이 없음을 알고
다만 잠시 머무르다 흘러가는 것임을 알아야 하며
수행자는 본래 나와 너라 할 것이 없음을 알고
불이법을 체득해야 한다.
하여 이렇게 성내고, 탐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
수행은 정해진 시간에 해야한다.
내가 하고싶을때만 하는 것. 그것은 수행이 아니다.
그것은 욕심으로 하는 행위일 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수행을 꾸준히 하려고 하면 마장이 일어난다.
온갖 핑계거리가 생겨나고, 조금만 더 있다가 할까.
오분만 더 있다가 할까. 내일부터 할까. 조금만 더 자고 할까.
이때부터 할까. 에이 알람 맞춰놓고 30분만 자고 일어나서 하자.
이렇게 온갖 생각들, 핑계거리들이 일어난다.
수행자는 이 생각의 본질을 꽤뚫어 알아서
생각에 끄달리지 말고,
생각에 이끌려가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의 본질을 꽤뚫어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생각의 구성요소는 언어와 표상(상징)이다.
이 언어와 표상이 지칭하는 것은 실체이다.
실체는 현실 즉 실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실상은 연기법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먼저이고 상황은 다음이라는 말은
일체유심조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마주치는 모든 경계는
자신의 마음이 거울에 비치듯 반영된 것이다.
(나는 그리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대상 경계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 경계는 6식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대상 경계는 심리학적으로는 무의식에 해당되는 영역인 제 8식 아뢰야식의 반영이오 나타남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유식학을 배워야 알 수 있는 원리다.
어쨌든,
수행자는 자신의 느낌(감정)과 마음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
물론 자신의 신체 감각과 동작도 잘 알아차려야 한다.
즉슨, 사념처(위빠사나)를 잘 해야한다.
사념처를 잘 하는것이 스스로에게 귀의하는 것이다.
자귀의 법귀의 중 자귀의가 사념처를 닦는 것이다. (전륜성왕경에 보면 나온다.)
특히나 매 순간 자신의 느낌(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아직 심념처를 모른다. 사념처 중 신념처와 수념처까지만 공부를 하였다.
헌데 필자에게 수념처를 사사해준 스승님의 말씀이 수념처보다 심념처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제 심념처를 공부해 볼 시기인 듯 하다.
여하튼, 이야기하고 싶은건
마음이 상황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대소승 경전을 아울러 이 이야기는 어느 불경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법구경에서는 마음이 모든 일에 앞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음이 모든 일에 근본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앞서고 마음이 주도하며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다.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행복이 따른다.
- 법구경 -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의 이치가 사구게로서 나온다.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實從生 無法而不造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 오온실종생 무법이불조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
능히 모든 세상일을 다 그려낸다.
오온이 다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무엇도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약인지심행 보조제세간 시인즉견불 요불진실성
어떤 사람이 만약 마음이 모든 세간을 만들어내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바로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진실성을 아는 것이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만약 사람들이 삼세 일체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이 모든 법계의 성품을 보라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 대방광불화엄경 사구게 -
이와 같다.
매 순간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라.
매 순간 자신의 느낌(감정)을 관찰하라.
그렇다면 향후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를 알 수가 있다.
느낌(감정)의 경우 생각과는 달리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느낌(감정)이 상황 경계로 나타난다.
필자의 경험담이다.
<마음 닦는 법>이었던가 <닦는마음 밝은마음> (김재웅 거사님의 저) 에서는
성내는 마음 화가 재앙을 초래하는 마음이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이 가르침의 내용 역시 필자가 직접 경험한 바이다
이 외에도 불안함과 두려운 마음 역시 필자의 경험상 재앙을 초래하는 마음이더라.
또한 머리가 막힌 느낌. 누군가 짓누르는 느낌. 그래서 멍해지는 느낌. 눈도 잘 안떠지는 감각.
이런 느낌과 감각이 드는 것 역시 크건 작건간에 역경계를 초래하는 감정이오 현상임을 관찰하기도 했다.
해서 이와 같은 느낌(감정)들이 일어날 때. 특히 화란 감정과 불안 및 두려움이란 감정이 일어날 때는
위빠사나 수념처을 해줘야 한다.
염불이나 주력 등 이런 감정을 푸는 다른 수행법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자신에게 맞는 그런 수행법을 사용해도 되리라.
여하튼 이런식으로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한다.
매 순간 알아차림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알아차림의 지속. 알아차림. 이것이 해탈 열반의 정수인 것이다. 해탈 열반의 핵심이오 정수요 다이아몬드인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는 이와 같이 평소에는 신념처와 수념처를 닦으며 매순간 깨어있고자 하고,
더불어 매일 금강경 독송 및 관음정근과 주력 수행을 별도로 하고 있다.
그리고 종종 노는 입에 염불을 해주기도 하며,
더불어 일상속에서 보시바라밀을 비롯하여 육바라밀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육바라밀의 경우 아직 본격적으로 닦기 시작하진 못한듯하다.)
그리고 최근들어서는 정토불교대학을 듣기 시작하며 천일결사 새벽 공동정진에도 참가하고있다.
요즘 정토회는 정일사라 하여서 용맹정진 기간이다.
그리고 오늘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 조계사 내부의 불교박물관에서 화재가 발생되었다.
이는 신호다.
불보살님이 보내는 신호이며 신중님들이 보내는 신호이다.
법신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모든 사부대중은 이를 잘 캐치해야 할 것이다.
현재 불교계는 크나큰 위기에 처해있다.
장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문제가 수면 밖으로 들어날 것이다.
이때 대처를 잘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기를 혜안으로 잘 간파하여
정일사 용맹정진 기간에 일전에 몇칠전부터 미리 도입한 법륜스님의 혜안을 수희찬탄한다.
법륜스님은 시대의 선지식이다.
존경하고 잘 따르며,
이 같은 스승이 계심을 기뻐하며 항상 법륜스님의 가르침을 가까이 해야 할 것이리라.
이 글을 보는 분들 중 정토불교대학에 다녀보지 않으신 분께는 꼭 정토불교대학에 다녀보시길 권한다.
그것도 먼 미래로 미루지 말고 당장에 가장 빠르게 등록할 수 있는 시점인 다음학기에 등록해서 다녀보시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삶이 무상하고 인생이 무상하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몇년 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전쟁이 닥칠 줄 알았을까?
지진이 나기 전날 밤 튀르키예 사람들과 미얀마 사람들은 지진이 닥칠 줄 알았을까?
이와 같이 죽음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루 뒤는 커녕 오분 뒤. 아니 일분 뒤.
아니 단 한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할 수 있을 때 해야 할 것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무상의 지혜를 갖춘 지혜로운 삶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더불어 무언가 정한 일을 할때. 원(서원)을 세우건 어떠한 목표를 세우건 간에.
정한일이 있지만, 그 일들을 성취하는 사람들은 적은 이유는
무의식의 작용 때문이다. 이 무의식에서 업장이 일어난다. (이를 부처님 일대기에서는 마라로서 의인화 해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인류사적으로 말이다.)
이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업장으로 인해 게으름이 발생된다.
이 업장이 느낌 감정 생각 충동의 형태로 발생된다.
이 같은 정신작용(수상행식)의 본질을 꽤뚫어 알아야 한다.
이 같은 정신작용이 조건에 의존해 일어난 것으로서 무자성하고 공한 것. 실체가 없는 것임을 꽤뚫어알아야
생각에 끄달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수행자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게으름과 집착이다.
보성큰스님의 가르침이며, 법륜스님 역시 동일한 가르침을 펼치신다.
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커리큘럼이 정토불교대학의 커리큘럼이다.
이 커리큘럼을 잘 따라서 경전반까지 마친 뒤
1. 연기 - 무자성 - 공의 이치를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2. 이 이치가 담긴 천일결사 수행문을 반복해 읽고 새기며 계속해서 수행해 나가며
3. 마음나누기 수련 및 위빠사나 수념처 등으로 자신의 느낌과 감정과 충동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판단없이 바라보는 수행을 자꾸 해나가다보면
1번과 2번의 공부와 수행을 함으로서 반야바라밀을 펼치게 되며,
3번의 수행으로서 자신(오온)에 대해 알고, 업장소멸을 하고, 해탈 열반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앞서 몇번 말했지만 해탈 열반의 정수이자 핵심은 알아차림. 알아차림의 지속이다. 항상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빈스님의 글 법문 하나를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위빠사나의 경우 https://blog.naver.com/tenzinpalden 이 블로그를 참조 바란다. 정말 정말 보물섬과 같은 블로그다. 감로와 같은 법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블로그이니 말이다. ^^)
<제목 : 최고의 지혜>
명상 수업 제1기 선발 공고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fLVP/3?svc=cafeapi
어른수업 - 최고의 지혜
선禪을 공부하는 한 제자가
스승 잇큐一休(15세기 일본의 선승)에게
최고의 지혜를 알려달라고 청했다.
스승은 제자의 거창한 질문에 모래 위에 이렇게 썼다.
‘주의를 기울여라.’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제자는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잇큐는 다시 모래에 이렇게 썼다.
‘주의, 주의, 주의를 기울여라.’
-<오픈 포커스 브레인> 중-
깨어있음.
이것을 완성하는 것.
이것이 깨어남입니다.
깨달음입니다.
이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한가요?
사띠가 깨어나면
눈앞의 불성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돌고 돌아 결국 이 길입니다.
'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유가 있을 때 부지런히 불법을 공부해놓아야 한다. (0) | 2025.06.11 |
---|---|
그리 정했다. 목슴을 걸어라. (0) | 2025.06.10 |
조건 계획 붙이고 의도하고 함은 죄다 문자에 끄달린거다. (0) | 2025.06.09 |
락즉고와 고즉락 (3) | 2025.06.08 |
알게된 지혜는 모두 공개된 칼럼화를 하고 싶다. (0) | 2025.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