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같다.
본질은 똑같다.
본질은 하나다.
본질은 둘이 아니다.
본질은 하나라 할 것도 없다.
범소유상 개시허망이고
제상이 비상이니
일체유위법이 인연생기하는 현상인지라
그 현상에는 실체가 없으니
그 실체없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건 실체시가 아닌 연기시이며
이 연기를 볼 때 부처님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은 자리이타 자각각타의 상황으로 나타난다.
절묘하고 신묘하다.
이 같은 부처님은 개체적 실체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결코 볼 수 없다.
부처님은 중생의 사견 즉 실체시, 집착, 구분, 차별, 판단, 분별망상, 전도몽상의 틀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같은 관념의 틀을 벗어나서 나타나는 것이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팁을 주자면
전체를 보라.
연기하는 흐름 전체를 보라.
풍경 전체를 보라.
단 중요한 팁 하나를 더 주자면
판단하지 말고 보라.
이름붙이지 말고 보라.
구분짓고 차별하고 이분법적으로 보지 말고
판단없이 볼 때는 그저 보기만 하고 판단 없이 들을 때는 그저 듣기만 하라.
이렇게 부처님을 관찰했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상적으론 내가 어떤 직위고 어떤 역할수행을 했고 또 다른 이가 어떤 직위고 어떤 역할수행을 했든 그것은 다만 부처님을 구성하는 부분이오, 다만 부처님의 나타남의 한 면면이니,
결국 자만하고 교만할 것 없고
모두가 평등한 모자이크 붓다이며
본질에서는 평등하지만
현상적으로 다만 묘하게, 실체는 없는 그 현상 작용이 중생의 눈에 각기 가지각색으로 비춰지게끔 나타날 따름이니
내가 법사역할을 했든 신도역할을 했든
다만 그 이름이 그럴 뿐이고
다만 그 역할이 그럴 뿐
본질적으론 평등하고
둘이 없는
하나이며
더 정확힌 하나라 할 것도 없는
공이라는 것을.
해서 결론은
다만 중생의 관점으로 볼 때 역할(이름)이 다를 뿐이니
우월의식 열등의식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열의식. 이걸 가지면 희론에 빠진것이고
상에 집착한 것이다.)
집착하지 말자.
실체시가 아닌 연기시로 세상을 보자.
그리고 연기하는 현상에는 주(主)라 할만한 실체가 없음을 있는 그대로 똑바르게 보자.
마하 반야 바라밀~
이 글의 제목의 출처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연기시와 실체시라는 단어의 출처 : <생각이 길이다> 용타스님 지음, 민족사 출간
주(主) 라는 표현의 출처 : 하단의 링크
https://m.blog.naver.com/tenzinpalden/223600273998
인과경 113. 💎 이것을 이해한 자, 진실한 도[道]를 얻으리라. 사리불의 깨달음 증득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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