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185

고난이 닥쳤을 때 극복하는 법

역경계에 주의를 두지말고 불보살님과 바라밀에 주의를 둬라. 해서 염불하고 육바라밀행 해라. 염불하고 육바라밀을 행할 때 나오는 밝은 에너지를 채워 살아가라. 그리고 고난이 닥쳤을 땐 마음을 바른 진리와 합치될 수 있게끔 진리와 어긋나지 않게끔 먹도록 하라. 즉 삼독번뇌 따라가거나 이기심과 교만심 갖지말고, 번뇌가 일면 알아차린 뒤, 수행으로 기도로 공부로 염불로 바라밀로 돌아오고, 십선업을, 육바라밀행을, 염불 등의 수행을 닦아나가라. - 광덕스님 법어집을 조금 읽고 배운 내용 -

괴로움에 저항할 때 일은 꼬이며 괴로움은 지속되고 더 커진다. (+ 신경끄고 무시하는 법)

그러니 괴로움에 저항하지 않고 괴로움을 받아들여야 함을 마가스님의 책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이 수용의 구체적 방법은 란 책에서 배웠다.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괴로움을. 몸의 감각을.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 생각 감정을. 그리고 소리를. 이와 같은 관념이 아닌 실제 경험 가능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임이고 수용이다. 괴로움에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괴로움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이나 불안이 일어날 땐 몸과 마음에 주의를 두거나 소리에 주의를 두자. + 미운 상대나 미운 상대에 대한 생각을 무시하고 신경쓰지 않는 방법을 오늘 공부하면서 조금 알게된 것 같다. 무시하는 것은 주의를 다른데 두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실재로 경험 가능한 대상 내지, 수행의 대상이나 공부하는 내용, 읽고있는..

나라고 집착하는 오온은 허공과 같다.

왜냐하면 오온에는 고정되고 변하지않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아란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오온은 연기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오온 무더기를 누군가 비방하고 공격한다한들 금강경의 아상을 비롯한 사상이 없는 인욕선인 즉, 부처님과 같은 경지라면 그 공격은 허공을 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 인간은 마음이 존재한다. 이 마음으로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이치를 체득하면 부처님과 같은 대자유와 대행복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오늘 월운스님의 금강경강의 책 《인생에 한번 금강경을 읽어라》 와 고익진 교수님의 책 《불교의 체계적 이해》 를 읽으며 공부한 내용이다.

물에 빠진김에 주운 진주

나는 어제 물에 빠졌다. 법륜스님의 책 에서는 물에 빠진 김에 진주를 줍는 지혜가 담겨있다. 해서 내가 어제 물에 빠진김에 주운 진주는 '내 의지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사실'이다.(물론 의지도 중요하다. 해서 매순간 항상 sati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 순간순간 몸과 마음을 알아차림 하는 것. 사념처 수행을 닦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어제 얻은 교훈은 범부중생인 내게 있어서는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요한 것에 대하여 다음 문단에서 부터 말해보려 한다.) 조건 따라서 잘 나가다가도 순간순간 물에 그냥 빠져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등의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 그냥 바로 물쪽으로 향한 차의 페달을 밟아서 물속으로 직진해버리게 되었었다는 것이다.(스스로를 성찰한 내용...

연기법을 보기 어려운 이유

12연기 가르침이나 사성제와 같은 중심 가르침에 의하면 욕애(欲愛, Kāma-taṇha)는 인생을 이끌어가는 동력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인생을 지배하는 힘이다. 경전에서 중생은 누구나 ‘갈애(渴愛)의 화살(taṇha-salla)’을 맞은 상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욕망이 지배하는 욕계(欲界)의 욕유(欲有)이고 욕생(欲生)의 존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본능적이고 맹목적인 욕망으로 쳇바퀴를 돌다가 일생을 마감한다. 욕애의 수준에 따라 현실인식에서 조작 또는 왜곡이 좌우된다. 애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애욕이 식거나 약해지면 그동안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애욕이 강할수록 현실 왜곡도 깊고 크다. 그리고 왜곡이 깊고 클수록 고통 또한 깊고 크..

계율/불사음 2024.11.05

“욕망[渴愛]이 세상을 이끌고 욕망에 의해 끌려다니며 욕망이라는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어미 쥐도 성적 쾌감과 관련한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배고픈 상태에서 먹이도 내팽개치고, 새끼 젖 주는 것도 내팽개치고, 심지어는 전기적(감전) 상태를 통과하는 것까지 감수하고서 쾌감에 집착한다. 이처럼 때로는 동물을 통해 인간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현생에서도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한데 애욕은 세세생생 익힌 업이고 그 힘으로 다시 삶을 받고 계속 생존을 지속하고 있는데, 성애에 목숨을 건다. 영화 제목 그대로 그것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아”이다. 때문에 초기경전에 붓다는 “무엇이 세상을 이끌고 무엇에 의해 끌려다니며, 어떠한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에 “욕망[渴愛]이 세상을 이끌고 욕망에 의해 끌려다니며 욕망이라는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계율/불사음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