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금강경과 반야심경 관련 해설

금강경 15분 해설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5. 2. 15. 14:18

 
十五. 持經功德分
15. 지경공덕분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 초일분
以恒河沙等身 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이항하사등신 보시 중일분 부이항하사등신
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보시 후일분 역이항하사등신 보시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若復有人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약부유인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 勝彼
문차경전 신심불역 기복 승피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수보리
以要言之 是經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
이요언지 시경 유불가사의불가칭량무변공덕
如來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若有人
여래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약유인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 悉知是人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悉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
실견시인 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
無有邊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무유변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卽爲荷擔如來阿縟多羅三藐三菩提 何以故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 하이고
須菩提 若樂小法者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수보리 약요소법자 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卽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즉어차경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수보리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天人阿修羅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천인아수라
所應供養 當知此處 卽爲是塔
소응공양 당지차처 즉위시탑
皆應恭敬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개응공경작례위요 이제화향 이산기처

노란 줄 친 부분 해석 :  나를 세우면 삶은 언제나 모순되는 상황들이 잔뜩 생긴다. 불합리한 상황들, 내 뜻에 맞지 않는 상황들, 부조리한 상황들, 억울한 상황들, 말도 안 되는 상황들, 어이없는 상황들, 조소가 나오는 상황들이 끊임없이 발생되는 것이다.

실체시를 해서 아상을 세우거나 인상을 세우거나 무언가 가치나 형상을 실체시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 반대급부의 대척점에 서있는 상반되는 요소가 함께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는 것이다.

현재 세상에는 온갖 부조리와 비이성적인 상황들 불합리한 상황들 말도 안 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들이 많이 전개된다. 온갖 전쟁 갈등 분쟁과 범죄들이 그러하다. 피해자들은 불합리함을 느낄 것이다. 어째서 이 세상은 이렇게 모순되는가. 전도되있는가 의문이 들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부조리들, 모순들의 시작점은 실체시에 있다. 나를 세우고 상대를 세운다. 아군과 적군 선악을 세운다.

그런데 그러한 실체시는 사실 사견이다. 착각이고 망상이다.

실상은 제법무아고 제법무자성 오온개공 일체개공이다.

해서 삶의 진실은 뭐라 이름 붙일 것이 전혀 없는 하나의 풍경이 흘러갈 뿐인 것이다.

즉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같은 것이다.

이 같은 실상을 보지 못하고 거기서 나를 세우면 남이 생기고 옳음을 세우면 그름이 생기고 선을 세우면 악이 생긴다.  그렇게 실체시를 함으로써 불합리와 모순과 온갖 악들이 생겨나고, 괴로움과 고통이 발생된다.

그럼으로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인연생기하는 일체의 현상에는 나라 할 실체가 없고, 나라 할 실체뿐만이 아니라 뭐라고 이름 붙일 실체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알면 나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모든 것(일체유위법)은 인연의 영역이고 인연의 일이고 불보살님의 일임을 알게 된다.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 인연에 달린 일이오 중중무진법계연기에 달린 일이오 인드라망에 달린 일이오 비로자나부처님의 일이고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일임을 알게 된다.

최근 기도를 하고 금강경을 읽는 중 느낀 것이 있다. 이 같은 불보살님의 일은 나를 세우고 아인중수자상을 세우는 범부중생의 견해로는 잴 수가 없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범부중생의 안목으로는 삶 속의 온갖 것이 모두 모순되고 온갖 것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상을 세울 시 온갖 것이 부당할 것이고 말도 안 되고 화날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실상은, 불보살님의 일(흘러가는 현상, 흘러가는 삶)은 생사를 초월해 있고 상견과 단견이라는 범부중생의 인식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제법무아를 새기며, 그리고 공성의 중도를 새기며 이름 붙일 실체가 없음을 새기며

불보살님의 일은 나를 세워서는(아상을 세우고 실체시를 하면서는) 결코 내 뜻대로 될 수가 없으며 모순되지 않을 수가 없음을 알고서,

모든 일이 그저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임을 알고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불래불거임을 알고서

그동안 쭉 살아오면서 항상 세운 '나'를 내려놓고,

제법무아임을 알면서 기도를 하니 필자의 경우 예전과는 달리 기도가 술술 잘 되었다. 금강경이 술술 잘 읽혔다.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지금껏 살아오며 경험한 온갖 모순되는 상황들이나 보고 듣게 되었던 온갖 모순되고 불합리한 세상일은 모두

불보살님의 뜻이었고 불보살님의 나툼이었고 불보살님의 가르침이었고 제법무아를 체득하게끔 해주기 위한 가르침이었고 상을 타파하고 중생의 소견에서 벗어나게끔 해주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르침을 알아먹지 못하고 아상 인상을 세울 때는 기도하기가 힘들었다. 탐욕 성냄 인색함 질투 시기심 미움등의 번뇌 때문에.

그러나 아주 최근 들어서 나라 이름붙일만한 실체가 없음을 새기고 현상 즉 불보살님의 뜻은 실상 불생불멸이고 중도가 실상시기에 본래 생한바없고 이름붙일것이 없는 것이기에, 이 같은 실상은 좋고 나쁨과 생사를 초월해있기에. 아상 인상을 세우고 분별심으로 재려하면 도저히 재지지가 않고 모순될 뿐임을 알고서, 제법무아를 새기며 그냥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이라고 관하면서 나를 세우지 않고 제법무아를 새기면서 기도하니 대비주를 외우거나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걸림이 없었다.

이로서 느꼈다. 꿈같은 세상사, 꿈같고 환상같은 이 현상으로서 흘러가는 이 삶 속에서 실체시를 하며 아인중수자상등 상을 세우면 금강경 15분에 나오듯 금강경을 청수독송 위인해설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반대로 나라는 상을 버리고, 일체유위법에 내가(나라는 실체가) 있고 상대가(상대라는 실체가) 있고 좋고 나쁜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일체유위법은 무자성 공함을, 일체유위법은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임을 관하며 실체시 즉 상을 내지 않고, 실체는 없고 현상만이 있음을 알며 상을 내지 않고 기도하니 금강경을 잘 독송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식으로 상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친한 이뿐만이 아니라 원수가 내가 기도하고 독송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그것이 걸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추가적으로 든 생각을 더 적어보자면

결국 금강경을 수지독송 위인연설 가능한 사람은 나 너 선 악 좋은것 싫은것 등의 언어로 된 관념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즉 희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생들은 모두 희론에 빠져서 살아가고 언어적 관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그럼 그런 중생들은 금강경을 수지독송 위인연설하는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관과 반야사상을 자꾸 공부하고 이 교리를 머리로 우선 이해하여 연기 - 무자성 - 공을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매일매일 금강경을 읽거나 쓰는 수행을 하고,

금강경에서 나오듯 일체유위법을 자꾸만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으로 바라보는 수행을 하다보면

점차적으로 언어적 관념 즉 희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테고

그러다보면 진정으로 무자성 공을 체득하고 진정으로 금강경을 수지독송 위인연설 하게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시말해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인 상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사상이란 관념(실체시)를 떠나게 된 것이다.

이상이다.


나무 불법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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