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179

인과법을 적용해 바라보니 이해하게 되고 연민하게 되었다.

오늘 기도를 하다보니 예전에 법륜스님께 배운 이해와 연민심 그리고 용서에 대한 가르침이 현실에 적용이 되었다. 세상은 인과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회를 하는 아트만과 같은 실체적 자아는 없으며 다만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을 뿐이다. 다만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발생되고, 그 발생된 결과를 마주하며 중생은 전도몽상에 빠져있기에 다시금 원인을 짓고, 그 원인으로 인하여 다시금 결과가 발생된다. 깨닫기 전까진 이와 같은 과정이 무한반복된다. 이것이 윤회이다. 나는 오늘 부모님을 위하여 기도를 하였다. 부모님이 아픈 곳이 나으시기를 바라며 관세음보살 양류지수진언을 외웠다. 그 와중 가슴에 절절하게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아.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실 수 밖에 없으셨..

하루의 시작과 끝은 나무 자성불

예전에 진관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때 배운 것. 하루의 시작은 자성불에게 귀의하는것으로 시작하라고. 예불드리는 것보다도 앞서 자성불에 귀의하라고. 해서 새벽예불 전까지는 묵언하라고. 이를 진관사 스님께 배웠다. 이것이 생각나 적어본다. 앞으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자성불에게 귀의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맺으면 좋을 것 같다. 불자의 목표는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고 성불하는 것이니 말이다.

빈 배가 되자

빈 배는 다른 배와 부딪혀도 타고있는 사람이 없기에 화를 내지도 않는다. 아상을 버리자. 이기심 자존심 자만심을 버리자. 이를 위해 가장 낮은곳에 내 마음을 두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위하고 공경하자. 그렇게 겸손과 공경을 하자. 그 극치에 이르렀을 때 나를 잊게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그 극치에 이르렀을 때 더이상 헛된 자아라 할(나라 할) 실체를 생각하지 않아서 무아를 체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빈 배가 되며, 구름이 아닌, 이를 포함한 허공이 되고, 파도가 아닌, 이를 포함한 바다가 되자. 이를 위해 하심하고 겸손하며 공경하자. 그리고 나와 내것이라 집착했던 것들을 조건없이 그리고 애와 증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베푸는, 버리는 연습을 하자. 그리고 보시를 함에 있어서 반야..

하심과 귀의

나무 불 나무 법 나무 승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귀의할 때는 귀의하는 대상만이 존재한다. 귀의할 때는 '나'를 잊기 때문이다. 이 귀의하는 마음이 곧 하심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심이란 나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니깐. 하심이란 나보다 다른생명을 먼저 생각하여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니깐.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평등하게 보시하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대지와 같고 태양 봄바람 물과 같이 말이다. 고로 하심이란 친하고 안친하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멀고 가깝고의 구별과 관념을 떠나서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바라보며, 일체중생을 있다고 할 수 없는 허상이자 실체적인 관념인 '자아'보다 먼저 생각하고 우선해 생각하여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하심하는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리라는 마음..

보시바라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여 하는 보시. 다른 이름으로 하심이라 한다. 이 하심과 보시는 사랑하고 증오하는 것과 무관하게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대지가 온갖 오물을 받아들이고, 걸레가 온갖 오물을 받아들이며, 물이 온갖 오물을 싰어내주고, 태양이 만 생명에게 조건없이 햇살을 주듯이 말이다. 이 같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에서 하는 보시가 흥부와 같은 보시이고,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는 보시는 놀부와 같은 보시이다. 이 같은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서 하는 보시는 놀부심보의 보시이고 이기심의 발로이기 때문에 진정한 보시라고 할 수는 없다. 진정한 보시는 나를 가장 낮은 곳에 두고 나보다 다른 생명을 우선해서 배려하며, 멀고 가깝고 등의 구별을 하지 않으며 일체중..

한바탕 연극 속 보살의 길

공을 체득하지 못했다면 그전까진 머리론 안다해도 경계에 부딪히면 괴로우니 수행정진 해야하는 것이고, 자기가 공을 체득했다고 하더라도 자비심이 있으니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알고 한바탕 연극 잘 하면서 하화중생 하고자 보살은 머무름 없이 삼륜청정한 보시를 하면서 세속에서의 복도 짓고, 중생들하고도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원효대사와 같이 어울리는 것이 보살의 길이지 않겠는가. 연기하기에 이름, 개념에 해당하는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없지만 연기하기에 작용은 있다. 즉, 연기해서 실체는 없되 연기해서 작용(현상)은 있는 것이다. 실체라 할 것이 없는데 사바세계 중생세간에서는 언어를 사용하니 구분되지 않은 현상을 구분짓고 실체적으로 바라보며 이름을 붙인다. 그러니 인생은 한바탕 연극이 아니겠는가. 자식..

고난이 닥쳤을 때 극복하는 법

역경계에 주의를 두지말고 불보살님과 바라밀에 주의를 둬라. 해서 염불하고 육바라밀행 해라. 염불하고 육바라밀을 행할 때 나오는 밝은 에너지를 채워 살아가라. 그리고 고난이 닥쳤을 땐 마음을 바른 진리와 합치될 수 있게끔 진리와 어긋나지 않게끔 먹도록 하라. 즉 삼독번뇌 따라가거나 이기심과 교만심 갖지말고, 번뇌가 일면 알아차린 뒤, 수행으로 기도로 공부로 염불로 바라밀로 돌아오고, 십선업을, 육바라밀행을, 염불 등의 수행을 닦아나가라. - 광덕스님 법어집을 조금 읽고 배운 내용 -

괴로움에 저항할 때 일은 꼬이며 괴로움은 지속되고 더 커진다. (+ 신경끄고 무시하는 법)

그러니 괴로움에 저항하지 않고 괴로움을 받아들여야 함을 마가스님의 책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이 수용의 구체적 방법은 란 책에서 배웠다.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괴로움을. 몸의 감각을.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 생각 감정을. 그리고 소리를. 이와 같은 관념이 아닌 실제 경험 가능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임이고 수용이다. 괴로움에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괴로움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이나 불안이 일어날 땐 몸과 마음에 주의를 두거나 소리에 주의를 두자. + 미운 상대나 미운 상대에 대한 생각을 무시하고 신경쓰지 않는 방법을 오늘 공부하면서 조금 알게된 것 같다. 무시하는 것은 주의를 다른데 두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실재로 경험 가능한 대상 내지, 수행의 대상이나 공부하는 내용, 읽고있는..

나라고 집착하는 오온은 허공과 같다.

왜냐하면 오온에는 고정되고 변하지않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아란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오온은 연기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오온 무더기를 누군가 비방하고 공격한다한들 금강경의 아상을 비롯한 사상이 없는 인욕선인 즉, 부처님과 같은 경지라면 그 공격은 허공을 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 인간은 마음이 존재한다. 이 마음으로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이치를 체득하면 부처님과 같은 대자유와 대행복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오늘 월운스님의 금강경강의 책 《인생에 한번 금강경을 읽어라》 와 고익진 교수님의 책 《불교의 체계적 이해》 를 읽으며 공부한 내용이다.

물에 빠진김에 주운 진주

나는 어제 물에 빠졌다. 법륜스님의 책 에서는 물에 빠진 김에 진주를 줍는 지혜가 담겨있다. 해서 내가 어제 물에 빠진김에 주운 진주는 '내 의지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사실'이다.(물론 의지도 중요하다. 해서 매순간 항상 sati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 순간순간 몸과 마음을 알아차림 하는 것. 사념처 수행을 닦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어제 얻은 교훈은 범부중생인 내게 있어서는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요한 것에 대하여 다음 문단에서 부터 말해보려 한다.) 조건 따라서 잘 나가다가도 순간순간 물에 그냥 빠져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등의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 그냥 바로 물쪽으로 향한 차의 페달을 밟아서 물속으로 직진해버리게 되었었다는 것이다.(스스로를 성찰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