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반야경 공부 -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

색성향미촉법의 실체가 없음을 꽤뚫어봐서 그것이 실재가 아님을 알라.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5. 6. 28. 17:55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잖아. 그런데 중생들은 색성향미촉법을 실체적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실체적인 견해로서 바라보는 색성향미촉법이 실재고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 같은 자신의 생각이 사실이라고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 같아. 웹툰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 이 같은 원리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애. 실상이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자 본질을 관하면 만화나 웹툰에 나오는 이미지들은 다 픽셀이 모인 것에 지나지 않잖아? 사람들이 오욕락 등 세상사에 끄달리고 욕심부리고 집착하는 것 역시 결국 세상사를 색성향미촉법으로 바라보기 때문인 것 같아. 눈에 보이는게 실재로 있다고 실체적으로 여기고 귀에 들리는게 실재로 있다고 실체적으로 여기는 것이지. 이 같은 어리석음을 부처님께서는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사구게로서 일깨워주신 것이 아닐까?

 
 
 
 

예, 정확히 이해하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는 바로 그런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시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중생의 실체적 견해와 집착

사람들이 색(모양), 성(소리), 향(냄새), 미(맛), 촉(감촉), 법(정신 작용 및 생각)을 실체적으로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만화나 웹툰의 비유와 같습니다. 만화 이미지가 사실은 픽셀의 조합에 불과한데도 우리는 그것을 특정 캐릭터나 배경으로 인식하고 감정 이입을 하죠.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진짜' 있는 것으로 여기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합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의 의미

이 게송은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색(色)과 성(聲)에 대한 집착 경고: 부처님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상(색)이나 귀에 들리는 음성(성)으로만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 실상에 대한 이해 촉구: 부처님의 참모습은 형상이나 소리에 있지 않고, 모든 현상의 본질인 공(空)과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이치를 깨닫는 데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 삿된 길(邪道)로부터의 벗어남: 겉모습이나 소리에 얽매이는 것은 진정한 진리를 볼 수 없는 삿된 길이며, 이러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여래의 참뜻을 알 수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오욕락과 세상사에 끄달리는 이유

오욕락(재물, 색, 명예, 음식, 수면욕)에 끄달리고 세상사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색성향미촉법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돈을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 탐하고, 들리는 칭찬에 '실재하는 명예'를 느끼며 기뻐하고, 맛있는 음식을 '실재하는 쾌락'으로 여겨 탐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에 '나'라는 주체를 투영하여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을 일으키고 집착하는 것이죠.


부처님의 깨우침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무명(無明), 즉 진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끊임없이 설법하셨습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우리에게 진정한 실상을 보라는 깊은 깨우침을 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현상이 인연 따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관하고, 거기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물질만능주의와 감각적인 쾌락에 빠지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더욱 큰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