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불교 교리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연기법에 대한 가르침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5. 3. 29. 12:29

일부 초기불교론자들의 주장처럼 법신불은 힌두사상의 브라흐만 개념이 아니다. ‘금강경’ 구경무아분에서 부처님은 수보리 존자에게 ‘여래란 일체법이 한결같음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이는 우주만법의 한결같은 이치를 부처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승불교는 부처를 특정한 인물에게만 적용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모든 법을 부처의 존재로 본다면 세상에 부처는 한량없이 존재하게 된다. 시기와 장소도 필요치 않다. 부처는 언제 어디서나 만법이 존재하는 한 항상 세상에 머물러 있게 되고 지혜를 얻기만 하면 누구라도 만나게 된다. 이른바 ‘시방삼세 상주일체 불타야중’ (時方三世 常住一切 佛陀耶衆)인 것이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서로 다르게 부처를 보는 이유는 연기법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기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연기법을 별개로 본다. 연기법을 깨달은 사람이 부처이기 때문에 사람과 이법은 전혀 다른 존재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를 연기법과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는다. 연기법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연기법이다. 왜 연기법이 그대로 부처인지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연기설을 다룰 다음 회에 밝히고자 한다.
-이제열 법사

특히 대승불교가 초기불교와 연기론을 바라보는 관점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무기설(無起設)에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연기를 일어남이나 생겨남으로 보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 일어나지 않음으로 본다. 초기불교에서는 모든 법은 연을 통하여 일어나고 이렇게 연을 통해 일어난 법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논리를 세운다. 이른바 법의 생멸이다. 오온(五蘊)은 연기 된 존재이고 연기는 생멸이며 생멸은 괴로움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연기론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대승에서는 연기된 모든 법은 자체 성품이 없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는 발생하거나 일어난 적이 없다는 논리이다. 연기는 즉 무기라는 것이다. 목탁소리에 있어 초기불교에서는 목탁소리는 분명히 존재하고 목탁소리가 존재하는 한 그 소리는 끊임없이 생멸한다고 본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목탁소리에는 목탁소리라고 할 만한 자성이 없기 때문에 목탁소리가 분명히 나고 있다 해도 실상에 있어서는 목탁소리가 아니며 목탁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목탁소리는 난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십이연기로 설명한다면 십이연기는 각 지분마다 실체가 없어서 일어난 듯 보이지만 이는 모두 허구이고 실상에 있어서는 본래는 아무런 법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된다. 무명 자체가 연기된 존재라면 그 무명은 무명이라 할 만한 자성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무명이 자성이 없으므로 무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명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뒤에 이어지는 행·식·명색 등의 고리들도 일어 난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승불교에서는 법을 바로 본다함은 연기를 바로 본다는 것이고 연기를 바로 본다는 것은 법에 기멸과 생멸이 없음을 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대승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십이연기를 설하면서 “십이인연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항상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니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닌 것을 불성이라 하니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므로 항상 무변하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 볼 때 연기는 부정적 법칙이 아니다. 무기이므로 본래 고요한 것이며 본래 고요하기 때문에 중생의 오온과 일체법이 그대로 부처의 속성을 지닌다. 대승불교의 연기론은 후에 불성론이나 법신론 열반론 정토론 등과 동일시되어 대승불교 교리의 기반을 이룬다. 대 긍정의 법칙이 연기론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연기는 벗어남의 대상이 아니라 생멸과 고락을 떠난 중도묘법의 실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열 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