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나의 행위다.
남이 무슨 행위를 하건간에 그것은 남의 행위다.
남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내가 어떻게 행위하느냐 그것만이 중요하다.
남이 어떤 행위를 하는지는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의 행위에 따르는 과보는 행위자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이 무슨 행위를 하던지 말던지 간에 그것은 나의 행위과는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개중 끝까지 살아남아서 사회로 복귀한 사람의 특징은
그곳에서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챙기고 도왔다는 것이다.
아주 좁디좁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햇빛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하루 한덩이 나오는 딱딱하고 질 안좋고 작은 빵 한쪽조차도 다른 이들과 나눴다.
그리고 깨진 돌조각으로 면도를 했고 스스로를 가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이타적인 행위를 꾸준히 해 나갔다.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알고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이 이야기를 법문에서 들었고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앞서 말한 내용과 같다.
남이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간에 그것과 나의 행위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남이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고 악하게 대한다고 할 지라도.
그러한 행위에 어떠한 반응을 할 지. 어떠한 대응을 할 지는 순수하게 오로지 나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생명체에게는 항상 외부에서 어떠한 자극이 발생한다.
그리고 축생계에 속하는 중생들은 그 자극에 항상 본능적인 반응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
삼악도는 너무 괴로우며, 하늘세계는 너무 즐거움이 가득해서 불교공부와 수행을 하기가 힘든 곳이다.
오직 인간계 그 중에서도 사바세계만이 적절하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혼재된 곳이며,
인간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중생이며 자유의지가 존재하기에 오직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만이 불교공부와 불교수행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생명체에게는 항상 외부 아니 그냥 살아가면서 어떠한 자극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 해서 자극에 대한 반응을 자기 자신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 사람마다 반응이 다른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어떤 차가 갑작스럽게 끼어들기를 해서 사고가 날 뻔 한 상황.
이 같은 똑같은 상황에서 A는 창문을 열고 버럭 화를 내고 B는 창문을 닫아놓은 상태로 끼어들기를 한 차에게 욕을 하고
C는 어휴 위험할 뻔 했네. 사고 안나서 다행이다. 라고 하고 D는 C와 같이 생각하고서는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이라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보다 더 정신을 집중해서 조심해서 운전을 해 나간다. E는 어휴. 뭐 급한일 있슈~? 하고 짜증을 유머스럽게 풀고서는 다시 운전을 한다. 이 같이 사람마다 반응이 모두 제각각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반응이 곧 행위로서, 이 행위를 불교에서는 업이라고 하며, 이 업을 지으면 이 업은 씨앗과 같이 마음 속에 저장되었다가 후일 싹이 틀 조건이 형성되면 업의 과보가 발생하게 된다. 이 같은 원리로 우주는 지속해서 성주괴공을 반복하고, 중생은 생노병사를 반복한다.
여하튼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공백에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있다.
이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극과는 상관없이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며, 인과법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그와 같은 사람은 자신의 미래라는 화원을 채울 아름다운 꽃씨를 날마다 뿌려나간다.
오계를 수지하고 십선계를 수지하며, 악을 버리고 선을 증장시켜나가며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따르고 수행하며 자신의 마음을 맑혀나간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를 해나가는 것이다.
이 같은 사람은 자신을 맑힘과 동시에 세상을 맑히고
자신을 밝힘과 동시에 세상을 밝힌다.
이 같은 사람이 바로 불자요 수행자이다.
중요한 것은 남의 행위가 아닌 자신의 행위라는 사실.
이를 잊지 마시길 바란다.
그럼으로 수행자는 남의 행위가 아닌 자신의 행위를 살펴야 할 것이다.
남들이 짜증을 내더라도 나는 예의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괴롭히고 갈구더라도 나는 거기 개의치 않고 평정심을 유지해나가며 내 할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상황과 관계없이 수행자는 괴롭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자재이다.
이 같은 수행자가 되려면 앞서 예기했던 남의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중요함을 알아야 할 것이고
남의 행위가 아닌 자신의 신구의 삼업 행위를 살피고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며
추가적으로 형상과 이름이라는 상은 중생을 속이는 거짓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형상과 이름은 중생들을 속인다. 어떻게 속이는가.
마치 실체가 없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마냥 중생들을 속게끔 만든다.
하지만 살상은 형상과 이름들이 보여주고 지칭하는 대상들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아서
실체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세계에는 다만 조건에 의존해서 조건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이를 금강경에서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라는 사구게로 설명해준다. 일체의 모든 인연생기한 현상들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같이 실체가 없고 현상작용만이 있다는 것이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 『금강경』 -
우리의 몸뚱이든 마음이든, 지구든 우주든, 모든 존재들은 마치 몽·환·포·영과 같고 로와 전과 같다는 것입니다. 몽(夢)은 꿈이요, 환(夢)은 허깨비, 포(泡)는 물거품, 영(影)은 그림자이며, 로(露)는 이슬, 전(電)은 번갯불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존재는 몽(꿈), 환(허깨비), 포(물거품), 영(그림자), 로(이슬), 전(번갯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6가지의 공통점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 월호스님의 풀이 -
(월호스님 풀이 출처 : http://www.haengbul.co.kr/community/contents.jsp?no=80883&fid=)
http://www.haengbul.co.kr/community/contents.jsp?fid=&no=80883
이와 같이 관찰하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여름이 간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다가서고
www.haengbul.co.kr
다른 비유를 하자면 무지개, 신기루,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 일어나는 열기 등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물안개도 비슷한 경우이다. 사우나의 김 또한 마찬가지의 실체 없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비유에서 예기한 대상들만이 아니라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다 이와 마찬가지의 실체가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거짓이라고 할 수 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과 중관사상을 공부하여서 이 같은 거짓이 거짓임을 명확히 알 때 수행자는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사기꾼의 사기에, 도박꾼의 트릭에 속지 않는 것과 같이 말이다.
형상과 이름은 실체가 없지만 마치 실체가 있는 것마냥 우리를 현혹시키고 속인다.
수행자라면 이 형상과 이름이라는 '상'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상(相)은 허망하다(=거짓이다=실체가 없다)
이와 같이 모든 상이 실제로는 그 이름이나 형상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음을 똑바로 볼 때
부처님을 볼 수 있다.
- 금강경 사구게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를 필자가 풀이한 내용 -
그런데 이 형상과 이름이 실체가 없음을. 무자성임을. 거짓임을 안다면,
우리는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형상과 이름으로 이루어진 현상세계의 경계들에 끄달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누군가 자신을 모욕하고 무시하고 자존심을 상하게하고 화나게한다면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지르다가도,
이 같은 형상과 이름이 거짓이라는 금강경과 반야심경과 중관사상에서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을 알게 된다면
이 같은 형상과 이름으로 이루어진 오온 12처 18계라는 모든 현상 경계에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 둘 수 있게 될 것이다.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고 신경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끄달리지 않는 것이며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
정리 해보자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형상과 이름이 거짓임을 알아서 형상과 이름에. 즉 상(相) 에 속지 않으며
맡딱뜨리는 일체의 경계 현상들에 (이름이나 형상에 해당되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고정불변한 개체성이나 실체가 없음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거짓에(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에) 관여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상관하지 않을 줄 알며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백이 있음을 알아서,
그 공백에 존재하는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경계와는 상관없이 제악막작 중선봉행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해나감과 더불어
타인의 행위가 아닌 나의 행위를 살피고, 타인이 아닌 나의 신수심법을 살피면서 자정기의를 해나가며 끊임없이 수행정진 해 나갈 때
우리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우며 나날히 향상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불자의 길이며 수행자의 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나무 불법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마하반야바라밀
+PS. 거짓에 속지 않으려면 금강경과 반야심경과 중관사상을 공부해야 합니다. 더불어 본질도 중요하지만 현상도 중요함을 함께 알아야 함으로 자비심을 키우는 수행과 공부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그럼으로 자애명상도 많이 하시고, 부모님께 가족들에게 효도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화엄경과 법성게를 공부해보시길 바랍니다. (금강경은 색즉시공의 측면이 강조되는 경전이며 화엄경과 능엄경은 공즉시색의 측면이 강조되는 경전입니다.)
+ 남이 뭐라하던 어떻게 행동하든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나만 지악 수선 청정을 닦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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