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178

수행은 판단하지 않는 것. 고락 분별의 양변을 잡지 않고 판단 없이 알아차리는 것. 바라는 마음 없이 (염불하거나) 기도하는 것.

깨닫고 싶다 수행을 하자 중도 수행을 하자 연기를 관하자 공을 관하자 제법이 연기했다 색수상행식이 연기했다 연기한것은 무자성이다 무상하고 무아고 공하다 고정불변의 독립적 실체는 없다 허나 중생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즉다 다즉일 one for all, all for one 이건만 이같은 연기법을 모른다 해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구분지어보고, 구분지어본 일부에 이름을 붙여 부른다 이것이 실체시요 분별이오 어리석음이고 집착이다. 여기서 고통이 발생한다. 난 괴로움서 벗어나고싶다. 수행을 하자. 수행은 판단하지 않고 알아차리는것 고락의 양변을 추구하는게 아닌 고도 락도 알아차리는 것 언어는 이분법이다. 고락도 이분법이다. 양변의 극단을 잡지않고 단지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린다. 그것이 법답다. ..

기도는 바라는 바 없이 하기. 느낌과 생각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면 그 알아차리는 순간은 부처님이다.

경전에 보면 기도의 공덕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있다. 그 공덕을 얻고자 기도하는 것은 욕심이다. 그 공덕에 대해 경전에 설해진 부분 역시 결국 언어다. 언어는 이분법이다. 결국 그 공덕을 얻고자 기도하는 것은 욕심이고, 그 공덕이라 하는 이름을 실체시 한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다라니를 외울 때 욕심이 없이. 즉, 바라는 바 없이 외우신다. 그러니 향상하신 것이다. 기도는 바라는 바가 없어야 된다. 다만,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으로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괴로움과 마주하게 되고, 바라는 바. 소원이 생기게 된다. 이 같은 발원, 소원은 기도 앞과 뒤에 시간을 잡고 딱 해주고, 기도할 때는 기도만 해야겠다. 염불을 할 때는 염불만 바라는 바 없이 하고, 다라니를 외울 때는 다라니만 바라는 ..

돌아가 의지함 - 귀의 에 대한 고찰

난 나무 불법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라 하여 내가 삼보님께, 관세음보살님께, 아미타불께 가는걸 연상했는데, 오늘 그냥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드리니 이게 더 쉽고 가볍고 편하더라. 직후 든 통찰은 아 이미 삼보님을 생각한 시점에서 내가 삼보님께 귀의해있구나 라는 것이다. 어디로 가고 오고 할게 없고 그냥 불 법 승 아미타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리는 시점, 연상하는 시점, 생각하는 시점에 이미 귀의해있는 것이구나. 라는거다. 해서 어디로 가고, 애기가 부모품에 안기려는 마음 억지로 낼것 없이 그냥 삼보님 불보살님을 연상하기만 하면 된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무 불법승 할땐, 불법승 삼보님을 떠올리면 이미 그 순간 귀의해 있는거다. 모든 것은 연기하기에 일즉다 다즉일이기에('즉'은 '..

집착 안하는법

집착하면 계속 생각한다. 이 집착 안하면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편안하다. 어찌 안할까. 내가 찾은 방법. 염염보리심 처처안락국. 염불을 하면 된다. 부처님 생각을 하는것이다. 생각생각 부처님 생각을 하면 처처가 극락정토고 불국토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네 마음은 한번에 한가지의 대상에만 안착해있을 수 있다. 머무를 수 있는거다. 그러니 집착해서 자꾸 생각하던 대상을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혐오해버리는것도 하나의 방법같다만, 꼭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냥 다른대상에 주의를 두고 집중하면 되는 것 같다. 몰입하는거다. 이어폰을 끼고 염불 독경을 듣는다던지. 지관수행을 한다던지. 가능하다면 염불 주력 독경 사경 절 등 수행을 한다던지 말이다. 또 내가 마음이 편안해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것도 도움이 되..

연기하는것은 내가 아니다

연기하는것은 내가 아니다. 연기는 부처님인지라 부처님 일이다. 알아서 하시라고 상관안하고 내버려두자. 외부 경계도, 내 색수상행식도 내버려두자. 실상 모든 것이 상호작용함이 연기여서, 무상 무아여서 나라할 실체도 없다. 그러니 일체유위법에 속하는 내 안팎 경계는 모두 다 부처님께 연기법께 맡기고 난 다만 언어, 문자, 생각, 분별, 구분지음, 이분법을 떠난 불이법이자 한마음이자 공인 진여불성만을 찾되, 그 방법이 나는 염불인거고 그 진여불성을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는거고 이 진여불성은 나와 내가 아닌 것, 나와 남 등의 구분이 없으니 이렇게 관음정근하다보면 모든 현상이 최속원만하게 사필귀정될것이고 자리이타적인 발원들도 모두 성취될것이리라. (다만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인 진리..

어리석어 지은 죄업이란 무엇일까

탐욕으로 지은죄업을 참회하고 성냄으로 지은죄업을 참회하며 치심(어리석음)으로 지은 죄업 참회하는데, 이때 어리석음은 전 이걸 생각합니다. 1.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이치를 몰라 남을 미워하며 지은 죄업. 2. 인연생기법을 몰라서 실체시를 하며 분별하고 차별하고 구분지으며 집착했던 죄업. 전 이 두 죄업을 어리석어 지은 죄업이라고 생각하고 참회진언을 외웁니다. (제가 두 스승님께 법문을 들었는데 한 법사 스님께서는 어리석음이란 좋고 나쁘고 길고 짧고 우월하고 열등하고 더럽고 깨끗한등 재고 따지고 분별하는 '분별심'이라 가르쳐 주셨고 다른 한 스승께서는 어리석음이란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인과법칙을 모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며 내가 심은데로 거두고 행위한데로 받게된다는 인과..

합장 예배, 염불 맑은정신으로 잘하는 법

분별없이 하면 됩니다. 분별없이 그냥 오직 관세음보살이면 관세음보살 불법승 삼보님이면 불법승 삼보님께 분별없이, 바라고 구하는 마음도 없고 문자나 언어로 이름지을만한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있다거나 없다고 할만한 그런 구분되고 차별이 있는 분별심 없이 그냥 오직 반배면 반배 삼배면 삼배 염불이면 염불 딱 분별없이 하기만 하면 됩니다. 2024.3.4.월. 기도 후 알게된 것

앞으로 가질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

오온은 내가 아니다. 그럼으로 모든 일은 부처님이 알아서 하시니, 나는 모두 맡기고 그저 일어나는 경계는 분별하지 않고 염불만 하면 된다. (알아차렸다면 다시 염불로 돌아오면 된다. 가령 이런 경계가 경험된다거나, 이런 생각에 내가 빠져있거나 이런 분별 판단을 하고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면 그뒤 분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다만 그럴뿐인 모습을 생각한뒤 다시 염불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때 모든 일의 범주는 외부 경계뿐만이 아니라 내 느낌과 생각과 감정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생각이나 감정이 들건 나는 그마저도 부처님께 맡긴 뒤 내버려두고 나의 일이자 행위인 기도에만 오직 전념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피해 안주는 선에서 내 기도 조용하고 꾸준하게 지속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외부가 아닌 내 자신을 바라보자

내가 볼건 밖이 아닌 안입니다. 내가 볼건 다른사람의 말과 몸과 생각으로 하는 행위가 아닌 내 자신의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행위입니다. 내가 닦을건 외부의 악이 아닌, 그 악이 보이는 내 마음의 때(탐진치 삼독번뇌)입니다. 내가 신경쓸건 다른사람의 행위와 일이 아닌 내 자신의 행위와 일입니다. 외부에서 괴로움이 일어나는 상황을 만났다면 안으로 돌려서 괴로움의 화근인 탐진치 삼독심을 소멸시키는데 집중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수행정진 할 것입니다. 내 자신을 보겠습니다. 왜냐면 다른사람을 살펴선 괴로움이 소멸될 수 없고, 다른사람을 바꾸고자 하는 길은 괴로움이 소멸될 수 없는 길이지만, 나를 살피고, 내 몸의 감각과 느낌 감정 생각을 알아차리며, 내 마음속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는 정진의 길은 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