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무 불법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라 하여
내가 삼보님께, 관세음보살님께, 아미타불께 가는걸 연상했는데,
오늘 그냥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드리니 이게 더 쉽고 가볍고 편하더라.
직후 든 통찰은
아 이미 삼보님을 생각한 시점에서 내가 삼보님께 귀의해있구나 라는 것이다.
어디로 가고 오고 할게 없고
그냥 불 법 승 아미타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리는 시점, 연상하는 시점, 생각하는 시점에 이미 귀의해있는 것이구나. 라는거다.
해서 어디로 가고, 애기가 부모품에 안기려는 마음 억지로 낼것 없이
그냥 삼보님 불보살님을 연상하기만 하면 된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무 불법승 할땐,
불법승 삼보님을 떠올리면 이미 그 순간 귀의해 있는거다.
모든 것은 연기하기에
일즉다 다즉일이기에('즉'은 '이코르' 즉 같다는 의미입니다. 기호로는 '=' 이렇게 표시하죠.)
모든것은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든것을 위해 존재함으로.
개별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건 없고
모든건 상호의존적으로 이어져있고,
인과의 고리로 하나는 모든 것과, 모든 것은 하나와 연결되있으니,
불이이다.
둘이 아니다.
하나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귀의해있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불법승 삼보님께 말이다.
나무 불법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화엄성중
나무 불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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