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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의 근본은 마음이다 - 법구경 1,2게송 : 법상스님 경전강의
절에서 몇몇분들과한달에 두 번법구경 공부를 하기로 하여,이 참에 법구경 강의를 조금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처음에 올렸던 강의를 조금 수정하였습니다..........제1장 쌍서품(雙敍品)마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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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하고 누가 날 괴롭히건 갈구건
수행자는 밖이 아닌 안을 보는 사람이며
날 괴롭히고 갈구고 모욕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보는 길을 걷는 자 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고
마음이 모든 일에 앞서기 때문이다.
마음이 근본 인(원인)이고
☆타인의 마음은 나의 영역이 아니며 타인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들과 그 과보역시 나의 영역이 아니지만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어찌 마음을 먹으며 어떤 의업 구업 신업을 짓는가는 나의 영역이고, 그에 따르는 과보 역시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만나는 모든 경계는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창조와 변화의 동력은 언제나 내면에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야 밖을 향하는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릴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마음)이 세상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악행을 그만두고 선행을 할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니 그토록 중생들은 밖에서 행복을 구하고 찾는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이 세상에는 싸움과 전쟁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푸틴과 김정은과 시진핑과 트럼프를 비롯한 이 세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거나 전쟁을 준비하고 있거나 싸우거나 갈등중인 이들이 이 사실을 알면 이 세상이 잠잠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 더 엄밀하게는 사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실체 없는 마음 뿐이다. 중생들은 밖으로만 시선이 팔려있는데 중생들의 정신이 팔려있는 그 외부의 대상들은 모두 다 헛깨비일 뿐이다. 일체유위법은 여몽환포영 - 즉 인연생기하는 모든 현상들은 다 꿈이고 환상이고 물거품이고 그림자이지 않은가. 다만 헛깨비라 해도 실체가 없는 것이지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악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선인락과 악인고과이니까 말이다.)
그럼으로 늘 밖이 아닌 안을 살피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다른 이가 어떻게 행동하건 말건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고 여기며 살아야겠고, 다른사람의 마음을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겠다. 이것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이익을 가져다 주는 수행자의 자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한마음 잡지를 읽다가 이 같은 대행큰스님의 가르침을 읽게 되었다.
공부하는 사람은 안으로 돌립니다.
- 대행큰스님 -
이 공부.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공부 - 즉 불교공부를 하는 사람은 밖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에서 현상의 원인을 찾으며,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림을 지속하고, 판단없이 일어나는 느낌을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밖이 아닌 안을. 다른사람의 생각이나 정신작용이 아닌 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내 마음을 돌리고 변화시킨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으로 이 공부 - 불교공부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늘 잘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일의 근본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공부를 하시는 불자님들께 구체적으로는 신수심법 사념처 중 수념처 수행을 권한다.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은 느낌으로 분류된다. 이 같은 느낌들을 중생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것은 취하려하고 싫은 것은 회피하려 하고 안봐버리려하고 억제하려한다. 이는 양 극단의 길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에서 벗어난 제 3의 길인 중도를 가르쳐주셨다. 이 중도란 알아차림이다.
해서 불쾌한 느낌들이 일어나면 이를 없애거나 피하려하고 안봐버리려 하고 자극적인 정보을 접촉하여서(야식, 술, 게임 등등) 이 불쾌한 느낌을 보지 않으려 하는 대응방식이 아니라 이 느낌을 직시하는 대응방식이 중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어떻게 직시하느냐. 판단 없이 직시하면 된다. 다시 말해서 판단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실상은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이거다 저거다 이런 식으로 언어로 이루어진 개념 언어 명칭을 붙이면 이는 죄다 어긋난다. 사실이 아닌 것이다. 실상은 연기이고 무자성이고 무실체다. 즉 일체개공인 것이다. 그럼으로 판단 없이 직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판단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단지 바라보는 것이다. 뭐를?
일어나는 느낌을 말이다. 느낌은 몸에서 일어난다. 두려움도 불안도 결국은 신체에서 느껴진다. 이 신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잘 관찰해보라. 이 수념처가 바로 위빠사나이다. 그리고 이 수념처를 통해 업장소멸이 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를 참조해보시길 바란다. 매우 좋은 법문이다. 이 글에서 수념처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아래의 블로그에 올라온 가르침들을 통해 배운 내용들이다. 그리고 밑에 링크를 클릭하면 나오는 블로그 자체가 참 좋은 블로그다. 보물창고이다. 좋은 가르침들이 정말 많이 실려있다.)
https://m.blog.naver.com/tenzinpalden/223757066579
🌟 해탈하는 방법과 원리!!! 어떻게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해탈하는가???
우리 불교 수행자들의 목적은 해탈입니다. 그러므로 해탈의 방법과 원리를 제대로 아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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