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건 그저 그럴 뿐인데 자기 마음을 투영해서 바라보기에
우리는 각자의 세상 속에서 산다.
하늘의 둥근 달은 웃고있는것도 아니고 슬퍼하는것도 아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에 따라
누군가는 달이 자신을 보고 웃고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달이 자신을 애석해한다고 생각한다.
또 누군가는 저 달을 보며 "휘엉청 둥군 달이 떴구나!" 하고 즐거워하고
다른 누군가는 저 달을 보며 슬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시로,
물 반잔을 보고
누군가는 많다고 하고
누군가는 적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물 반잔은 실상 그냥 그럴 뿐이다.
그리고 달 역시 그냥 그럴 뿐이다.
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세상은 주관적이다.
세상은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자신의 심리상태가 투사된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다.
그래서 중생들은 각자가 살아가는 세상이 다 다르다.
어찌하여 이 같은 원리가 펼쳐질 수 있는 것일까?
삼라만상이라 불리는 일체의 현상은 인연(조건)에 따라서, 인연에 의존적으로 이합집산(모이고 흩어짐)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제법은 연기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제법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제법무아이며, 제법무자성이며, 아공법공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일체의 인연에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즉 일체의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놀이와 같으며
아침 해가 뜨면 사라져버리는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
중생의 삶이란
결국 각 중생이 꾸는 꿈과 같다.
어째서인가.
다만 그럴 뿐인 연기하는, '고정되며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항상함이 없는
다만 그럴 뿐인 현상을,
그 현상의 실상(이름붙일수 있는 실체가 없음)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심리상태를 투영하고 투사하여서,
그 중생 나름대로 분별하여 이름을 붙이며 실체시하고, 좋다거나 나쁘다는 등 분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상은 본래 이대로 사실 무자성 공이기에 원만구족한데,
중생은 분별 실체시 집착을 하기에 분별하는 중생들은 저마다 다른 꿈속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분별한 꿈속 세상을..
그리고 아마 이 분별 전도몽상 실체시 희론이 모두 끊어지면 꿈도 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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