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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제에 대한 고찰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4. 2. 14. 09:44

오늘 고성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전에 고성제에 대한 글을 보고 아 이것이었구나! 하고 알게된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때 읽은 내용이 잊혀져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해서 인터넷에 고성제 라고 검색도 해보고,
예전에 읽은 글도 다시 봐보니 전에 읽으며 이해했던 다시 기억났고 어째서 삶이 고통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온으로 구성된 이 세상은
연기합니다. 인연생 인연멸합니다.
연기하기때문에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습니다. 또한 오온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것은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습니다.
제행무상하며 제법무아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흐르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으로 생겨나고, 상호의존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 문단에 적은 것은 연기법에 대한 내용이며 다른말로는 무상에 대한 내용이고 또 다른 말로는 무아에 대한 내용입니다. '연기=무상=무아=중도' 입니다.

이 같이 연기하는, 무상하고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는 삶을 인간은 살아갑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태어난 자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육신이 항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세상 역시 무상하고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습니다. 영원한건 없고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중생들이 행복이라 여기는 쾌락은 사실 일시적입니다. 항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게 고성제에 대한 통찰을 줬고 오늘 다시금 읽으며 제가 고성제에 대해 잘 이해하게 해준 글을 인용하자면

기쁨도 누리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그나마 그 기쁨 뒤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을 잠시 잊고 있는 순간에 불과할 뿐이지요.

- 미디어붓다 불교상담소 연재 글 중 -

출처 : http://www.mediabuddha.net/m/news/view.php?number=11987

지난연재 > 불교상담소

<문> 사성제의 첫 번째 고제가 어떻게 진리일까요. 만약에 고통을 진리라고 한다면, 불교의 인생관은 너무 염세적인 것이 아닐까요? <답> 사성제(四聖諦)라고 할 때의 제(諦)는 범어 Satya로서 진리

www.mediabuddha.net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고성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그렇기에 결국 나라고 생각하고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내 집이라 생각했던 대상들도 변화하게되고, 그 변화란 결국 생노병사하고 성주괴공하게되는것이 이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연이 다하는 과정은 반드시 자연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뉴스에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모습들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럼으로 결국 모든것은 변한다는 이 이치를 적용시키지 못하고 영구적이고 항상하고 고정불변하는 '나'와 '내 가족'과 '내 것'이라는 실체가 있다는 허상을 가지고선, 이 허상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은연 중 생각하는 '실체시'를 했기 때문에 제게는 괴로움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부처님이나 노자의 가르침대로 물처럼 사는것이 지혜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는 당연한 것이기에,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삶을 받아들이고, 삶에 항복할 줄 알아라.
그러면 삶은 나를 파괴할 수 없고
아무도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 노자 -


그리고 제가 누리는 기쁨과 평온과 안락은 일시적인 것임을 알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을 잊지 않고 살아야 겠습니다. 잊지 않으며, 위에 인용한 것과 같이, 이 변화하는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야겠습니다. 구체적으로 한가지 예를 들면 결국 제가 사는 집도 처음 집에 입주할때의 상태가 유지되지 않고 변화해서 망가지거나 불편한 사항이 생기고 그에 따른 제한사항도 생기겠죠. 또 제 육신도 늙고 병들겠죠. 그리고, 옷은 입다보면 더러워집니다. 저는 이 같은 사실들을 받아들이렵니다.

더 생각해보니 사고 팔고가 모두 세간을 살아감에 있어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필연인것 같습니다. 오온으로 이뤄진 나와 세상은 모두 연기하는 것이기에 무상하고 무자성(고정불변하는 실체란 없다는 뜻의 단어)이니까요. 결국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과 원증회고 애별리고 구부득고 오음성고는 태어난 중생에게는 필연인듯 합니다. 다만 부처님과 같이 깨달은 자에게는 늙고 병들고 죽고,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며, 오온으로 이뤄진 심신이 생멸하는 작용은 물론 깨닫지 못한 중생들과 마찬가지로 발생되겠지만, 이런 현상이 부처님과 같은 분께는 고통이 되지 않는 것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어찌되었든 나를 비롯한 이 우주 삼라만상은 모두 연기법으로 이뤄져있기에, 연기하기에 무상하니, 이 모든것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늙고 병들고 죽고 만나고 이별하고 심신이라 이름붙인 오온이 생멸하는 작용이 발생되는 것은 결국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같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고, 인정해서,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라 생각됩니다.

모든 연기하는 것은 변합니다. 정신작용은 생주이멸하고 육신은 생노병사하며 별은 성주괴공합니다. 국가도 흥망성쇠가 있죠. 모든것이 변합니다. 저는 이 같은 변화를 받아들이렵니다.

연기하기에 변화하며, 연기하기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고정불변한 실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조건)에 의존하여 상대적으로 존재합니다.
삼라만상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집니다.
인연따라 이합집산합니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그렇고, 인간의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알고 여러분도 변화하는 삶에 저항하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그저 내게 찾아오는 삶을 허용하며 그저 지켜봐보시기를 바랍니다.

지켜봄. 알아차림이라 하죠.

부처님 가르침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헤어지기 마련이고,
변하기 마련이며,
사라지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 석가모니 부처님 -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