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서 벗어나는 법 - 호흡과 몸 관찰, 허리펴기, 마음챙김

③ 보리심 길잡이 송덕사 - 보살수업46. 다른 사람이 반칙을 해서 억울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3. 12. 13. 14:59

보리심 길잡이 송덕사

보살수업46 다른 사람이 반칙을 해서 억울합니다

 

다. 결론 – 진연(塵緣)을 버리기를 권한다
 
8:22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많고도 많아 부처님들조차 다 들어주실 수 없는데 나처럼 부족한 이는 말해서 무엇하리요. 그러므로 세간을 향한 생각을 버려야 하리라.
극락과 지옥은 한 끗 차이라고 표현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극락과 지옥을 경험하는 마음의 지점에서 생각하면 안심은 극락이요, 불안은 지옥입니다. 안심과 불안은 매일 매순간 변화할 수 있으니 정말 한 끗 차이가 분명합니다. 물론 이 마음의 씨앗이 꽃을 피워내서 극락과 지옥이라는 하나의 세상을 장엄하게 된다면, 그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질 것입니다. 시작할 때의 차이는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게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보살과 아귀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보살 중 보리심의 힘이 완숙해진 이들은 업생業生에서 벗어나 원생願生이 가능해집니다. 그렇기에 보리공덕만큼 자유자재하게 지옥에도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습니다. 탐진치 삼독심의 번뇌업에 묶여서 지옥에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나쁘고도 나쁜 환경 속에서도 마음은 고통에 상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옥고의 조건 속에서 극락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환경에 시달리지 않는 단단한 안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극락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 어떤 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극락 장엄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다보니까 극락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하품하생의 극락중생은 모든 차별에서 벗어나 동남동녀의 모습이 되어 똑같은 일상으로 살아간다는데... 그거 북한 아닌가요?'
관점에 따라 세상의 빛깔은 이렇게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지옥도 극락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극락도 북한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옥은 지옥이 아니고, 그저 이름만 지옥일 뿐입니다. 극락도 마찬가지죠. 통과하는 의식의 필터, 이 한 끗 차이에 따라 경험되는 세상의 해석은 천차만별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8:23 사람들은 재물을 가진 이도 비난하고 못 가진 이도 경멸하는데 그렇게 기쁨을 모르는 이들과 함께 한들 무슨 기쁨을 얻을 수 있겠는가.
중생은 모두 생존본능에 묶여 있습니다. 이 생존본능은 다양한 가지치기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비교본능입니다. 사람들은 자만이라는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만은 수 많은 번뇌 중에서도 근본 중에 근본에 해당되는 뿌리입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수행의 과정 중 언제 뿌리가 뽑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인의 초입에 이른 수다원은 의심이 뿌리 뽑히고 확신이 강해집니다. 사다함에 이르면 거친 분노와 탐욕이 점점 사그라든다고 합니다. 아나함에 이르면 거친 분노와 탐욕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합니다. 아직 자만은 나오지도 않았죠? 자만은 언제 사라지는가? 아라한이 되어야만 뿌리가 뽑힌다고 합니다. 아라한을 증득하기 전에는 모두 다 자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자만은 생존본능의 오른팔이기 때문입니다. 생존본능은 '자아'라는 허구의 개념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입니다. 이 자아가 있는 한 오른팔인 비교는 항상 함께 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남을 비교함을 통해 자아의 개념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요, 생존을 위해서는 남들을 아군과 적군으로 비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더 강하고 약한지도 비교해야 하고, 여기와 저기, 오늘과 내일, 좋은 것과 나쁜 것 등 모든 것을 비교해야 합니다. 이 비교가 바로 '선악과'라고 하는 만가지 이분법의 효능입니다. 자아를 근본으로 하는 분별이 존재하는 한 비교본능인 자만은 계속됩니다.
비교하는 마음에 어리석음이 더해지면 추해집니다.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약해지고, 약한 이에게는 강해집니다. 더불어 없는 자리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고 하듯이, 시기질투하고 비난하며 모함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모두 자아본능이 만들어낸 생각의 오류입니다. 사실 누가 기뻐하든 기쁨은 기쁨입니다. 자아만 없다면 나의 기쁜 일이든 남의 기쁜 일이든 원수의 기쁜 일이든 상관 없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아라는 바이러스에 잠식 당한 마음은 원수의 기쁨에 분노하고 남의 기쁨을 깎아 내립니다. 이런 오류가 심각해지면 내가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 순간에조차 기뻐하지 못합니다. 불쌍하고 슬픈 마음의 현실입니다.

 

 
8:24 범부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없으면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은 이들과 친하지 말라' 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네.
극락조차 지옥으로 만드는 비결은 바로 비교와 눈치입니다. 이 둘을 거두는 것에서부터 안심은 시작됩니다. 안심이 되면 어디를 가든 그곳이 바로 극락이 됩니다. 기쁘고 신나는 도전입니다. 삶을 모두 바쳐서라도 시도해 볼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띠 수행입니다.
첫째, 이제 남의 눈치는 그만보죠. 신경끄세요. 타인에게서 시선을 되돌려 자신을 바라보세요. 조금 더 똑똑한 이기주의자가 되보는게 어떨까요? 저는 탁구라는 운동을 취미로 가지고 있습니다. 탁구가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경쟁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입니다. 심지어 경쟁을 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그 본질은 상대와의 경쟁이 아니라 나와의 경쟁입니다. 왜냐하면 공을 라켓으로 치는 순간에는 온전히 내가 갈고 닦은 기술을 얼마나 잘 발휘하느냐의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기이지만 그 본질은 혼자서 다가온 공을 적절하게 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탁구를 10년간 즐기면서 대회를 많이 다녔습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실력이 늘고, 누군가는 정체되어 추월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 차이도 발견했습니다.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상대방과 경쟁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실력이 잘 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자신과 경쟁하는 이들은 실력이 쭉쭉 늡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같이 탁구 치는 분 중에 한 명이 탁구 대회를 다녀와서 이런 불평을 하더군요.
"내가 오늘 아주 억울하게 대회에서 떨어졌는데... 상대가 이런 저런 반칙을 했어!"
그분에게 조언을 해줬습니다. 남이 반칙을 하든말든 신경쓰지 말라고. 왜일까요? 남의 눈치를 보고 남과 경쟁해서는 실력을 향상시킬 수 없습니다. 실력이란 온전히 나의 문제입니다. 아마도 상대방이 반칙을 하든 말든 이겨낼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면, 반칙을 하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이기지 않았을까요? 문제는 상대가 아닙니다. 그 반칙조차 이겨낼만큼 내가 훈련하지 않았다는 것, 이것만이 유일한 패배의 원인입니다.
둘째, 비교하려면 나 자신과 비교하죠. 만약 남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으로 들어온다면 나와 비교하는 것이 쉬워집니다. 어차피 말했듯 비교본능은 아라한이 되어야 끊어지기 때문에, 비교하지 말라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럼 그 비교를 점점 건강하게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이 본능을 쓴다면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에 등장하는 상황입니다. 올림픽 선수가 감독에게 묻습니다.
"감독님, 금메달이 걸린 경기에서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러자 감독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멘탈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멘탈이 흔들려도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게 어떨까?"
중생의 마음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전에는 불안 그리고 지옥과 같은 경험이 종종 함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피하려고 하면 더욱 불안해집니다. 더 지옥처럼 변화합니다. 차라리 실력을 키우죠. 타인의 반칙에 왈가왈부하면서 눈치보지 말고, 그냥 반칙해도 이길만큼 내가 더 노력하면 됩니다. 불안할까봐 멘탈이 깨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불안을 더욱 키우지 말고, 불안해도 상관없이 이길 수 있을만큼 땀과 시간을 투자하면 됩니다. 이게 향상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솔직히 전 궁금합니다. 남이 반칙을 하든 말든 도대체 나란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신경쓸 것은 그 반칙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하고, 어떤 기술을 익혀야 하는지 아닐까요?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내 세상이 변화하는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지 마세요. 그것은 그 사람을 주인님으로 섬기는 노예가 되겠다는 선언이니까요. 반칙을 하든, 불공정하든, 불안해지든 말든, 그런 것에 끄달린다는 것 자체가 내 실력 부족에 대한 지표일 뿐이니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주인에 어울리는 실력을 키우시길_()_

 

 

- 송덕사 채널에 올라온 원빈스님 가르침 -

 

 

※ 위 글은 유튜브의 '보리심 길잡이 송덕사' 채널이나 '붓다스쿨' 채널의 커뮤니티에 들어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거의 매일 꾸준히 글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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