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의견이 갈리는 토론주제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답은 과정이다.
왜냐. 과정이 좋아야 결과도 좋기 때문이다.
세상은 인과법이고 연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이 난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행위를 중시하셨다. 선한 행위를 하면 즐거운 결과가 따르고 악한 행위를 하면 괴로운 결과가 발생된다고 하셨다. 선인락과 악인고과의 가르침이다.
다만 이 가르침에서 말하는 결과는 즉각적일 때도 있지만 즉각적인 것이 아닐 때도 있다. 마치 씨앗을 심고 싹이트는 이치와 같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곧이어 하루만에 나기도 하지만 싹이 삼개월이 걸려서 날 수도 있고 일년 내지 백년이 지난뒤에서야 날 수도 있다.
씨앗을 그린란드 변두리에 심었다면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은 백년후쯤에서야, 그곳에 햇빛이 비로서 눈과 얼음을 통과하지 않고 토양과 맣닿게끔 된 그 시점에서야 싹이 날 것이다.
그러나 봄이나 여름에 씨앗을 심었고 양분도 물도 햇빛도 넉넉히 있다면 싹은 금방 틀것이다.
늦가을이나 겨울에 씨앗을 심었다면 싹은 삼사개월은 기다려야 날 것이고,
설령 봄에 씨앗을 심었더라도 심은 곳이 자갈밭이거나 진흙이거나 모래밭이라면 싹은 나지 않을것이며
씨앗을 대리석바닥이나 집안의 장판바닥에 그저 던져놨다거나 수분이나 햇빛이나 양분이나 통풍이 안되는 곳에 심었다면 마찬가지로 싹은 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다. 인간의 행위란 직접적인 원인이 시공간적인 범주에 해당되는 간접적인 원인과 화합할 때 비로서 결과가 발생되는 것이다. 이를 인연생기라고 하고 줄여서 연기법 내지 인연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인과법이라고도 한다.
이 인과법에 따르자면 결국 결과를 발생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인간의 행위이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자신의 선택사항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인과법을 모르고 마구 도둑질을 하고 불법을 저질러서 돈을 모은다 한들, 그 사람은 일시적으로 잠시동안 부를 누릴지는 몰라도 그 이후에는 자신의 악한 행위의 결과로서 괴롭고 고통스럽고 끔찍한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반면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서 비록 앞서 말한 사람보다는 가난할지라도 그 사람은 선하게 산 그 행위에 의한 결과(과보)로서 그 이후에 결국 즐거운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행위에 의한 결과는 씨앗을 심으면 환경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싹이 나듯 현생에 경험할 수도 있고 후생에 경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현생에 발생되지 않고 후생에 발생된다면, 그 결과는 눈덩이가 구를수록 커지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현생에 경험하게 되는 결과보다 (내생 즉 후생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 더 크게 발생된다.
그렇다면 선한 원인을 심은 사람은 내생에 어떤 결과를 경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악한 원인을 심은 사람은 내생에 어떤 결과를 경험할 수 있을까?
선한 행위 즉 나와 다른생명들을 모두 살리는 행위를 한 사람은 여섯 세계중 삼선도(천,인,아수라)에 태어나고
악한 행위 즉 나와 다른생명들을 모두 해치는 행위를 한 사람은 여섯 세계중 삼악도(지옥,아귀,축생)에 태어나 고통을 받는다.
이 여섯 세계(육도)는 실존하는 세계이다.
우리 중생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을 계속해서 이 육도를 오가며 윤회해온 이들이다.
해서 우리는 어떤 생엔 지옥세계의 중생이었으며, 어떤 생에는 천상세계의 중생이었고, 또 어떤생에는 개나 소 내지 개미나 진딧물과 같은 축생세계의 중생이었으며, 또 어떤 생은 인간세계에서 왕이었기도 고관대작이었기도 했을 것이며, 또 어떤 생은 거지신분이었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을 계속해서 이 육도를 오가며 윤회해오며 오늘에 이르렀다.
부처님은 세가지 불변하는 진리를 말씀해 주셨다.
http://www.geoj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56
그 세가지 불변하는 진리에 대해 풀이된 글이다. 이 기사를 참고해보시길 바란다.(단 이 기사의 설명을 보충하자면 제행의 범주에 속하는 대상은 물질뿐만이 아니라 정신작용까지도 포함되어야 하며, 제법에 대한 의미는 유위법뿐만이 아니라 무위법까지도 포함된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보다 옳바른 설명이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바이다.)
이 기사의 내용처럼 인연에 의해 형성된 모든 것은 머무름이 없다. 항상함이 없다. 즉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 중생의 육안으로 보자면 생멸이 있다고 볼 수 있으리라. 해서 윤회하는 것이다. 천상세계의 즐거움도 지옥이나 아귀세계의 괴로움과 고통도 인간 삶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기나긴 세월이긴 하나 영원한 것은 아니다.
해서 여기까지 글을 읽은 우리는 한가지를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천상락도 일시적이며 지옥고도 일시적이다. 여하튼 영원하지 않다. 인간세상의 즐거움 역시도 일시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토록 이렇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오르락 내리락
(이와 같이->~~~~~) 하는 파도처럼 반복하며 때로는 지옥의 괴로움을 계속해서 겪어야 하는 것인가?
그 답은 "아니오." 이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난 이는 모두 늙게되고 병들게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직시하신 뒤, 출가하시어 수행정진하셨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마침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시고 중생이 윤회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인인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세가지 독과 같은 마음인 삼독심이 소멸되셨다. 그렇게 부처님은 무상정등정각을 이루시고 부처님이 되셨고, 괴로움이 없는 '영원한' 행복과 대자유를 성취하셨다.
앞서 말한 중생의 삶, 중생의 흐름인 일시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의 반복에서 벗어나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에 이르신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나신 뒤 일체중생이 자신과 같이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밝혀주셨다.
더불어 부처님께서 앞서 그 길을 가셨듯, 부처님과 같은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 영원한 행복과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는 그 길 그 방법을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법문을 통하여 말씀해 주셨다.
그러니 우리도 부처님께서 앞서 걸어가셨으며, 친절하시게도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세세하고 낱낱이 명명백백히 팔만사천의 지도와 안내서로 잘 설명되어져 있기까지 한 이 길을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스님들께 의지해서 나아가면 될 일이다.
다만 부처님은 가르침을 줄 뿐,
그 가르침을 따를지 따르지 않을지 선택하는건 자기 자신, 스스로이다.
해서 불교는 인과법이다.
결국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참고로 즐거움과 행복은 같은말이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되어 괴롭지 않은 것이며, 즐거움은 중생의 어리석음과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천상의 즐거움은 일시적인 것이며, 천상세계의 중생의 수명이 인간의 삶에 비해 길다 하나 결국 천상세계의 중생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나무 불법승
<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불교 유튜브 채널 추천목록>
https://findthebrightroad.tistory.com/m/13
'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행론 (0) | 2024.11.23 |
---|---|
부정설법 (2) | 2024.11.22 |
느낌은 내가 아니다. (2) | 2024.11.21 |
그거 나 아니야 (0) | 2024.11.21 |
진정 가치있는건 수행이고, 자각각타행임을 느꼈다. (0) | 2024.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