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새기자.
얻을 것이 없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몸은 물거품처럼 마음은 아지랑이처럼 세상을 보라
세상을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이 보며 선지식을 찾아라.
연기하는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연기하는 현상에는 자아라 할 것이 없다
연기하는 현상에는 실체가 없어서 이름붙일만한 이름이 없다.
제법무아
제법무자성
제법공상이다.
(아상도 법상도 갖지 말라. 아공 법공이다.)
아도 인도 중생도 수자도 없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갖지 말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조차도
불성조차도
공한 것이다.
공한 본성을 꽤뚫어 안다면
번뇌와 보리도
생사와 열반도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번뇌란 조건에 의존하여 발생한 것이 보리이며
생사라는 조건에 의존하여 발생한 것이 열반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연기(조건적 발생이 연기이다.)하는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공 또한 공성을 표현하는 언어일 뿐이기에 그 공에 해당되는 실체는 없다.
해서 공 또한 공하다.
그래서 붙잡을것이 없다.
마음도 없다.
이 마음이 없다는 것을 초기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제법무아라고 표현하셨다.
제법무아는 아트만이란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오온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오온 각각도 연기한 것이다.
고로 제법에는 실체가 없다.
그러나 부파불교에서 이 오온 각각에 해당되는 실체는 있다고 법상(자아란 실체는 없어도 법에대한 실체는 있다는 관념)을 가지니
이 같은 법상이란 사견을 타파하고자
용수보살께서 당시 시대상에 맞게 부처님 본연의 가르침을 그대로, 단지 그 명칭만을 공으로 바꾸어서 재천명 하신 것이다.
그 시대상에 맞는 대기설법으로서 표현을 제법무아가 아닌 공이라고 달리 한 것이다.
'연기 - 무자성 - 공' 이다.
그냥 필자가 이해한 바를 적은 것입니다. 저는 집착과 번뇌가 많습니다. 단 어제 물거품사진을 직접 찾아보며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니 효과적이어서 물거품사진을 올리고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마하반야바라밀
참고자료(이거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https://moktaksori.kr/Writing-1/?bmode=view&idx=139747443
참고로 저는 집착이 실체가 없는 현상을 실체시(실체가 있다고 보는 것)를 해서 좋다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해 내것으로 가지려 하거나 싫다는 실체가 있어서 피하거나 멀리하거나 쫒아버리려 하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덧붙여봅니다. 집착에 대한 교리적인 명확한 해설은 잘 모르지만요.
+ 그리고 '생각이 길이다' 라는 책을 함께 읽어보시길 적극 권합니다.
'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장(마라)의 특성 (0) | 2025.01.07 |
---|---|
이러나 저러나 별 차이 없는 이유 (0) | 2025.01.07 |
번뇌즉보리 (고맙다 원수에게도.) (0) | 2025.01.06 |
염불독경 할수 있어 감사함을 생각하라 (0) | 2025.01.06 |
집착하는 대상을 해체해봐라 (0) | 2025.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