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대상의 이빨을 봐라.
그 이빨에 실체가 있으면 충치치료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치과치료가 불가능한 치아는 없다.
육신도 정신작용도 이와 마찬가지인지라
일체유위법은 모두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 (마음은 아지랑이와 같다.)
즉 일체유위법은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
(모두 연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리라.
고로 모든것을 꿈같고 환상같이 보자.
그 꿈과 환상과 그림자 물거품엔 실체가 없어서 이름붙일 이름이 없다.
수행적으로 이런 관점을 취하라는 것이다. 수행적으로.
(사람뿐만 아닌 일체경계를 마음속으로 해체해봐라. 카톡 글귀에 집착하게된다면. 카톡 문구를 실체시하게된다면. 말에 집착하게된다면. 그것의 실체를 잘 찾아보란 말이다. 그럼 그것의 실체를 결코 찾을 수가 없단 것을 결국 알게 된다. 글자쪼가리들의 집합체는 분해해보면 검정 선들과 하얀 종이만이 있다. 그마저 분해하면 원소로 원자로 분자로 전자로.. 소립자로.. 그러다 양자역학적으로 분해된다. 해서 나오는 것은 관찰자에 의존할때만 입자로 존재하고 관찰자가 없을 땐 에너지로 존재하는 것이 나온다. 근데 그 에너지 역시 후일 본래의 마음으로부터 연기한 것임이 밝혀지리라.
결국 진여연기가 실상인 것이다.
일체유심조다.
결국 하나의 주인공만이 있을 뿐이리라.
그 본래면목에선 차별이 없고 구분이 없다. 둘이 없다.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하여 그 본성의 자리는 갈등 분쟁 싸움 시기 질투 경쟁이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자리는 무한하다.
하여 불자님들 께서는 그 자리를 무량수 무량광 여래 불 이라고 부를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이라고도 부를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이라고도 석가모니부처님이라고도 부를 것이다.
필자는 그 자리를 찾아가는 나그네이다.
그러나 이미 필자는 그 자리에 있다.
단지 그 사실을 체득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뇌즉보리 (고맙다 원수에게도.) (0) | 2025.01.06 |
---|---|
염불독경 할수 있어 감사함을 생각하라 (0) | 2025.01.06 |
만다라 수행법이 내게 자유를 주었다 (0) | 2025.01.05 |
수행이란 (0) | 2025.01.05 |
삼세를 같이 보라. (0) | 2025.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