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 북리뷰 블로그 칼럼

이러나 저러나 별 차이 없는 이유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5. 1. 7. 15:52

1. 어짜피 다 연기한 현상이며, 자성이 없는 현상이며, 공한 현상이란 점에서 이러나 저러나 다를 바 없다.

2. 이러나 저러나 내 마음 수행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경계에 대해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 변화하고 닦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나 저러나 다시금 고락윤회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같은 풀이는 선불교적인 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선택을 할까 저 선택을 할까 망설이는 시점에 선불교가 아닌 인과법을 선택의 잣대로 삼는다면 이러나 저러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선인락과 악인고과이기 때문이다.

십선업의 각각의 행위에 대한 과보가 있고
십악업의 각각의 행위에 대한 과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일차적으론. 우선적으론. 인과법을 굳게 믿고 십악업 짓지 않고 십선업 짓는게 중요하다.

근데 그것만 하면 복만 짓는거다.

그럼 일시적으로 나쁜꿈 꾸는 비중은 줄어들고 좋은 꿈 꾸는 비중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지어서 다음생에 재벌로 태어나서는, 자신이 돈 많은 것이 다 제가 잘나 그런줄 알고 교만하고 자만하여서 오욕락이나 잔뜩 충족하고 불법공부는 도외시한 채 살아서 그 생 악업만 잔뜩 짓고 그 다음생은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인과법만 알아서는 아니된다.

그럼 어찌해야되느냐.

그래서 선불교적인 관점도 필요하다.

연기 무자성 공을 배우고,
그걸 체득하는 수행을 해서
견성을 해야된다.

그럼 연기법, 무아법, 공성을 체득하여서
더이상 윤회를 하지 않게된다.
아니 윤회는 선택사항이 된다.

부처님이 되든지,
아님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처럼 원력으로 살아가던지 하게 된다.

참고로 중생들은 업력으로 살아가고 말이다.

해서 등급을 나눠보자면

제일 낮은것(하품)이 업력 즉 삼독심따라 사는것이다.

중간(중품)이 인과법을 알고 제악막작 중선봉행하며 복지으며 사는것이다. 근데 승가에도 복을 짓고 향공양도 올리고 법보시에도 동참하는등 불사에 동참하면 이는 불성에 물을 주는 일이 되리라. (그리고 씨앗에 물을 주면 싹이 튼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상품) 복혜쌍수다. 이는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의 길이다.

이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가 시제불교이다. 이는 칠불통계게 이다. 이 길은 계정혜 삼학도이며 팔정도이기도 하다. 이 길은 결국 최종적으로 연기법 무아법 중도를 체득하는 수행의 길이다.

그럼으로 결론은

복만 닦지말고 마음도 같이 닦으라는 것이다.
복과 지혜를 함께 쌓아나가라는 것이다.
복도 짓되 수행을 함께 해나가라는 것이다.

더 명확하게는 계정혜 삼학을, 팔정도롤, 육바라밀을 닦으라는 것이다.

즉 보살도를 걸으라는 것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자리이타의.
자각각타의 길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