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그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하셨을 것이리라.
부처님이라면
분노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화나게 만든 대상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를 비롯한 현상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했을 것이며,
더불어 화나게 만든 대상의 실체가 없음을 관하실 것이며,
화나게 만든 대상이 연기하는 존재이며, 부처님의 오온과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임을 관하실 것이며,
그럼으로 자신은 독립되있으며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상이 없으실 것이며,
상대는 자신과 별개의 독립된 존재이며 변하지 고정불변하는 존재라는 상이 없으실 것이며,
부처님은 삼독번뇌를 밖으로 표출하는 눈앞의 중생의 근기를 살펴서 방편으로 설법을 하시거나,
조건에 따라서 묵빈대처 하실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과거생 자신의 행위에 의한 결과로서 작금의 역경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역경계에 반응하지 않고 다만 역경계를 알아차린 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즉, 그 역경계에 반응하지 않고 다만 알아차리며 수용할 것이다.
이는 참지도 성내지도 않는 제 3의 길. 업을 짓지 않는 길. 알아차림의 길. 중도의 길이다.
부처님이시라면
탐심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탐심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유지하며 탐심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실 것이다.
하여 탐심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바로 보실 것이다.
또한 조건따라 탐심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기하는 이치를 바로 보실 것이다.
더불어 조건을 마주할 때 일어나는 탐심이란 삼독번뇌, 업장을 맑히기 위하여
계정혜 삼학도를 닦으실 것이다.
조건에 따라서 부정관을 수행하시기도 할 것이며, 백골관을 수행하시기도 할 것이며, 수식관을 수행하시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 팔만대장경에서 말씀하신,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에 나오는 여러 수행 중,
조건에 따라 적절한 지관수행을 행하실 것이다.
부처님이시라면
일상생활을 살아가며 행주좌와 어묵동정 알아차림을 유지하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유지하실 것이다.
그렇게 깨어있으시면서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계정혜 삼학도를 닦으실 것이며,
팔정도를 닦으실 것이고, 육바라밀을 닦으실 것이다.
부처님이시라면
이와 같은 현상계를 살아가시면서,
늘 깨어있으시며,
더불어 모든 조건따라 생멸하고 이합집산하는 유위법을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없지만, 연기하기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은 존재하기에
이와 같이 현상계를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이 관찰하시며
중생 역시 이와 같이 관찰하시며, 중생은 중생이라 이름할 실체가 없으나 연기하여 중중무진법계연기의 이치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부처님의 육신과 둘이 아닌 (不一不二) 현상을 다만 중생이라 이름하며,
이와 같이 지혜로 살피시며, 동시에 무량한 자비심으로서
실체적인 상을 내지 않으시면서도 중생을 버리지 않으시고 늘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며
모두와 함께 피안의 세계로 가고자 하실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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