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하지 마라.
직설적으로 말하면 싸우지 마라.
수행자라면 오직 역경계를 만났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에만 주의를 두고서는, 역경계를 만났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해라. 즉,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해라.
단, 자신의 생명과 다른 모든 생명들의 이익됨을 모두 고려해서 필요하다면 대승적이고 자리이타적이며 중도적으로서 지범개차하면 되며, 이 경우 자신의 의도와 행위에 따라서 받게되는 과보가 있음을 알면 된다. (십선업과 십악업에 따르는 과보에 대한 내용은 경전에 이미 다 나온다. 조계종에서 출간된 불교성전에 화엄경에서 발췌된 관련 내용이 실려있기도 하다.)
또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자신의 심신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하라. 수행자가 상대할 것은 경계가 아니라 수행자 자신의 몸과 마음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알아차림을 지속해서 얻을 것은 무엇일까?
무명에서 벗어나 참나를 찾는것이다.
오온에 상주하고 주재하는 자아가 없음을 체득하고 진정한 참나를 찾는 것이다.
진정한 참나는 항상하다. 진정한 참나는 상락아정 하다고 불교에선 예기된다. 그 참나를 찾기 위해선 우선 무상 고 무아의 성질을 지니는 진짜 내가 아닌것을 나라고 여기는 전도몽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위빠사나 수행이 필요하고, 팔정도가, 계정혜 삼학이 필요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역경계에 반응하지 마라. 수행으로 삼아라. 수행자가 상대할 것은 외부 대상이 아니다. 주의를 자신의 심신에다 둬라. 심신을 알아차려라. 알아차림이 있을때는 번뇌가 들어오지 못한다. 그럼으로 알아차리는 것은 수행임과 동시에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다.
역경계에 반응말고 알아차려라. 자신의 심신을.
그리고 옆에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중생이 있다면, 자리이타적으로 도와라. 가능한 한 재시 법시 무외시로서. 단, 도움의 한계점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대가 보디사트바로서 할 수 있는 분명한 것이 있다.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외에도 자신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적 측면에서 할 수 있는걸 찾아라. 해서 자리이타 자각각타라는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라. 그러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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