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책소개

[북리뷰] 바라밀총서8 불교교리강좌 (해주스님 지음/불광출판사)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4. 12. 12. 03:06

전반부를 부분적으로 조금 읽었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무상을 무상인 줄 알고 무아를 무아인 줄 아는 것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정견)이고 지혜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출가자는 욕망과 고행의 두 극단에 집착하고 탐내지 말고 중도를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도 읽으며 와닿는 가르침이었다.


<책을 통해 배운 내용들>

반야 = 제법무자성, 제법공상을 아는 것. 아공법공을 아는 것. 아공뿐만이 아니라 법공도 아는 것. 부파불교 실유론에서 말하는 법조차도 실체가 없으며 열반과 보리조차도 연기한 것이기에 실체가 없는 무자성한 것이고 공한 것임을 알고 열반에 조차도 집착하지 않는 것.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을 아는 것. 출세간의 영역조차 연기한 것이기에 무자성이고 공한것임을 아는 것. 하여 나와 너도, 너와 나도 둘이 아님을 알고, 나를 위하는게 곧 남을 위하는 것이고, 남을 위하는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임을 알아서 자리이타의 길을 걷는 것이 보살이며 이 보살도의 목적지가 바로 성불이다.)

해서 부파불교에서는 출세간을 목표로 삼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그 출세간인 열반까지도 연기한 것이기에 공함을 꽤뚫어보고, 출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출출세간을 지향한다.

십지의 단계
초지가 보현행원을 세우는 것
이지가 십선계를 지계하는 것. 이때 십선계를 행함에 있어 대비심이 없다면 성문 연각이, 대비심이 있으면 불과를 이룬다는 것.
삼지가 삼법인을 관하는 것.
사지부턴 잘 기억안난다.
칠지가 아마 십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었고 이 십바라밀이란 육바라밀 + 방편(方便) · 원(願) · 역(力) · 지(智) 이다.

사지부터 육지 사이에 사성제 37조도품 등도 들어가 있었다.

팔지가 무생법인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모든 교설은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이다. 개중 삼법인도 있다. (연기를 깨닫는 것 역시 깨달음으로 가는 방법이라고 배움) (연기를 깨치는 방법은 삼법인 팔정도 37조도품 등을 수행하고 사유하는 것인 듯.)

팔정도의 정견은 삼학의 혜학에, 팔정도의 정정은 삼학의 정학에 해당함.

사성제 중 집성제에서 고의 가장 으뜸되는 두가지 원인이란 무명과 갈애이다.

사성제의 인과구조는
세간적 인과는 집성제 - 고성제 이고
출세간적 인과는 도성제 - 멸성제이다.

무명의 반대는 명이다.

정견이 있어 명이 있으면 팔정도를 걷게되어 해탈 열반에 이른다.

(명은 아마 정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기법 삼법인 사성제를 아는 것..)

무명이 있으면 유전연기의 길을 걷게되며 윤회하며 괴로운 과보를 겪는 것을 반복한다.

위에서도 서술했듯 무상을 무상인 줄 알고 무아를 무아인 줄 아는 것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정견)이다.

오온이 모두 연기한 것이기에 오온은 모두 실체가 없는 것이다. 오온무아이다.

연기하기 때문에 무상하다.
무상하기에 고이다.
무상하고 고이기에 무아이다.

내가 있다면 항상하고 내 뜻대로 언제나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나의 뜻대로 욕심대로 움직이고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참고 : https://m.blog.naver.com/yagguza69/223304257968) {항상성(恒常性)과 주재성(主宰性). 언제나 그러하다는 것이 항상성이다. 들쭉날쭉 넘나듦이 없이 똑 고르게 그 본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내가 원하는 시공간과 상황에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재성’이다. - https://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953418 }
그러나 연기한 것은 무상하다. 무상하기에 자아라는 실체가 있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욕심대로 심신(오온)은 움직이지 않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더불어 사고팔고가 발생한다.) 해서 괴로움이다. 내가 있다면 항상하고 주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독립적으로서 고정불변하게 존재하는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그 어떠한 조건에도 영향을 받지 않기에 변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제행은 무상하다. 연기하기에 무상한 것이다. 그리고 연생연멸하는 그 무상한 현상 속에는 고정불변한 실체는 없다. 더불어 모든 개념(명칭)은 상호의존적으로 동시적으로 발생되는 것이기에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해서 제법무아가 성립된다.

연기는 중도이다.
있음과 없음을 떠나있는 것이다.
연기하는 현상 작용이 있기에 없는 것도 아니지만, 12연기의 시작인 무명이 소멸한다면 연기하는 현상 자체도 소멸하기에 (즉 연기하는 현상에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진정으로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으로 연기는 중도이다.

(조건에 의존하여 발생되는 현상과 개념은 있지만 그 조건이 소멸하거나 없으면 현상과 개념도 소멸하거나 없게 되는 것이다.)

연기법에 대한 교리는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교설들이 등장한다. 12연기부터 시작하여 업감연기, 아뢰야식연기(유식), 진여연기, 법계연기(화엄) 등이 있다. (12연기도 부파불교에서는 삼세의 시간관으로 12연기를 구분지어 해석한다.)

대승불교의 큰 두 축은 중관 유식이다. 하나를 더 들자면 여래장이 있다.

대승불교의 시작은 중관학파로부터이다.

중관학파는 용수보살이 서술하신 <중론>을 가장 중요한 책으로 삼는 듯 하다.

중관학파의 창시자인 용수보살은 팔종의 조사로 불리는 엄청나게 대단한 분이다.

동아시아의 삼론종은 이 <중론>과 더불어 용수보살의 다른 저서인 <십이문론>과 용수보살의 제자인 제바의 저서 <백론>이란 세개의 논서를 주요경전으로 삼아 성립된 종파이다. (더불어 이 부분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작성해보자면 여기에 용수보살의 저서인, 대승불교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대지도론>을 더해 사론종이라고 하기도 하는 듯 하다.)

대승불교는 보살불교이고, 부파불교의 목적지인 아라한 이상의 목적지인 성불을 목적지로 삼는다. 대승불교는 소수의 출가자만이 아니라 출재가 모두가 더불어 함께 피안의 세계로 갈 수 있고 성불할 수 있다고 예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