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직 나의 문제 해결만이 있을 뿐 세상은 지금 이대로 원만구족하다. 고로 일체유위법을 아바타 메타버스로, 무자성으로, 차별과 경계선과 구분선이 없는 진여의 나툼으로 봐라. 진여차원에서는 진여 하나 뿐임도 알라. 다만 그 진여도 실체가 없어서(무자성이어서) 공이고, 그 공도 실체가 없어서 공 또한 공임을 알라.
일체유위법은 무자성인지라 일체유위법은 여몽환포영이다.
무자성이기에 본래 붙어있는 이름 따위는 없다.
그래서 사실 현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라는 자성(실체)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실체시 하고 문제시 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한 선원의 가르침 중 오직 나의 문제 해결만이 있을 뿐 남을 신경쓰지 말라는 가르침이 오늘 기도 중 이해되었다.
애초에 남과 나라고 분별하는건 내가 분별하는거지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가 무자성 공 진여 부처님이다. 그래서 세상은 사실 이미 완전하고 원만하게 다 갖춰져있다.
그래서 내가 손댈 게 없다.
다만 내가 분별하고 차별하고 구분짓고 실체시 해서는, 어떤건 문제가 아니고 어떤건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뿐이다.
해서 결국 무자성이란 실상을 머리로나마 이해하니 나의 문제 해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 말고 다른 중생들도 분별을 한다고 하더라도. 중요한건 다른 중생들이 실체시를 하고 분별을 하고 번뇌가 일어나고 하는 그런 현상들마저도 무자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이 오직 나의 문제 해결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내가 실체시를 하고 분별하고 구분하니 괴로움이 생기는거고 그 어리석음만 소멸하면 내 괴로움이 사라지니까.
세상은 이미 지금 이대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내가 손대고 바꿔야 하는 건 단 한가지도 없고 말이다.
결국 그래서 오직 나의 문제해결만이 있을 뿐인거다. 그러니 남 신경쓰지 말자. 선원의 가르침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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