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

인연법과 이합집산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3. 9. 12. 13:44

유위법이란 말이 있다.

인연 따라 이합집산 하는 것이란 뜻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모습을 보면 모두가 인연따라 만나고 헤어지고 모이고 흩어지고 함을 알 수 있다.

이합집산 하는 것이다.

 

나는 인연이 다했다는 문장에서 다했다는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그간 안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합집산이라는 사자성어(동국역경원 출판사에서 출간된 불교성전의 유위법이란 단어에 달아진 각주에 대한 설명에 인연과 이합집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감을 보았다.)를 알고 난 뒤에는 이 다했다는 의미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예를 들어보자.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할까?

어쨌든 학생은 학교에 갈, 그리고 가령 고등학교 2학년이라 하면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인연이 되어 그 학교 그 학년이 된 것이다. 그럴 인연이어서 그 학교에서 같은 학교에 온 학생들을 만난다. 그렇게 한 학교, 한 반에 모일 인연이 되었기에 하나의 학교, 하나의 반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인연이 다하면 고등학교 2학년의 같은 반에 배정된 학급 구성원은 다시 흩어지게 된다.

보통은 나이를 한살 더 먹어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게 되었을때, 그 고등학교 2학년의 한 반에 모여있을 인연이 다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더 크게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점이 되면 그 학교에 모여있을 인연이 다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럼 학생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한 학년이나, 3년이 아닌 하루만 해도 그렇다.

학교에 갈 인연이어서 아침에 학생들은 등교를 하고 교사들역시 출근(등교)를 한다.

하지만 인연이 다하는 때인 그날 오후 4시경, 학교 정규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과 교사들은 뿔뿔히 자신의 집이나 자신의 다른 모일 인연이 있는 곳으로 가게되며 흩어지게 된다.

물론 방과후 학교나 특기적성을 하거나,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생이나 야근을 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런 이들은 그날 아직 학교에 있을 인연이 다하지 않은것이고, 그렇게 방과후 특기적성이나 야근을 끝내서 집에 가게 된다면, 그 때를 그날 학교에 있을 인연이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뿐만이 아니다. 별은 성간물질이란 인과 연, 직접적 원인과 간접적 원인, 다시 말해 단순하게 성간물질이란 조건들이 화합해서, 모여서 만들어졌고, 그렇게 모인 인연이 다할때가 되면 그 성간물질들은 흩어지게 된다.

 

인간 육신도, 정신도 모두 마찬가지다. 인연 따라 이합집산 하는 것이다.

정신을 설명하자면 인연따라, 조건따라 즐거움과 슬픔, 괴로움 등 감정과 생각이 일어나고, 그 인연이 다하면 일어난 그 정신작용은 소멸한다. 처음 대학에, 처음 직장에 합격한 사람은 즐거움을 느낄테지만 그 즐거움이 영원히 지속되는건 아니지 않는가. 일년? 아니 한달? 아니 일주일? 아니 고작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즐거움은 일어난 시점부터 점차적으로 사그라들다가 없어지고 만다. 인연이 다해서 소멸한 것이다.

 

이렇게 유위법은 끊임없이 이합집산한다.

 

모이고 흩어진다.

 

그리고 또하나 이 글에 쓰고싶은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끝'이라고 말한다 해서

그 상황에 '끝'이라는 자성, '끝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우리 인생사에서 끝이라 이름붙일만한 상황은 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음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가령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상황은 고등학교시절의 '끝'이지만

동시에 사회로 나가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괴로움과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천태대사께서는 원융을 말씀하셨다.

 

공과 가와 중이 함께 있는것이 원융이라고 나는 배웠다.

다른 말로는 즐거움과 괴로움과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음이 함께 있는것이 원융이라고 배웠다.

 

수험생활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힘든 시간속에서 배우는 값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군생활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힘든 시간속에서 배우는 값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진흙이 있기에 연꽃이 자란다.

인간으로 태어났고, 그것도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기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요, 생사즉열반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함께 있다.

 

제법은 무자성이다.

 

자성이 없기 때문에 관계성에 따라서 그 이름이 불려질 뿐 아니겠는가.

 

뭐 어쨌든 이 글의 요지는 이합집산이다.

 

나는 이합집산이란 사자성어를 동국역경원에서 출간된 불교성전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이 이합집산이란 사자성어를 알게 된 후

인연이 다했다는 말에 대한 이해도가 위와 같이 늘어나서

글로 한번 풀어보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 불

나무 법

나무 승.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