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은 모두 연기 인과에 의해 발생하는 공성이 본질임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오온의 본질은 공성이지만,
그 공성은 오온으로서 나타나지 아무것도 없는걸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오늘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이 오온의 현상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 자체가 결국 공성의 현현이오 연기의 현현이었던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tHnHTUAj_Y
이 법문영상을 보고 색즉시공을 넘어 공즉시색에 대해 머리로나마 조금 이해하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법문 참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하여 깔끔하게 내용이 잘 정리된 좋은 법문이란 생각이 든다.
이 공즉시색에 대하여 필자가 이해한 바를 정리해보겠다.(내용이 부족하거나 이해한 바가 잘못 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댓글 달아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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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 색의 본질은 텅 비어있다. 왜? 연기하기때문에. 인연에 의지해 생멸하고 이합집산하기때문에. 그래서 색은 연기, 무상, 무아, 공, 무자성이다. 즉 색(그리고 오온)에는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고, 조건따라 이합집산하며 변화한다.
그럼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건 없다. 하나는 모두에게 모두는 하나에게 상호 영향을 준다. 상호가 조건이 된다. 중중무진법계연기다.
공즉시색 : 허나 공이라 함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아니다. 허무주의에 빠져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선도 악도 없다고 생각하면 막행막식하고 범죄를 막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견이다. 정법이 아니다. 그러한 허무주의는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다. 이는 그냥 사견에 빠진 것이고 탐진치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탐진치에 빠져 악행하면 발생할 결과는 결국 금생에선 여러 재앙을 만나고 죽은 이후에는 삼악도를 가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럼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보자. 공이란 무엇인가. 연기법이다. 인연생기법이다. 오온 12처 18계에는 고정불변한 독립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아트만과 같은 고정불변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러한 유위법 현상세계의 본질인 공, 연기, 무아, 무상은 어떻게 들어나는가.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견해와 같이 '아무것도 없는 것' 으로 들어나는가?
아니.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https://www.youtube.com/watch?v=Lo7OaKVaoF0
이 현상세계의 본질인 공성(=연기=무자성=무아=무상)이 들어날때는 물질현상(색)으로 들어나고, 더불어 수, 상, 행, 식으로 즉 오온으로 들어난다.
위 반야심경 내용처럼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있지는 않다.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부터 떠나서 물질적 현상인 것은 아니다.
즉 색즉시공이라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며,
공성은 물질적 현상의 연기적 발생으로 확인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공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물질현상으로, 오온현상으로 들어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겠다.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연기한다는 의미지.
그럼으로
오온 그 자체의 본질이 공이었고,
그 공성은 오온으로서 나타나지 아무것도 없는걸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현상세계,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 자체가 결국 공성의 현현이오 연기의 현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연기하는 현상세계(유위법)는 인연생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세계의 인(직접적 원인)은 중생의 의업이오, 연(간접적 원인)은 '나 자신' 이외의 외부 경계였다. 타인에게 나는 육경일 뿐 아니겠는가.(물론 타인 역시 나에게 있어선 육경의 범주에 속하는 외부경계이다.)
12처설이 여기서 필요하리라. 해서 나 자신의 의업 그리고 구업과 신업이 동력인이요. 6경은 내가 보내는 자극에 따라 반응(반작용)이 발생되는 경계이다.(이 12처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고익진 교수님의 저서 <불교의 체계적 이해> 광륵사 출판사' 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그래서 조계종 불교성전에 나오는 내용인 '10악업을 지으면 받게 되는 10악업 각각에 해당되는 가장 경미한 과보는 무엇무엇이며, 10악업 각각에 해당되는 보다 큰 과보는 무엇무엇이다.' 라는 화엄경의 경문 내용이 성립되는 것이리라.
(10악업을 지으면 일반적으로는 삼악도에 가는 과보가 발생 되며, 그 과보를 경미하게 받을 시에는 삼악도에 가지는 않지만 금생에서 10악업 중 지은 악업 각각에 해당되는 재앙을 과보로 받게 된다.)
결국 중생이 겪는 즐겁고 괴로운 일체의 경계를 만드는 것은 중생의 의업이었다.
(의업에 의한 과보가 있고, 구업과 신업에 의한 과보가 있습니다. 십선업과 십악업 각각에 해당되는 과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조계종에서 출판된 <불교성전>을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주인이 되서 모든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도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것을 그려낸다고 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래서 스님들께서는 마음씨가 곧 씨앗이며 그 씨앗에 따라 결과가 발생하니 마음씨를 잘 뿌리라고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 마음씨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계를 넘어서 의업까지도 구체적으로 포함하는 십선계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6047
그리고 탐진치 의업의 과보가 결국 불교성전 조계종본에 담긴 화엄경 경문에서도 드러나지만,
내가 지금껏 살아오는 과정에서도. 특히 최근 일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성내는 의업의 과보에 대해서 (성내고 증오하는 의업을 품고있는 것의 과보는 가장 경미한 과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경험하며 직접 확인할 수 있기도 했고,
요즘에는 앞서 쓴 내용들을 어느 정도 자각해서 증오와 성냄, 복수심 등의 악심을 품지 않고, 그 대신에 탐진치와 반대되는 의업 - 즉 십선업에 해당되는 의업을 지으려 하니 (즉 조건없이 보시하고, 인욕하고 미움과 원한을 품지 않고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임을 알아서 기꺼이 받고자 하는 마음을 내고 또 자비심을 품고, 지혜를 밝히고자 하며 부처님이 설하신 경과 계율의 내용을 새기며 살려 하니.) 역경계가 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많이 경미하게 나타나며, 또한 금방 잠잠해짐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공스님의 책 <화해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다>에 나오는 내용 역시 마음이 재앙도 복도 만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불교전도협회에서 출간된 <불교성전>에도 재앙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고 자기 마음에서 찾아야 똑바로 보고 길을 잘 찾은 거라고. 그게 정견이라고 나온다.
이거였다.
'결국 모든게 다 심법이었구나.
마음따라 일어나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일체유심조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내가 듣게 된 어떤 찬불가에서도
마음은 엄청난 힘이 있다는 가사가 있었다.
이게 참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아...
마음으로 십선업을 짓자.
탐진치 품지 말자.
그리고.. 두려움과 불안도 품지 말자.
당당하게 선하게 지혜롭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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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마음이 세상을 만든다. 유위법의 '본질'은 공이다. 그러나 공은 오온이라 이름붙이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마음 잘 쓰자. 마음으로 십악업이 아닌 십선업을 짓자. 탐진치가 아니라 보시하는마음, 자비심,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자. 인과법을 깊이 믿고,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자리이타와 효를 행하자.
참고로 현상세계의 본질은 공이고, 공은 우리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고 냄새로 맡아지고 맛으로 느껴지고 감촉으로 느껴지고 의식으로 인식되는 색성향미촉법으로써 나타나서 우리 중생들이 인식할 수 있다. 헌데 이때 오온 십이처 십팔계가 모두 공하다고 하여서 일상생활 속에서 선악의 분별을 하지 않고 막 살라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사이코패스이자 범죄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공은 수행적으로 체득해야 될 대상이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우리는 분별을 해야 될 것이다. 분별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현상의 본질은 분명 공이지만(색즉시공) 공은 물질현상을 비롯해 색수상행식 오온을, 십이처를, 십팔계를 떠나서 있지는 않다. 공은 연기하는 물질현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공즉시색). 그럼으로 바른 불자라면, 수행과 일상을 분리하여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해서 현상의 본질은 공이지만, 공은 연기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며, 이 현상은 본질적으로는 실체가 없는 무자성(그리고 무상하고 무아이고 공)이라는 점에서는 평등하며, 높고 낮음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이 아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의식으로 인식되는 등 육근에 인식되는 현상적 측면에서는 분명 그 모양새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촉감도 생각도 다른 모양이다. 이를 알고,
결론은 수행의 목표로는 공을 체득하는걸로 삼아 수행을 해나가되,
일상적으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가족 친척 친구 직장동료들과 어울리면서는. 현상적으로는 차별이 있음을 알고. 본질이 아닌 현상을 보고, 이에 따라 적절히 방편으로 중생들이 이고득락 할 수 있게끔 신구의로 보시하고 위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깨달은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모든 유위법은 꿈과같고 환,포,영,로,전과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아니 설령 당신이 공을 체득했다 할지라도 당신이 공을 체득하기 이전에는 사실 당신도 두려움과 불안과 욕심과 분노가 많았을 것 아닌가. 집착하고 실체시하고 이익과 손해를 우와 열을 구분하며 명문대를 꿈꾸고 높은 연봉을 꿈꾸고 좋은 집 좋은 차 건강한 육신을 꿈꿨을것 아닌가. 깨닫지 못한 중생이라면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며 고와 락을 반복하는 중임을 알고, 그런 중생들에게 맞춰줌도. 그리고 상구보리 하화중생 자리이타 자각각타의 측면에서 적절히 본질이 아닌 현상적 측면에서 분별할 줄도.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언어로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이다.
나무 불법승.
나무 상주시방 불법승.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가지 더 추가합니다.
실상은 없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조건따라 생멸하고 이합집산하기에 없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하기에 아트만과 같은 실체는 없으니 확실히 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사견임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 내용을 고익진 교수님의 책 불교의 체계적 이해를 읽으며 배웠습니다. 더 자세한 교리를 알고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전 오늘 이 책을 조금 읽어봤는데 내용이 정말 합리적이고 체계적입니다. 읽으면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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