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경전구절

일백오십찬불송(一百五十讚佛頌)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4. 3. 15. 11:29

일백오십찬불송(一百五十讚佛頌)

마질리제타(摩㗌里制吒) 지음
의정(義淨) 한역
김철수 번역

세존께서는 가장 수승하시어
온갖 번뇌[惑種]를 잘 끊으시니
한량없이 뛰어난 공덕은
여래의 몸에 모두 모였네.
오직 부처님만이 우리가 귀의하고
찬탄하고 계승할 만하니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이라면
마땅히 이 가르침에 머물리라.
온갖 악한 번뇌습(煩惱習)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보호하여 그것을 제거하시고
복덕과 지혜 두 가지를 원만하게 갖추셨으니
오직 세존께서는 결코 퇴몰(退沒)함이 없으시네.
가령 어떤 이가 나쁜 견해[惡見]를 내어
세존께 혐오와 분한을 일으키더라도
몸과 말로 지으신 업을 잘 살펴보면
흠이나 틈을 얻을 수 없으리.
내가 사람 몸을 받고 태어나
법을 듣고 환희심이 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큰 바다에서
눈 먼 거북이가 널빤지 구멍을 만난 것과 같네.
망념(妄念)은 항상 따라다니고
미혹과 업을 따르면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니
그러므로 내가 말로써
부처님의 참다운 공덕을 찬탄하네.
모니(牟尼)의 한량없는 경계와
성스러운 덕은 그 끝이 없으시나
내가 자신의 이로움을 구하기 위해
지금은 약간만을 찬탄하는 것이네.
무사지(無師智)를 갖추신 분께 예경하오며
드문 일이옵니다. 온갖 일의 성품을 갖추신 이여,
복과 지혜와 위덕의 광명을
누가 수량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여래의 공덕은 한량없으니
비할 바도 없고 언설로 표현할 수도 없네.
내가 지금 복덕의 이로움을 구하기 위해
가명(假名)으로 찬탄하여 말하는 것일 뿐이네.
나의 지혜력은 미천하고
부처님의 덕은 그 끝이 없으시니
부디 원하옵건대 대자비로
귀의할 곳 없는 저를 구제해 주십시오.
원수나 친한 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시고
무연대비(無緣大悲)를 일으키시어
널리 중생계에 대해
항상 참다운 선우(善友)가 되시네.
안에 있는 재물도 언제나 버리시거늘
하물며 밖에 있는 재물이겠는가?
세존께서는 아끼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없으시어
구하는 이의 바람[願]을 채워 주시네.
몸으로는 그들의 몸을 보호하시고
목숨으로는 다른 이들의 목숨을 위해 대신 바치시며
온 몸으로 한 마리의 비둘기를 구하시되
환희가 있을 뿐 인색함이란 없으시네.
세존께서는 나쁜 세계[惡道]를 무서워하지 않으시고
또한 좋은 세계[善趣]도 탐하시지 않으시어
다만 마음을 깨끗하고 고결하게 하시니
시라(尸羅)는 이로 말미암아 성취되네.
항상 그릇되고 왜곡된 것을 여의시고
항상 질박하고 곧은 것을 가까이하시며
온갖 업의 본성이 공하시니
오직 제일의(第一義)에 거주하시네.
온갖 고통이 그 몸을 핍박하여도
세존께서는 편안한 생각을 내실 수 있으며
바른 지혜로 온갖 의혹[惑]을 끊으시고
허물 있는 모두에게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시네.
목숨을 바쳐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구제하시고
한량없이 기쁜 마음을 내시며
돌아가셨다가도 홀연히 다시 소생하시니
이 기쁨은 저것을 넘어서네.
원수가 그 몸을 해치고
늘 항상 괴롭혀도
그것을 허물로 여기지 않으시고
항상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키시네.
바르게 널리 보리(菩提)의 종자를 심으시고
마음으로 항상 소중하게 여기시니
부처님[大雄]의 난승지(難勝智)에
미칠 자가 없네.
비할 바 없는 보리의 열매[菩提果]는
고행(苦行)이 그 바탕[因]이니
이로 말미암아 몸을 돌아보지 않고
여러 승품(勝品)을 부지런히 닦으셨네.
부귀한 이나 비천한 이나
평등하게 대비(大悲)로 이끄시며
온갖 차별 가운데서도
높다거나 낮다거나 하는 생각이 없으시네.
등지과(等持果)를 가장 좋아하고
마음속에 탐착(貪着)이 없으시며
널리 온갖 중생들[群生]을 구제하시니
대비(大悲)가 끊임이 없으시네.
세존께서는 비록 지극한 고통을 당하시더라도
즐거움을 바라지 않으시며
미묘한 지혜와 온갖 공덕은
너무도 훌륭하시어 함께 할 자가 없네.
더럽거나 깨끗한 여러 법들이 섞인 것 가운데서
거짓된 것을 가려내어 참된 것을 취하시니
마치 청정한 거위 왕[鵝王]이
우유만 마시고 물은 버리는 것과 같네.
한량없는 억겁 동안
용맹하게 보리(菩提)로 나아가
그 세세생생 동안
오묘한 법을 구하기 위해 몸을 버리셨네.
삼아승기(三阿僧祇) 수량 동안
열심히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시고
이 보리법을 간직하여 뛰어난 반려로 삼아
미묘한 보리(菩提)를 증득하셨네.
세존께서는 질투심이 없으시고
하열한 사람들에 대해 경시하는 생각이 없으시며
평등하게 대하시고 사리에 어긋나는 논쟁이 없으셨으니
뛰어난 행을 다 원만하게 성취하셨네.
세존께서는 오직 거듭 인지(因地)의 수행을 하시고
과위(果位)의 원만함을 구하지 않으신 채
온갖 수승한 업을 두루 닦으시어
갖가지 덕이 저절로 원만하게 성취되셨네.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열심히 닦으시어
온갖 행의 정상(頂上)을 뛰어 넘으셨으니
앉고 눕고 경행(經行)하는 곳에서
훌륭한 복전(福田)이 되지 않을 수 없으시네.
온갖 허물과 번뇌[染]를 뽑아 없애시고
청정한 덕을 기르시어
이렇게 덕행을 쌓아 성취하셨으니
오직 세존께서는 최상이시어 위없으시네.
온갖 복덕을 모두 원만하게 갖추시고
온갖 허물은 다 제거해 없애셨으니
여래의 청정한 법신(法身)은
진습(塵習)이 이미 다 끊어졌네
자량(資糧)을 모으고 다시 모아
그 공력(功力)으로 몸을 조어(調御)하셨으니
비유를 하려 해도
부처님과 동등할 이 없네.
모든 세간을 두루 관찰해 보면
재앙ㆍ횡액ㆍ수많은 장애가 번뇌가 있지만
가령 약간의 선(善)만 있더라도
그와 대비되는 일들을 쉽게 얻을 수 있네.
온갖 허물과 근심을 멀리 여의시고
맑고 편안하여 흔들림이 없으시며
온갖 선근(善根)이 아주 훌륭하시니
어느 것도 비유할 것이 없으시네.
여래의 지혜는 깊고도 아득하여
바닥도 없고 끝도 없으시고
세상의 것들을 부처님의 몸에 비유하면
소 발자국을 큰 바다에 비유하는 격이네.
깊은 인자함으로 일체를 떠맡으시니
세간에서 비교할 것이 없으며
대지(大地)를 짊어지는 무거움은
이에 비유하면 실로 가볍네.
어리석음의 어둠은 이미 제거되고
모니(牟尼)의 광명이 널리 비추니
세간의 지혜로는 비유할 수 없으며
마치 반딧불을 태양빛에 비교하는 것과 같네.
여래의 삼업(三業)은 청정하여
가을 달이 넓은 연못을 교교히 비추는 것과 같고
세간의 깨끗함을 부처님의 몸에 비유하면
모두 다 번뇌[塵]의 탁한 성품이 되네.
이상과 같이 인용한 모든 것은
세간 가운데 수승한 일이라도
불법은 이를 훨씬 뛰어 넘으니
세속의 일은 불쌍하고 가엾다고 할 수 있네.
성스러운 법의 진귀한 보배가 모인 가운데
불법이 최상이어서 그 정상(頂上)에 위치하니
위없고 비할 데 없는 가운데
오직 부처님만이 불법과 동등하시네.
여래의 성스러운 지혜의 바다 가운데
그 즐거움에 따르는 것은 일부분만을 찬탄한 것일 뿐이니
보잘것없는 말로 뛰어난 덕을 찬탄하는 것이며
이에 비하면 참으로 부끄럽다고 할 수 있네.
당시의 사람들이 마(魔)를 항복받는 것을 보고는
일체가 다 귀의하여 조복하니
그들의 똑같은 참성품을 관찰하건대
동등하기가 가벼운 털과 같다고 말하리.
가령 큰 전쟁터에서는
지혜와 용기로 적을 꺾어 항복시킬 수 있듯이
성스러운 덕은 세간을 초월하여
그들을 항복시키니 비유할 데가 없네.
차례대로 가깝게는 마귀부터 항복받으신 후에
늦은 밤중에는
온갖 번뇌ㆍ습기를 끊어
뛰어난 덕을 모두 원만하게 갖추셨네.
성스러운 지혜로 온갖 어둠을 제거하시고
천 개의 햇빛을 초월하시며
온갖 그릇된 주장[邪宗]을 꺾어 조복시키시니
희유하시어 비할 바가 없으시네.
세 가지 선근(善根)을 원만하게 갖추시어
영원히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멸사기ㅗ
갖가지 습기[習]를 이미 다 제거하셨으니
청정함은 무엇에 비유할 수가 없네.
미묘한 법에 대해 세존께서는 항상 찬탄하시고
바르지 못한 법에 대해서는 항상 그르다고 하시지만
이러한 그릇되거나 올바른 것에 대해
마음에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감정이 없으시네.
성스러운 제자들이나
아울러 외도(外道)를 따르는 이들이
그 분을 거스르든 따르든
부처님의 마음은 처음부터 두 마음이 없으셨네.
덕에 대해 마음 속[情]으로 집착함이 없으시고
덕 있는 사람이란 말을 탐하지도 않으시니
훌륭하십니다. 지극히 무구(無垢)함이여,
성스러운 지혜가 항상 원만하고 고결하시네.
모든 감각기관[根]이 항상 맑고 적정해서
미혹되고 허망한 마음을 영원히 여의시고
온갖 경계 가운데서
현량(現量) 경계는 부처님께서 친히 바라보시는 경계이네.
염혜(染慧)는 진제(眞際)에 다다른 것이니
어리석은 범부가 측량할 바가 아니며
언어를 잘 안립하시어
저 언어가 다한 세계[亡言處]를 증득하시네.
적정하고 걸림 없는 광명은
아주 맑고 깨끗하여 더욱더 밝게 비추고
그 미묘한 색상은 세간에서 드문 것이니
누가 공경하는 마음을 품지 않겠는가?
잠시 처음 바라보든
혹은 항상 우러러보든
미묘한 상(相)은 일찍이 두 모습이 아니시니
이전이든 이후든 모두 함께 기뻐하네.
가장 훌륭한 위덕의 몸[威德身]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싫증이 나지 않으니
설사 무량겁을 지내더라도
흔쾌하여 우러러보는 것은 마치 처음 바라보는 것과 같네.
소의(所依)인 덕체(德體)와
능의(能依)인 덕심(德心)그 성품과 모습[性相] 두 가지를 원융하게 갖추시어
능(能)ㆍ소(所)가 처음부터 다르지 않으셨네.
이와 같은 선서(善逝)의 덕은
모두 다 여래의 몸에 모였으니
부처님의 상호(相好)의 몸을 떠나면
그 밖에 다른 곳은 안식처가 아니네.
나는 선세(先世)의 복으로 인해서
다행히 조어사(調御師)를 만나 뵙고
공덕산(功德山)을 우러러 찬탄하며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오랫동안 보답하리라.
일체의 유정(有情)들은
모두가 다 번뇌를 바탕으로 유지되며
오직 부처님만이 번뇌를 잘 제거 하실 수 있으시며
자비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오래 머무시네.
마땅히 누구에게 먼저 예경(禮敬)해야 하는가?
오직 부처님ㆍ대비존(大悲尊)이시네.
성스러운 덕은 세간을 초월하지만
대비의 원력 때문에 생사에 처하시네.
세존께서는 적정한 즐거움에 머무시면서도
군생(群生)들을 위하여 탁한 곳에 처하시며
영겁의 오랜 세월 동안 부지런히 정진하시어
자애로운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을 위하시네.
진제(眞諦)로부터 다시 세속을 이롭게 하시고
대비(大悲)의 마음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시니
마치 주문으로 물속의 용[濳龍]을 출현시키고
구름을 일으켜 단비를 내리게 하는 것과 같네.
항상 뛰어난 선정위[定位]에 드시어
원수나 친한 이나 모두 평등하게 보시니
흉악하고 떠들썩한 사람도
몸을 바쳐 성스러운 덕에 귀의하네.
신통력으로 사자후(獅子吼)를 하시어
삼계(三界)에서 존귀한 이라고 선언하셨네.
오래전부터 명예를 싫어하셨으나
대비의 마음으로 인해 스스로 칭찬하신 것이네.
항상 이타행(利他行)을 닦으시고
일찍이 자리(自利)의 마음이 없으셨으며
자애로운 마음을 두루 중생에게 베푸시고
자신에게 치우치거나 애착함이 없으셨네.
대비의 원력이 끝이 없으시어
그릇에 따라 중생[群生]들을 교화하시고
처소를 따라 모두 이익되게 하시니
마치 제사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같네.
깊은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을 생각하시고
항상 잠시라도 버리지 않으시며
그들을 이익되게 하시고 오히려 욕을 당하시니
그런 허물은 부처님께서 지으신 것이 아니네.
자애로운 음성으로 미묘한 뜻을 강연하시어
진실로 허망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며
자세하거나 간략함으로 근기나 인연에 임하시고
절반이든 가득하든 때에 따라 전환하시네.
만약 세존께서 연설하시는 것을 들으면
누가 그 희유하고 기묘함을 찬탄하지 않을 것인가?
설령 악한 마음을 품었더라도
지혜 있는 이라면 다 귀의하여 믿네.
뜻을 밝히는 말씀이 항상 훌륭하고 교묘하며
혹 거친 말씀을 하시더라도
중생을 이익되게 하신 것이라 모두 헛되지 않으니
그러므로 모두 참되고 미묘함을 이루네.
부드러움과 거침으로
상황[事]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고
성스러운 지혜와 걸림 없는 마음은
한 맛[一味]이어서 모두에게 평등하네.
훌륭하십니다. 번뇌[垢] 없는 업이여.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은 훌륭한 기술자와 같네.
이러한 미묘한 몸을 이루시어
이렇게 진귀한 구절을 강연해 주시네.
바라보는 이들이 모두 기뻐하고
말씀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며
아름다운 얼굴로 오묘한 말씀을 베푸시니
마치 달이 감로(甘露)를 흘려 내리는 것과 같네.
자비의 구름으로 법우(法雨)를 내리시어
더러운 탐욕의 티끌을 청정하게 하시니
마치 저 금시조(金翅鳥)의 왕이
온갖 용의 독을 삼켜 없애는 것과 같네.
무명(無明)의 어둠을 없애 버리시니
마치 천 개의 태양 빛과 같으시며
아만(我慢)의 산을 부수어 깨뜨리시니
천제저(天帝杵)와 같네.
허망되거나 오류가 아니라는 것을 현증(現證)하시고
고요한 선정심[慮]으로 산란한 마음을 제거하시며
여실하게 잘 수행하신
세 가지 일[事]이 모두 원만하시네.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기뻐 밝게 열리니
이로부터 잘 사유하면
온갖 번뇌[垢染]를 소제(消除)할 수 있네.
괴로움을 만나면 편안하게 위로해 주시고
방일하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하시며
즐거움에 집착하면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시니
사정[事]에 따라 교화하여 유도하시네.
상근기(上根機)의 지혜를 갖춘 이는 법희(法喜)를 증득케 하시고
중간의 근기[中根]를 지닌 이는 뛰어난 이해[勝解]를 내게 하시며
하열한 근기를 가진 이는 믿는 마음을 내게 하시니
세존의 말씀은 모든 이를 두루 이익되게 하네.
온갖 잘못된 견해를 잘 뽑아 버리시고
인도하여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시며
죄업의 티끌을 잘 씻어 없애시니
세존으로 말미암아 법우(法雨)가 내리네.
일체지(一切智)는 걸림이 없어
항상 정념(正念) 가운데 머물며
여래께서 기별(記莂:수기)하신 바는
한결같아 허망하거나 그릇됨이 없네.
처소가 따로 있거나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릇에 맞지 않음이 없이 잘 다루시니
세존의 말씀은 허망하거나 거짓되지 않아
듣는 이들이 다 부지런히 닦네.
한 길[一路]의 뛰어난 방편은
잡되지 않아 닦아 배울 수 있고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이나 다 훌륭하니
다른 가르침에는 이런 일들이 없네.
이와 같이 한결같은 훌륭함에 대해
미치광이나 어리석은 이가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켜
이 가르침을 혐오하더라도
원망함이 없이 이들에게 동등하게 대하시네.
겁(劫)의 세월을 지내시면서 미혹한 중생을 위하여
온갖 지독한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준비하셨으니
이 가르침이 설령 훌륭하지 않다 하더라도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닦아야 하리.
하물며 크게 이익되게 하고
다시 깊고 미묘한 뜻을 선설(宣說)해 주시니
설사 머리가 불타는 일이 있더라도
먼저 마땅히 이 가르침을 구제해야 하네.
자재하시어 보리의 즐거움을 누리시더라도
성스러운 덕은 항상 담연(淡然)하시며
이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시어
저 언어가 멸한 세계[妄言處]를 증득하시네.
세간 영웅의 진실한 가르침은
그릇된 종파가 들으면 다 놀라고
마왕도 괴로운 마음을 품게 되지만
인간과 천상은 뛰어난 기쁨을 일으키네.
대지는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
평등하게 두루 간직하듯이
성스러운 가르침도 중생[群生]들을 이롭게 하니
그릇된 이나 올바른 이나 모두 이로운 혜택을 입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잠시만 들어도
금강(金剛)의 종자가 이미 성립되고
설령 아직 새장[樊籠]같은 데서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결국은 죽음의 행처(行處)를 넘어서네.
법을 듣고 바야흐로 뜻을 생각하여
여실하게 잘 닦아 행하면
차례대로 세 가지 혜[三慧]가 원만해지니
다른 가르침에는 이런 일이 없네.
유독 우왕선(牛王仙)만이
참되고 원만한 이치에 오묘하게 계합(契合)하시나니
이 가르침을 힘써 닦지 않더라도
어찌 원수가 이를 넘어서겠는가.
이 법은 잠시만 들어도 갈애(渴愛)가 제거되고
그릇된 견해를 지닌 이들도 신심을 내니
듣는 이가 기쁜 마음을 내고
이에 의지하여 청정한 계율을 구족하네.
탄생하실 때 모두가 기뻐하고
성장하시매 세상의 모두가 환희하였으며
크게 중생들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셨고
멸도를 보이시어 슬픈 마음[悲感]을 일으키셨네.
노래를 불러[讚詠] 온갖 번뇌의 독을 제거하시고
억념(憶念)하여 흔쾌하고 경사스러운 마음을 불러내시며
혜명(慧明)을 발현하실 일을 찾아 구하시니
깨닫는 마음[解悟心]이 원만하고 고결하시네.
만나는 이들마다 존귀하게 여기도록 하시어
공경하게 모시어 수승한 마음을 내게 하시고
일을 계승하여 복인(福因)을 감득(感得)하게 하시며
친히 받들게 해 걱정과 괴로움을 없애게 하네.
시라(尸羅)가 청결함을 갖추고
정려(靜慮)의 마음이 깨끗하고 적정하며
반야(般若)의 지혜 원융하니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복이 모이네.
세존의 용모와 세존의 가르침,
그리고 세존께서 증득하신 법은
보고 듣고 생각하여 깨닫는 가운데
이 보배가 가장 뛰어나네.
떠내려가는 이에게 모래톱이 되어 주시고
자신을 해치는 이를 항상 보호해 주시며
두려움에 떠는 이에게 귀의처가 되어 주시고
그들을 이끌어 해탈케 하시네.
청정한 계율로 미묘한 그릇을 이루시고
좋은 밭으로 훌륭한 열매를 생산하시며
선한 벗이 되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시니
혜명(慧命)은 이로 말미암아 성취되네.
은덕(恩德)을 행하시고 온화한 마음으로 인욕하시어
보는 이들이 다 즐거워하며
널리 인자한 마음을 모으시니
공덕이 가없으시네.
몸과 입에 허물과 해악이 없으시니
친애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이로부터 발생하며
길상한 온갖 공익[義利]은
다 선서(善逝)의 덕에 의지하네.
도사(導師)께서 잘 인도해 주시어
교만에 빠진 이가 다시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하시고
굽은 마음을 한결같이 조정해 주시어
미혹된 길에서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하시네.
선근(善根)이 성숙한 사람은
삼승(三乘)의 수레를 잘 부리시니
사나움으로는 사람들을 조복시키지 못하며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잠시 버리는 것이네.
액난을 만나면 능히 구해 주시고
안락하게 하시어 잘 닦도록 권장하시며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여러 중생[群品]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시네.
어긋나거나 해를 끼치는 이에게 자애로운 마음을 내시고
행실이 바르지 못한 이들을 걱정하시며
포악한 이들에게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시니
그 성스러운 덕을 이루 다 찬탄할 수 없네.
은혜의 깊이가 끝이 없음은
온 세상이 모두 다 아는 바이며
이에 대해 오히려 원망하는 마음을 내더라도
세존께서는 항상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시네.
몸을 바쳐 일체를 구원하시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시며
무너져 떨어지는 모든 사람들을
친히 돕고 옹호하시네.
두 세간에 걸쳐 은혜를 행하여 지으시고
모든 세간을 초월하셨으며
어둠을 항상 밝게 비추시니
세존께서는 지혜 등불의 심지이시네.
인간이나 천상에서 수용하는 바는
중생의 품류에 따라 차별이 있지만
오직 세존의 정법의 맛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네.
씨족(氏族)을 고려하지 않으시고
색력(色力)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선한 근기를 지닌 사람들에게 수순하셨으니
구하는 이들은 모두 성취하는 은혜를 입었네.
널리 온갖 회유한 일을 나타내시고
아무런 조건 없이 대자(大慈)의 마음을 일으키시니
성중(聖衆)과 인천(人天)이
합장하여 모두 친근히 하네.
아아, 생사의 두려움에 대해
부처님께서 출한하시여 광명을 비추시니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시고
모두 그 소원을 원만하게 하시네.
악인과 함께 거처하시어
그들이 즐거움을 쳐부수고 걱정과 위험을 불러들이고
비방하고 그 몸을 괴롭히고 해쳐도
마치 훌륭한 덕을 수용하듯 하시네.
중생[物]을 위해 애써 고행하셔도
일찍이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시니
세존의 희유한 덕은
언설로 표현하기가 어렵네.
세존께서 험악한 악도(惡道)에 노니셨던 것은
마치 마맥(馬麥)과 우장(牛鏘)의 일과 같다.
고행을 하며 육년 동안 지내시면서도
편안하게 받아들이시며 마음에 퇴전함이 없으셨네.
세존께서는 가장 뛰어난 경지[位]에 머무시면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교화하셨고
설령 경박하고 천박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몸과 말로 한층 더 겸손하게 공경하셨네.
혹은 존귀한 위치에 있더라도
일찍이 교만심이 없으셨으며
자신을 굽혀 중생을 섬기고
낮추어 공경함이 마치 종복이 심부름하듯 하셨네.
억만 종류의 다양한 중생들[機情]이
백천 가지로 논란하여도
여래의 자애롭고 훌륭한 음성은
한 번 답하여 의문을 모두 끊으시네.
은혜는 깊어 덮거나 실을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하는데
그 덕을 배반하여 깊은 원망을 일으켜도
세존께서는 그 원망함을 지극한 경계로 여기시니
마치 지극히 소중한 은혜로 여기는 것과 같네.
원수가 세존께 해를 끼쳐도
세존께서는 그 원수를 친근한 사람으로 전환시키시니
그들이 항상 부처님의 허물을 찾으려 해도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네.
그릇된 주앙[宗]을 하는 이가 질투심을 가지고 청문(請問)하거나
독 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불구덩이에 밀어 넣어도
비원(悲願)에 의해 깨끗한 연못으로 변화시키시고
독을 변화시켜 감로가 되게 하시네.
인욕으로 성냄과 분노를 조복시키시고
참다운 말씀으로 비방하는 말을 녹이시며
자비의 힘으로 악마나 원수를 굴복시키시고
바른 지혜로 사악함과 독을 제거하시네.
중생[群生]들은 한량없는 겁 동안
악함을 익혀 성품을 이루었으니
오직 세존만이 오묘하게 원만함을 행하시어
한 생각에 선함으로 바꾸어 주시네.
온유함으로 포악함을 항복받으시고
보시를 베풀어 간탐(慳貪)함을 깨뜨리시며
선한 말씀으로 거친 말을 조복시키시니
오직 세존의 뛰어난 방편이시네.
난제(難提)도 거만함을 꺾고
앙굴(鴦掘)도 자비심을 일으켰네.

조복하기 어려운 자들을 능히 훌륭하게 조복시키시니
누가 희유함을 찬탄하지 않겠는가?
오직 세존과 성스러운 제자들만이
법미(法味)가 저절로 기쁘고 신묘하게 하니
풀로 만든 자리를 편안하게 여기시고
금으로 장식된 형상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시네.
중생들의 근기와 탐욕의 성품을 잘 아시어
그 근기와 인연에 맞게 교화하시며
혹은 청문(請問)함을 기다리시기도 하고
혹은 청문하지 않아도 스스로 설해 주시네.
처음에는 보시와 지계 등을 나열하시고
점차로 청정한 마음이 생기면
나중에는 진실한 법을 담론하시어
마침내는 원만하게 증득하게 하시네.
두렵고 무서운 곳이나 표류하는 곳에서도
오직 부처님만이 귀의할 분이시며
용맹한 대비존(大悲尊)께서는
여러 중생들을 구제하시네.
부처님 몸의 구름이 법계에 두루하여
법우(法雨)가 티끌 같은 세계[塵方]에 뿌려져
상응하여 나타나는 바가 각기 다른데
근기에 따르기 때문에 차이가 있는 것이네.
선량하고 청정하시어 어긋남이나 다툼이 없으시니
오직 세존만이 계승하여 받들 만한 분이시네.
널리 모든 인간과 천상을 이롭게 하시니
모두 다 공양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네.
몸과 입으로 짓는 바가 없이도
두루 시방세계(群方]를 잘 교화하시고
말씀하시는 바가 오묘하게 상응하시니
이 덕은 오직 세존께 있네.
오랜 동안 세 가지 업(業)을 청정하게 닦으시어
오묘하고 상서로움이 가없이 나타나니
널리 모든 세간을 둘러보아도
일찍이 이처럼 훌륭한 덕은 없었네.
하물며 극악한 이들에게도
순수하게 최상의 자비를 행하시어
널리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시고
용맹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셨네.
성문(聲聞)으로서 법을 아는 사람은
세존을 항상 받들어 모시며
설사 열반을 증득하였더라도
끝내 부처님께 빚을 졌다고 말하네.
저들 모든 성중(聖衆)이
자신만을 위하여 닦고 배운다면
중생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버림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빚을 졌다고 말하지 않네.
무명(無明)의 잠에서 이미 깨어나시어
대비(大悲)의 마음으로 두루 시방세계[群方]를 살피시고
책임을 느끼고 부지런히 실천하시니
마땅히 성선(聖善:부처님)을 친근히 해야 하네.
악마와 원수가 괴롭히고 해를 입혀도
부처님의 힘으로 제거하셨으니
두려움 없는 공덕[無畏功德] 가운데
이는 단지 일부분만을 드러내는 것이네.
대비(大悲)의 마음으로 일체를 교화하기를
성스러운 마음으로 몹시 바라시어
이로움과 즐거움을 베풀어 주시지 않음이 없으시며
능히 이런 모든 일을 다 해 끝마치시네.
여래의 훌륭하고 오묘한 법은
전수하여 옮길 수 있더라도
조달(調達)과 선성(善星)은
이 가르침에 몸을 던지지 않았네.
무시(無始)이래 유전하는 가운데
서로 이익되게 하지 못하므로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법을 열어 보여 중생을 교화하셨네.
녹야원(鹿野苑)에서 구린(俱隣)을 제도하시고
견림(堅林)에서 수발(須跋)을 교화하셨으며
이 국토에서 근본 인연이 다하자
다시는 책임지고 이끄시는 일이 남아 있지 않았네.
법륜을 이미 오래 전부터 굴리시어
모든 미혹한 중생들을 깨닫게 하시고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학인(學人)들을 받아들이시어
모두를 삼유(三有)에서 이롭게 하셨네.
뛰어난 금강정(金剛定)으로
스스로 감옥과 같은 몸을 부수시되
대비의 마음을 버리시지 않으셨으니
친히 교화하시어 널리 법이 퍼지게 하셨네.
두 가지 이익된 행이 이미 원만하시고
색(色)과 법(法)의 두 가지가 몸이 원만하시며
일천제(一闡提)를 구원하여 거두어들이시고
쌍림(雙林)에서 불성(佛性)을 드러내셨네.
대비의 마음은 삼유(三有)를 꿰뚫으시고
색상(色像)으로 시방세계[群方]에 응하시어
좁쌀 알갱이처럼 몸을 나누어 나투시지만
이내 원적(圓寂)에 머무시네.
훌륭하고 수승한 행과
희유한 공덕의 몸과
대각(大覺)의 모든 법문들은
일찍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네.
두루 인간[含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도
몸과 말씀은 항상 적연(寂然)하시지만
어리석은 범부들은 성은(聖恩)을 등지고
세존께 비방과 분노를 일으키네.
법을 모은 보배 창고는 참으로 한이 없고
덕의 근원과 복의 바다는 실로 헤아리기 어려우니
만약 어떤 중생이 일찍이 세존께 예를 올렸다면
그 분께 예를 올린 것은 훌륭한 예경(禮敬)이라 할 수 있네.
성덕(聖德)의 신이한 공덕은 다함이 없으나
내가 지금 지혜 하열하기가 마치 티끌과 같아
여래의 공덕산(功德山)을 찬탄하려 하지만
너무도 망망하여 겁이 나 물러서니 이로 말미암아 그치네.
한량없고 무수하고 가없는 경계는
사유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그 이치를 증득하기 어려워
오직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만으로 헤아려 알 수 있으니
어찌 어리석은 범부가 찬탄할 수 있겠는가.
한 터럭 모습으로 법계를 가득 채우시고
하나의 행(行)과 하나의 덕(德)으로 마음의 근원에 두루하시니
청정하고 광대하기가 아름다운 연못과 같아
중생의 번뇌의 갈증을 치료해 주시네.
나는 석가모니부처님의 공덕해(功德海)를 찬탄하여
이 선업(善業)에 의지해 보리를 증득하는 데로 나아가
널리 중생[含生]들이 훌륭한 마음을 내도록 발원하고
어리석은 범부의 허망한 의식[識]을 영원히 여의게 하려네.

원문
一百五十讚佛頌 尊者摩咥里制咤造
大唐沙門義淨於那爛陁寺 譯 世尊最殊勝
善斷諸惑種
無量勝功德
摠集如來身 唯佛可歸依
可讚可承事
如理思惟者
宜應住此教 諸惡煩惱習
護世者已除
福智二俱圓
唯尊不退沒 縱生惡見者
於尊起嫌恨
伺求身語業
無能得瑕隙 記我得人身
聞法生歡喜
譬如巨海內
盲龜遇楂穴 妄念恒隨逐
惑業墮深坑
故我以言詞
歎佛實功德 牟尼無量境
聖德無邊際
爲求自利故
我今讚少分 敬禮無師智
希有衆事性
福慧及威光
誰能知數量 如來德無限
無等無能說
我今求福利
假讚以名言 我智力微淺
佛德無崖際
唯願大慈悲
拯我無歸處 怨親悉平等
無緣起大悲
普於衆生界
恒作眞善友 內財尚能捨
何況於外財
尊無悋惜心
求者滿其願 以身護彼身
以命贖他命
全軀救一鴿
歡喜無慳悋 尊不畏惡道
亦不貪善趣
但爲心澄潔
尸羅由此成 常離諸邪曲
恒親質直者
諸業本性空
唯居第一義 衆苦逼其身
尊能善安慮
正智斷諸惑
有過悉興悲 殉命濟他難
生無量歡喜
如死忽重蘇
此喜過於彼 怨對害其身
一切時恒惱
不觀其過惡
常起大悲心 正遍菩提種
心恒所珍玩
大雄難勝智
無有能及者 無等菩提果
苦行是其因
由此不顧身
勤修諸勝品 豪貴與貧賤
等引以大悲
於諸差別中
而無高下想 勝樂等持果
心無有貪著
普濟諸群生
大悲無閒斷 尊雖遭極苦
於樂不悕求
妙智諸功德
殊勝無能共 染淨諸雜法
簡僞取其眞
如淸淨鵝王
飮乳棄其水 於無量億劫
勇猛趣菩提
於彼生生中
喪身求妙法 三僧祇數量
精勤無懈惓
持此爲勝伴
以證妙菩提 尊無嫉姤心
於劣除輕想
平等無乖諍
勝行悉圓成 尊唯重因行
非求果位圓
遍修諸勝業
衆德自成滿 勤修出離法
超昇衆行頂
坐臥經行處
無非勝福田 拔除衆過染
增長淸淨德
斯由積行成
唯尊最無上 衆福皆圓滿
諸過悉蠲除
如來淨法身
塵習皆已斷 資糧集更集
功歸調御身
欲求於譬類
無能與佛等 遍觀諸世閒
災撗多障惱
縱有少分善
易得爲比對 遠離諸過患
湛然安不動
最勝諸善根
無能爲譬喩 如來智深遠
無底無邊際
世事喩佛身
牛迹方大海 深仁荷一切
世閒無有比
大地持重擔
喩此實爲輕 愚癡闇已除
牟尼光普照
世智非能譬
如螢對日光 如來三業淨
秋月皎空池
世潔喩佛身
俱成塵濁性 如上諸所引
世中殊勝事
佛法迥超過
俗事可哀愍 聖法珍寶聚
佛最居其頂
無上無比中
唯佛與佛等 如來聖智海
隨樂歎少分
鄙詞讚勝德
對此實多慚 時俗睹降魔
一切咸歸伏
觀彼同眞性
我謂等輕毛 假令大戰陣
智勇能摧伏
聖德超世閒
降彼非爲喩 鄰次降魔後
於夜後分中
斷諸煩惱習
勝德皆圓滿 聖智除衆闇
超過千日光
摧伏諸邪宗
希有無能比 三善根圓滿
永滅貪恚癡
種習悉已除
淸淨無能喩 妙法尊恒讚
不正法恒非
於斯邪正處
心無有憎愛 於聖弟子衆
及外道師徒
於彼違順中
佛心初無二 於德情無著
德者亦非貪
善哉極無垢
聖智恒圓潔 諸根常湛寂
永離迷妄心
於諸境界中
現量由親睹 念慧窮眞際
非凡愚所測
善安立語言
證彼亡言處 寂靜無礙光
皎潔逾輝映
妙色世希有
熟不懷敬心 若有暫初觀
或復恒瞻睹
妙相曾無二
前後悉同歡 最勝威德身
觀者心無厭
縱經無量劫
欣仰似初觀 所依之德體
能依之德心
性相二俱融
能所初無異 如斯善逝德
摠集如來躬
離佛相好身
餘非所安處 我因先世福
幸遇調御師
仰讚功德山
遠酬尊所記 一切有情類
皆因煩惱持
唯佛能善除
由悲久住世 誰當先敬禮
唯佛大悲尊
聖德超世閒
悲願處生死 尊居寂靜樂
處濁爲群生
永劫久精勤
慈心爲一切 從眞還利俗
由悲所引生
如呪出潛龍
興雲注甘雨 恒居勝定位
等觀以怨親
兇嶮倡聒人
投身歸聖德 神通師子吼
宣言三界尊
久已厭名聞
由悲自稱讚 常修利他行
曾無自利心
慈念遍衆生
於己偏無愛 悲願無邊際
逐器化群生
隨處皆饒益
猶如散祭食 深心念一切
恒不捨須臾
利彼反遭辱
由咎非佛作 慈音演妙義
誠諦非虛說
廣略任機緣
半滿隨時轉 若聞尊演說
孰不歎希奇
縱令懷惡心
有智咸歸信 義詞恒善巧
或復出麤言
利益悉不虛
故竝成眞妙 柔耎及麤獷
隨事化衆生
聖智無礙心
一味皆平等 勝哉無垢業
善巧喩良工
成此微妙身
演斯珍寶句 睹者皆歡喜
聞說竝心開
羙顏宣妙詞
如月流甘露 慈雲灑法雨
能淸染欲塵
如彼金翅王
呑滅諸龍毒 能殄無明闇
喩如千日光
摧碎我慢山
譬猶天帝杵 現證非虛謬
靜慮除亂心
如實善修行
三事皆圓滿 創聞佛所說
心喜已開明
從此善思惟
消除諸垢染 遭苦能安慰
放逸令生怖
著樂勸厭心
隨事皆開誘 上智證法喜
中根勝解生
淺劣發信心
尊言遍饒益 善拔諸邪見
引之趣涅槃
罪垢能洗除
由尊降法雨 一切智無礙
恒住正念中
如來所記莂
一向非虛謬 無非處非時
亦無非器轉
尊言不虛發
聞者悉勤修 一路勝方便
無雜可修學
初中後盡善
餘教所皆無 如斯一向善
狂愚起謗心
此教若生嫌
無怨與斯等 歷劫爲群迷
備經衆苦毒
此教縱非善
念佛尚應修 況能大饒益
復宣深妙義
縱使頭被焚
先應救此教 自在菩提樂
聖德恒淡然
皆由此教生
證彼亡言處 世雄眞實教
邪宗聞悉驚
魔王懷惱心
人天生勝喜 大地無分別
平等普能持
聖教利群生
邪正俱蒙益 暫聞佛所說
金剛種已成
縱未出樊籠
終超死行處 聞法方思義
如實善修行
次第三慧圓
餘教皆無此 唯獨牛王仙
妙契眞圓理
斯教不勤修
寧有怨過此 暫聞除渴愛
邪見信心生
聽者發喜心
依斯具淨戒 誕應時咸喜
成長世皆歡
大化利群生
示滅興悲感 讚詠除衆毒
憶念招欣慶
尋求發慧明
解悟心圓潔 遇者令尊貴
恭侍勝心生
承事感福因
親奉除憂苦 尸羅具淸潔
靜慮心澄寂
般若圓智融
恒沙福所集 尊容及尊教
及尊所證法
見聞思覺中
此寶最殊勝 漂流作洲渚
害己恒爲護
怖者作歸依
引之令解脫 淨戒成妙器
良田生勝果
善友能饒益
慧命由此成 行恩及和忍
見者咸欣悅
廣集仁慈心
功德無邊際 身口無過惡
愛敬由之生
吉祥衆義利
咸依善逝德 導師能善誘
惰慢使翹勤
等持調曲心
迷途歸正道 善根成熟者
駕馭以三乘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한량없는 억겁 동안
용맹하게 보리(菩提)로 나아가
그 세세생생 동안
오묘한 법을 구하기 위해 몸을 버리셨네.
삼아승기(三阿僧祇) 수량 동안
열심히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시고
이 보리법을 간직하여 뛰어난 반려로 삼아
미묘한 보리(菩提)를 증득하셨네.

- 일백오십찬불송(一百五十讚佛頌)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