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내가 이 블로그를 하는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1. 9. 28. 20:32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자비심에서 비롯된 마음이다.
더 정확힌 비심에서.

나도 다른 사람들도 죽기 싫어하고 고통받는걸 싫어하고 괴로운걸 싫어한다. 생명이 위협받는걸 두려워하며 누구나 살고싶어하고 누구나 편안하고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한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개미조차도 마찬가지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죽기 싫어하고 살고 싶어한다. 그것이 본능이다. 괴로운걸 싫어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본능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 개미 한마리조차 나와 이 점이 다름 없음을 군대에서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니 죽어가는 생명이, 다치고 뭉개져 고통스러워하는 개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까를 느꼈고

그 개미를 구해주고 싶고, 또 앞으로 장난삼아 사람이 징그럽다고 밟은 군화 밑창에 죽고 다쳐 고통스러워 할 저 개미들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을때

저 개미들의 고통에 그렇게 공감했을때 나는 박차고 나서 개미를 밟는 병사 두명을 막았고 저들도 우리와 같은 생명이 있는지라 고통스러운걸 싫어하고 죽기 싫어한다고 말하며 병사 둘을 말렸다.

생명이 있는건 누구나 그렇다고 말했고 병사 두명이 개미를 살생하는걸 그렇게 막았다.

비심의 발로였고, 이 마음이 비심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런 마음. 죽음과 고통을 싫어하고, 생명의 그 점을 공감하게 되며 나는 다른 고통받는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보살행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개미를 살리고 벌레를 방생했다.
모기조차도 손바닥이 아닌 플라스틱 통으로 잡고 그 밑에 종이를 집어넣어 가둔뒤 건물 밖에 나가서 내보내주었다. 죽을때의 그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고, 그 아픔을 싫어하는 건 나도 그들도 같았기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들이 아프지 않고 편안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비심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간 적극적인것이 자심이었고 그 자심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자비심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 불교의 포교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포교는 자비심의 발로였고 특히 비심으로, 생명을 구하고자 실시한 행위였다.

이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불경 구절을 올리고 내 깨달음이나 배운바, 진리, 지혜의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그리고 이 블로그에 초대하고
이 블로그에 많은 생명들이 들어오는걸 반기는 이유는 바로 이 비심의 발로이다..
즉,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괴로움에서 구하기 위해서.
고통에서 건지기 위해서.
그를
그들을
생명을
중생들을 살리고 싶어서이다.

이 점을 기억할때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걸 포기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에.
이 점을 상기하고자 이 글을 쓴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