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개미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자비심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2. 10. 22. 03:33

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한 사람이 나무 밑둥 근처에 기어다니는 많은 개미들을 보고 징그럽다고 신발바닥으로 그 개미들을 밟는 광경을 보았다.

나는 예전에 본 가르침인 내가 고통과 죽음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것처럼 다른 생명도 고통과 죽음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개미를 밟고있는 사람에게 가서 어깨동무를 하고 부드럽게 "그만하세요." 하고 말하며 "이들도 생명이기에(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내가 아픈 고통을 싫어하고 죽기 싫어하고, 누군가 날 죽이려 칼을 들고 위협하면 두려움을 느끼듯 이들도 몸이 다치면 아프고 죽음과 고통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하고 예기했다.

그 말을 하며 개미를 밟지 않게 타이르자 그 사람은 개미를 밟는것을 그쳤다.

그 경험 직후 깨달았다.

그 경험보다 이전에 법회에서 들었던 법문에서 '자비심은 내 본래의 마음'이라는 가르침이 떠오르며 통찰이 온 것이다.

'아. 내가 고통을 싫어하고 죽기 싫어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저 작은 개미들도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구나.' 라는 깨달음.

나는 나의 과거 경험했던 감정으로 미루어 나 아닌 다른 생명체인 저 개미가 느낄 아픔과 고통과 두려움을. 그리고 살고싶어하는 마음을 짐작했던 것이다. 마치 저 개미가 나와 한몸인것 마냥 내가 저 개미의 처지를 내 자신과 같이 느꼈던 것이다. (이를 공감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하여튼 나는 이 체험 속에서 다른 생명의 고통을 과거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여서 나의 고통과 같이 느꼈던 이 마음이 자비심(더 정확하게는 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경험이 내가 비심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모든 생명에게는 불성이 있다.
그 불성을 참나, 참생명, 본래면목, 본래마음 등이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본래의 내 마음이 곧 자비심이라는 것을 법문에서 배웠다.

나는 이날 이 경험을 통해 자비심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께서는 아이가 장난으로 개미와 같은 작은 생명을 살생하는것을 막기 위해서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부처님께선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 말씀하셨고,
불살생의 가르침을 주셨다.

계란 '~하면 좋다'는 의미의 습관과 같은 개념이다.
불자의 오계 중 첫번째인 불살생계란 생명을 죽이지 말고 더 나아가서 방생하고 살려주면 좋기에, 그와 같은 생명을 살려주는 행동을 하라고 권하는 의미일 것이다.

더불어 불교에서는 일체 중생이 과거생 내 어머니였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과거생은 한개 두개가 아닌 수없이 많은 과거의 생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수많은 과거생 속 내 어머니 아니었던 중생이 없다는 것이다. 일체 중생은 내 부모였고 형제자매였고 친척 조상님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가르침을 새기며 효성심을 내는것이 불교의 정신일 것이다.

나는 이 같은 가르침들을 새길 때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다.

이상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것으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