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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공, 무상, 무아. 법륜스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통찰.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4. 3. 4. 11:30

모든건 인연따라 변한다.
그 변화하는 과정의 부분을 잘라서 생 주 이 멸 이라고 이름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저 변화일 뿐이다.

그 인연생기의 변화과정에는 실상 선악이란 개념은 없다.

선악뿐만이 아니라 모든 언어 문자로 이름붙일만한 개념은 그 연기의 현상에 포함될 수 없다.


근데 육근으로 접하기엔, 연기와 공을 알지못하는 일반인들은 그 현상 작용은 언어 문자로 이름붙일만한 차별이 있다고 생각된다. 해서 구분짓고 나누고 차별한다.

하지만 실상 선악도 개념도 없다.
끊임없이 한 찰나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는 현상이고

분해해보면 오온무더기일뿐이고

그 오온은 모두 독립적인게 아닌 법계 일체 유위법에 의존해서 변화하는 현상이다.

고로 선악도 없는데,
총이라할 실체도,
군인이나 가방 학생 대학생 전공이라 할만한 실체도 없다.

일체 만법이 이름붙일만한 실체가 없는데

중생들은 만법을 구분짓고 이름붙이고 차별구분해서 탐욕하고 무시하고 그런다.

그래서 뭐 좋은직업이라 생각되는 걸 가지면 교만해지고 그런데,

실상은 모든현상은 연기한거라서 선악도 우열도 없고 이름짓거나 구분하고 차별할만한 개념도 없다.

그리고 모두 하나다.

그리고 중생은 결국 오온 무더기일 뿐이고

그 오온 각각은 모두 연기하는 실체없는 것일 뿐이다.

다큰 키라는 결과는 현생만 보자면 우유많이먹고 영양소 섭취, 일찍 자서 성장호르몬 분출, 운동해서 신체 체내활동 원활, 유전자, 스트레스정도등 여러 요인과 더불어 유전자와 성장환경이란걸 결정한 과거생에 지은 존경 찬탄 내지 무시 교만 등과 같은 행위가 조건들로 작용해서 발생된 현상이다. 그 키조차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늘었다 줄어드는과정인데 그 과정서 일부분만 잘라서 좀 줄어드는게 거의없는 기간을 차별 구분해 자기 키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렇게 다 분해해보면 총이라 할 실체도 없고 군인 장교 병사 핸드폰 내 육신 등이라고 할 것도 없다. 선인도 악인도 없고 좋은일도 나쁜일도 없다.

이를 천태적으로 보면 원융이다. 공가중이 항상 함께오고, 십계호구다.

결국 식마저 다 알아차려 업이 소멸되면

남은건 알아차리는 하나 뿐.

결국 범소유상 개시허망이고 제상이 비상이자 연기하는것이고 공상이고
일체유위법이 여몽환포영이다.

결국 잘나건 못나건 나라할 실체도 잘나고 못났다 이름지을 실체도 없는 연기작용이고 그 연기하는 현상은 실상 일체가 다 상의성으로 연결되어 결국 하나이고, 둘이라 구분지을 수 없는데.

근데 사람은 한생을 잘났다 못났다 하며 그냥 꿈속에서 사는 것이다. 또 나쁘다 착하다 악하다 선하다 좋은놈이다 나쁜놈이다 구분지으며 한생을 꿈속에서 사는것이다.

결국 따지고보면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있는 법륜스님같은 분의 위치도 모두 그냥 공한것인데. 육시도 정신도 지식도, 거기다가 영향력마저도 모두 연기한것이라 공하고 실체가 없는데 말이다.

그치. 그 영향력마저도 연기한 것이어서 무자성이고 공한것이었구나.

즉문즉설도 현장에서의 소리는 메아리와 다를 바 없이 공하고 실체없고
유튜브에 올라온것도 뭐 재생버튼 누르면 소리나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전기, 건강한 눈과 귀, 한국어 알아들을 수 있는 조건, 유튜브 회사, 유튜브 데이터센터, 이 전세계 사람들, 지수화풍, 태안을 비롯한 전 우주, 허공이 존재하기에 즉문즉설도 이 조건들에 의존해서 잠시 있는 것이다. 있다고 말하지만 있다고 할 실체도 없다.

결국 그러니 만법이 공하고,

실체는 없는데 중생의 육근에는 있다고(그리고 때되면 없어졌다고) 여겨지게끔 존재하구나.

모두 연기했기에 실체가 없구나.
실체는 없지만 작용만 있구나.
그 작용은 항상함(=머무름)이 없구나.
무상하구나.
모두 다 상의성 관계구나. 모두 연결되어있구나.
하나는 모두에 의존해있고 모두는 하나에 의존해있구나. 일즉다 다즉일이구나.

결국 만법이 실체가 없구나.

이해가 쉬운건 나부터 따져보는듯 하네.

결국 나라 할 실체가 없구나.

아공 법공 이구나.

이름붙일만한 실체가 없는게 진실인데 이를 모르고 중생들은 한 생 이름붙이며 꿈을 꾸네.

결국 실체없고 끊임없이 변하는게 진실인데. 위에 키가 크고 작은것에 대해 인연법으로 드러내놓은 실상처럼 말이다.

이 실체없는게 무아고
끊임없이 변하는게 무상이다.

머리로는 조금 이해되는데, 이해되다가도 다시 이해 안되고 그런다. 업장 때문인듯 하다.

하여가 색도 수상행식도 공함으로

집착할게 없다. 집착할게 없다는건 진짜로 있다고 실체시할게 없다는 거다.

고로 잡념이 일어나도 공함을 알자.
불안등 감정도 공하고
탐진심 일어나기전 락수와 고수도 공함을 알자.
수상행이 다 공하다. 느낌 생각 감정이. 감정에 의존하고 상황 환경 오온에 의존한 행위도 공하다.

악인이나 원수라 할 실체도 없다.

근데 중생은 한생을 살아가며 나라할것도 상대라할것도 이름지을것도 없는데, 자기도 세상도 모르고 그냥 이름짓고 있다 없다고 구분짓고 나누고 차별하고 분별하며 한 생 사는거다.

꿈꾸는거와 다름이 없다.

그래서 한 생이 연극이고 꿈이구나. 환이고 물거품과 다를바 없구나. 또 그게 항상함이 없어 번개같고 이슬같이 따져보면 찰나다.

허망하기 그지없구나.

결국 독립적인게 없고 항상함도 없는, 만법이 하나의 현상일 따름인데

제각기 일어난 파도를 보고 분별하는게 중생들이고

그게 사실 다 하나의 바다라고, 파도만 보고 구분 분별하지 않고, 그 파도들이 사실 다 바다라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둘이 아니라고. 모든 것이 하나의 현상임을 아는 것이 성인일 것이리라.

/

근데 나는 아직 나라 하는것에,
내 가족 친척 조상이라 하는것에 집착이 있다.
남이라하고 원수라하고 악인이라하고
이익 손해라 하는것에 집착이 있다.
'실체시'가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진짜로 있다(독립적으로 고정불변하게 - 연기하지 않고 -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고 여기는것이다.

그래서 / 이전에 쓴 내용이 머리로 확연히 딱 명쾌하게 모든 것에 적용되게끔 이해되지도 않고, 가슴으로 몸으로 체득도 안되고, 그래서 어리석어 계속 분별하며 탐내고 성내며 살아가는것 같다. 같은게 아니라 이거 맞다.

그러니 나와 내것이란 실체시 집착을 버려야겠다.

즉 다시말해서 일체가 하나의 연기하는 현상이고 공함을 알아야겠다. (최속원만하게 이를 알기를 발원합니다.)

이 글 쓰는데 법륜스님이 인과응보랑 인연생기는 다르고 인연생기는 과학이며 인연생기에는 선악의 개념(윤리 도적적인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해주신게 큰 조건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더불어 여러 스승님들의 가르침이 큰 조건으로 작용했다.

뭐, 그렇지만 아직 나는 무상 무아라는 것을 체득하기는 커녕 모든 것에 이 개념과 지식(아직 나는 완전히 이해한것도 아니고 단순히 지식을 문장 그대로 암기하는 수준인듯 하여 이렇게 적었다. 아니 암기조차도 완전하지 않은듯 하다ㅎㅎ;)이 적용되지도 않으니,

부지런히 기도 수행 정진하자.
관세음보살님 부르면 탐진치심이 사라진다하니(관음경에 나오는 내용),
관세음보살 진언 중 멸업장진언도 있으니,
부지런히 관세음보살님을 부르자. 염불하자.

이게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