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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공과 무상 무아와 원융과 중도의 지혜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길 = 부처님 가르침 공부 2025. 6. 22. 01:25

정말 번뇌즉보리이다.

사바세계에서 연꽃은 피는것이다.

모든 역경계는 나를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스승이다.

모든 괴로움은 괴로움 단독으로 오지 않는다

괴로움에는 실체가 없다.

괴로움은 항상 교훈및 지혜와 함께 온다.

번뇌즉보리인 것이다.

공덕천과 흑암천은 늘 함께 오는 것이다.

그 반대도 성립하는 것이다.

이 원융의 이치를 알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필자에게 천태학을 사사해주신 스승님께서는 가르쳐주셨다.

그래. 뭐가 두려운가? 원융인데. 즐거움과 괴로움과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음은 늘 항상 같이오는데 말이다.

항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 아니 삼면성이 있는 것이다. 공가중이 항상 같이 오고 락과 고와 불고불락이 항상 함께 오는 것이다.

이것이 원융삼제. 천태교관의 정수요 대승의 정수인 것이리라. 

이 같은 원융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깨달음이리라. 

 

연기 - 무자성  - 공이기에

공하기에 정해진 바가 없기에

어떤 이름이든 붙일 수 있고

그래서 세상은 자기가 보기 나름이오,

또한 공하기에 미래도 정해진 바가 없기에 자신이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고

그래서 일체중생이 부처님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 자신의 근기나 그릇이 작다거나 하근기라는 실체적인 고정관념은 금강경의 즉비 시명 논리로 타파해버려라.)

 

공하기에 이름은 붙이기 나름인 것이니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쪽으로 늘상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공을 아는 지혜일 것이며,

또한 실체가 없어 제행무상이니 언제 이 조건도 변화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거나 내가 이 생을 떠나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니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연기 무자성 공 및 제행무상을 아는 지혜일 것이고,

또한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 지금 여기서 곧장 중요한 걸 실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또한 제행무상을 아는 지혜일 것이고,

그리고 제법공상 일체개공이니 본래 정해진 근기나 그릇따윈 없음을 알고 한계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항상 부처님을 그리며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 또한 공을 아는 지혜일 것이다.

 

어떤 물고기가 있는데 그 물고기 이름은 기억안나는데

그 물고기는 어항에 넣어두면 몇센지밖에 자라지 못하는데 바다에 풀어두면 10미터인가 까지 자란다한다.

이 역시 공의 사례이며 고정관념을 타파해주는 공의 가르침일 것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의미부여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자면

본래 이름 붙일 실체는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은 의미부여하기 나름이기도 하거니와, 

이름 언어 문자 분별 희론 개념을 떠나서 실상을 보면

모든 것은 물질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모두 연결되어있고 

그래서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고

또한 이름 붙일 실체가 없기에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현상일 뿐이기에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릇도 근기도 한계도 사실 정해진 것은 없기에

언제나 그 어떤 생명일지라도 무한을 그리며 나아가다보면 결국 무한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고정되고 정해진 바가 없어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주어진 오늘에 감사할 수 있고

오늘도 살았음에 감사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을 때 해야 할 일 하고자 정한 일을 하고자 부지런히 노력할 마음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공의 지혜이리라.